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불행하게 먹고사는 방법을 찾아 떠난 발견과 치유의 여정
2014년 10월의 일기.
나와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목적으로
어딘가로 떠나게 될 나는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아마도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마주하게 될 그 무언가를
크게 바꿀수는 없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짐작 때문일지도.
심리학과를 전공한 서른 한 살.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정수기 회사에서 7년차 대리생활 중 이렇게 살다간 몸과 마음이 부서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밥줄을 끊어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냐는 내 스스로의 질문에 쉽게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모든 것을 접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친구와 대화를 했다.
"생각은 몇 천번 했는데 그만두기가 쉽지가 않다."
"난 지금까지 진짜 졸라 열심히 일한것 같아. 난 나에게 안식년을 주겠어."
안 식 년. 갑자기 마음에서 번개가 쳤다. 교수님들이나 누리는 것이 안식년 아니던가? 마치 법에 노후가 올 때까지 쉬지 말고 개처럼 벌라는 조항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누구도 그러라 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하게 인생의 중간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했다. 무언가 잘하는게 있긴 있는 것 같은데, 하고 싶은게 있는 것 같긴한데. 잘 모르겠는 그 무언가를 보다 명확하게 알아내고 싶었다.
마음 속 번개가 지나간 후, 나는 지난 7년 내 스스로 내렸던 선택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지 않았나. 그러니 그래도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은 안괜찮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스스로 나에게 괜찮다,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하여 2015년 5월 2일.
길고 길고 길었던 고민 끝의 퇴사.
2011년 가장 힘들었던 해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온 몸의 근육 당김 현상으로 회사에 병가를 내고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요양 중에 만난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현재의 남자친구 박곰돌군. 혼기가 찼다는 서른일곱, 온 집안에서 결혼을 조급해하던 그에게 뜬금없이, "나가 살아 보지 않을래?" 라고 물었다. 참으로 별다른 고민 없이 "응? 그래." 라고 말하던 그는 어느덧 베트남 경유 28시간짜리 런던행 비행기에 함께 탑승해 있었다.
그리하여
2015년 6월 8일. 런던
런던 유학생 뜸오빠와 채팅을 하다가 오빠가 우리의 동선을 물었다.
"저흰... 동선이 없는데요. "
"???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
" ......! "
아 그렇지, 여행자들은 보통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지. 하는 생각이 그때서야 조금 들었다.
우린 건물들마저도 굉장히 런던같지 않은, 골목골목 흑횽들과 터번을 쓴 아찌들이 있는 도심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이태원 같은 느낌의 3ZONE 에 자리를 잡고 마치 우리동네인양 매일 장을 봐다가 집에서 냄비밥을 해먹고 있었지만. 우리 자체는 이 동네에 매우 이질적인 먼지 같았고, 그렇다고 우린 우리 스스로가 미술관과 박물관을열심히 찾아다니고자 하는 여행자 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거주자라기엔 무언가 물에 둥둥 떠있는 기름같았고, 여행자라 부르기엔 부끄럽게도 열정도 치열함도 없었다. 우린 아마 여행자의 모습으로 집에서 빨래를 하고 매일 세끼 밥을 차려먹고 있는 이상한 거주자들..
2015년 6월 17일 , 아일랜드.
집을 떠나온지 어느덧 20일째. 마음이 굉장히 고요하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의 평화로운 고요함이라기 보다는고여있는 물처럼 무언가 검은 오라가 풍겨져 나오는 고요함.
나에게는 어떤 끝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시작을 위해서 아주 오래 생각만 해왔던 긴 여행을 떠나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작년 10월에 내가 쓴 글을 읽고는 훗 역시 무서운 놈 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한 쉼을 가지면 바닥까지 사그러진 나의 에너지가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가지고 떠나온 여행. 그러나 밝고 맑은 에너지 따위보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였던 게으르고 소심하고 내향적이고 조금은 무기력한 나의 모습이 그대로 반갑게 나를 찾아왔다.
회사는 이 모습의 나를 거슬러 살게 만들었었다. 게으르지만 게으를수 없고, 소심하지만 소심할 수 없고, 무기력하지만 무기력할 수 없는. 하지만 여전히 그 삶은 그 삶대로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필요했고 나는 방전당했었다. 완전히.
나는 나의 '원래의 에너지' 를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의 원래의 에너지는 게으르고, 소심하고, 내향적이고, 무기력한 것과는 반대의 에너지가 아닐까, 하고 상상했었고 그 상상은 아주 오래된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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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아일랜드 오기 전 런던에서 만난 그녀.
알랭드보통이 만들었다는 런던의 스쿨오브 라이프. 제주도에 이런것이 생기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구경을 하고 싶었다. 클래스도 들어보고, 심리상담도 받고 라이프코칭도 받고. 그렇지만 춥디 추웠던 여름의 런던에서는 알보칠과 감기약을 달고 살아야했고, 맘과 달리 적극적으로 무엇을 할 수 없었다. 상담은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받지 못했고 클래스 하나는 취소되었다. 그리하여 두개의 클래스를 들었고 코칭을 받았다.
라이프 코치. 타진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여자였다. 코칭을 받기전 타진의 수업을 들었는데 <introverts : superpower> 내향자들의 슈퍼파워에 관한 수업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매력적인 내향적 인간. 한 시간 동안 되도 않는 영어로 버벅버벅 한참을 설명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나는 에너지를 되찾고 싶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그리고 왜 안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75분의 짧고도 긴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결론은 역시나, 상담을 먼저 받아봅시다. 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 2011년도에, 왜 상담을 받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나는 대답을 한참 못했다. 돈 때문이었나? 그랬던 것 같기도하고, 그냥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지 않았나. 머리고 마음이고 정신이고 아무 것도 없었던 듯 하다. 한시도 끊이지 않는 이 끔찍한 어깨 당김이 언제부터 시작됐냐는 질문에 나는 2011년도라 답했는데, 그 사실이 나에게는 새삼스레 참 새로웠다.
2011년도는 나에게 참 많은 것들이 닥쳐온 해였다. 다양한 주제로 나는 네번의 지독한 이별을 겪었었고
나는 내가 내 스스로 갈 수 있는 바닥의 끝을 보았다. 두 명의 죽음을 포함한 네 번의 이별은 말도 안되게도 모두 2011년 한해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타진에게 얘기한것처럼 나는 도대체 어떻게 그 시기를 살아남았는지 모르게 살아남았고, 마치 전쟁의 흉터처럼 어깨 당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도중 깨달았다. 나는 그것이 다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타진은 정말 지나갔어? 라고 되물었다.
타진은 나에게 아주 인상깊은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Maybe you're storing those things in your shoulder."
"and it might be your kind of panic attack."
어깨가 땡기는 것이 내 방식의 패닉어택이 아닐까? 하는 가설.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적은 없었는데 신선했다. 아니 충격적이었었나. 100프로 진실이라 할수는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볼 수도 없으니까.
착한 타진은 지금은 씨앗들과 잡초들이 무성하지만 상담을 받고 내 스스로가 다시 강해지게 되면 내가 바랐던 나무에 잎이 나고 열매가 나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것은 아주 분명한 사실임을 자신은 아주 강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그때 다시 코칭을 하자고.
그리고 어느 모퉁이를 돌다 만난 생각치도 못한 한번의 기회로 완전히 새로운 길을 걷게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것이 자기가 걷고 있는 길이라고. 그녀는 스카이프 상담(화상 상담)을 고려해보라하며 몇몇의 상담가를 추천해주었다. 나는 반쯤 고개를 끄덕였다.
첫 여행지로 아일랜드를 고른 이유는 아무 생각도 없이 자연속에서 쉴 수 있는 한달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쉬는 법을 잘 모르는 나는 게으르고, 소심하고, 내향적이고, 조금은 무기력한 내가 지배적으로 등장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나름대로 쉬고 있는듯하다.
요새 나는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아무 말도 하기 싫다.
아마 조만간 타진이 추천해주었던 상담사에게 메일을 보내보려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대학교 상담센터 선생님께 몇 년간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기 전에는 마음 속 서랍에 무엇이 들어가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었으면서 다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상담을 받는 일은, 마음 속 서랍을 열어 한참을 들여다 보고나니 이런게 들어있었구나. 조금은 놀라며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버릴 것은 버린 후 서랍을 한칸 한칸,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10년 뒤 무엇이 들어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마음 속 서랍을 다시 열어볼 때가 된 듯하다.
그리하여 이번 여행은 서랍을 정리하는 긴 고행의 여정이 될 듯하다. 아하하 즐겁도다.
아일랜드.
그리하여 나의 쉼을 위한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