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폴스 Jan 02. 2020

찐빵과 호빵 사이

고된 하루를 채워주는 찐빵

며칠 사이에 아침저녁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옷깃을 여몄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느껴졌다. 회사의 문을 열자 따뜻한 히터 열기가 훅 끼쳤다. 컴퓨터를 켜며 해야 할 업무를 시작하고 나서는 아침의 추운 날씨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잊어버릴 때쯤 몇몇이 퇴근하기 시작한다.

 

 시간도, 계절도 잊게 하는 회사를 나오면 다시 차가운 공기를 마주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며 내쉰 숨에는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버스정류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하얀 김만 뿜고 있었다. 삶의 기로에서 명멸하는 숨처럼 느껴졌다. 

 일을 끝낸 우리의 위태롭고 초라하게 내뿜는 숨 뒤편에서 엄청나게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버스정류장 뒤편에 있는 찐빵 가게였다. 찐빵을 주문하는 사람이 올 때마다 주인은 찜기를 열어 종이봉투에 찐빵을 순식간에 집어넣었다. 뜨끈한 찐빵이 생기를 다한 우리의 기운을 채워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날은 찐빵을 먹어야 한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찜기 위에 있는 형형색색의 찐빵들을 보기만 했는데 주인이 말했다.

 “요건 기본이고, 녹차, 고구마, 단호박이요.”

 “기본으로 주세요. 얼마죠?”

 “2개 천 원요. 국산 팥으로 만들어서 맛있어요.” 

 다양한 재료로 만든 찐빵들이 있었지만, 나는 백설기처럼 하얗고 뽀얀 찐빵이 제일이다. 하얀 종이봉투를 여니 사이좋게 찐빵 2개가 붙어있었다. 종이봉투까지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호호’ 입김을 불며 찐빵을 반으로 갈랐다. 팥이 속 깊은 곳에 숨겨놨던 뜨거움이 열렸다. 하얀 빵 사이에 검붉은 팥 앙금이 나왔고 윤이 났다.  ‘호호’ 불며 빵과 팥 앙금을 베어 물자 부드러운 빵과 달콤한 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맛있었다. 따뜻했다. 

 입 안이 따뜻해졌고, 두 개의 찐빵을 모두 다 먹었을 때 몸이 뜨끈해졌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진이 빠졌다가 영양제를 맞은 것처럼 기운이 났다. 때마침 버스가 왔고, 운 좋게도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찐빵은 오늘도 부단히 일한 나를 위로한다. 부나방처럼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찐빵은 겨울의 혹독함을 버티게 한다.




* 짧은 음식 상식

 찐빵은 횡성의 안흥찐빵이 유명하다. 한국전쟁 이후 원조받았던 밀가루에 안흥에서 재배한 팥을 넣어 만든 것이 그 기원이다. 서울에서 강릉행 버스의 중간 정착지였던 안흥은 간식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금도 가을이 되면 '안흥찐빵 축제'가 열린다. 

 호빵은 찐빵의 가정용이다. 찐빵은 찜기로 찌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삼립식품의 허창성 명예회장이 일본의 찐빵을 본 후 호빵을 개발하게 되었다. 1년간의 개발 끝에 1970년 겨울 ‘호호’ 불어 먹는 다는 의미로 ‘호빵’이 탄생하게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