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 수 없는 점들의 연결

보이지 않는 다음 점이 나타날 때까지 믿고, 걸어가는 일.

by 안소담
아일랜드 코크의 어느 외딴 일방통행길.


직장을 그만둘 때 참 무수한 고민을 했다.


심리학과를 나와 엉뚱하게 들어오게 된 정수기 회사. 여자들이 다니기에 특히나 좋다는 기업 문화 좋기로 소문난 회사였다. 회사란 곳은 내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곳이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욱 결정이 어려웠다. 완전히 싫은 곳은 아니지만 완전히 좋은 곳도 아니고, 매월 꼬박꼬박 적지않은 월급이 나오지만 매월 나가는 병원비도 적지가 않은. 완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내가 하기 싫은 일만 하는 것도 아닌. 큰 성공도 없고 큰 실패도 없는 이곳을 벗어나는 일.


가장 두려웠던 것은 회사를 관둔다고 해도 다음 벌어먹는 일에 대해 어떤 뚜렷한 대안도 없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퇴사하는 자에게는 실업 급여 조차도 주지 않는 이놈의 차디찬 대한민국 땅에서, 알 수 없는, 대책 없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지금 내가 쥔 것을 이대로 쉽게 놓아도 되나하는 생각은 매일매일 반복되었다.


스쳐지나가는 월급으로 친구들과 맛나는 것을 배터지게 와구와구 먹을 땐, 그래 이것은 아주 좋은 삶이다!!! 싶다가도 야근에 찌들어 집에 가면서도 맘이 무거운 날엔, 내일 당장이라도 "저 퇴사하겠습니다."를 온 마음을 다해 뱉어내고 싶었다.


7년 간 일하며 내가 쥐게 된 것은 무엇이였을까? 주어진 시간에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고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대야 하는 적성에 반하는 일을 지나치게 열심히 했던 직장생활. 죽어도 못할 것 같던 일들이 그래도 손에 익고, 성과를 내며 어느 정도 입지에 오르게 되자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내가 그토록 못하는 일도 이렇게 7여년을 회사에 맞춰 다듬어졌듯이. 내 안에 조용히 숨어있는 그 어떤 무엇도 시간을 가지고 깎고 다듬으면 예뻐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내가 제일 못하던 일도 이만큼 왔는데,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을 하게 되면, 이것보단 더 멋지지 않을까.


온갖 음정을 다 틀리다 보컬할배가 짜증을 부려도 굴하지 않았던 백발 수염의 할아버지 베이시스트. 아일랜드의 어느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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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머릭, 여름을 맞이하는 축제. 동네 작은 광장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맛있는 것을 먹고, 화관을 만들며 축제를 벌인다.


그저 막연히 언젠가는 소통, 놀이, 성장을 키워드로 맘편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늘 관심있던 집단상담이나 짝꿍님이 좋아하는 요리를 매개로 하여 사람들이 친구집 처럼 놀러와 배불리 먹고 마음은 따뜻히 돌아가는 어딘가.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매일 매일 시원한 책상에 앉아서 하라는 대로 적당히 일하면, 손쉽고, 리스크도 없고, 돈도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쟁이로써의 삶을 놓는 것은 7년을 매일 곱씹어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대로 살다간, 언젠가는 많이 후회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 후회는 날이 갈수록 무거워질 것임이 또한 분명했다. 이미 서른하나, 나는 스스로 결정의 마지노선이라 생각했던 서른을 이미 넘어 하나를 끝내고 있었다. 더는 늦출 수가 없었다. 새로운 것에 부딪혀서 나도 모르는 나를 만나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끽하는 것을 상상하면 아찔한 두려움과 함께 묘한 웃음이 스물스물 새어나왔다. 내가 이래 생긴 것을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일랜드 리머릭의 공원에서, 서른 하나의 나.


다른 것 보다도, 7년간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더 이상의 큰 후회를 짊어질 힘이 없던 나는 후회의 무게를 원동력으로 무모한 계획을 추진했다.


거기에 추진력을 보탰던 것은 아마도 이미 무모한 길을 걷고 있었던 짝꿍이었다. (직장 7년차, 회사의 누군가를 없애버리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렸으나 그마저도 접은.) 그가 제주도 무공장 막일을 다니며 어찌되었든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모습에서 산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옛말의 산증인을 보는 듯했다. 어찌 저찌 살아지긴 하는구나. 그리고 그 길을 걷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큰 힘이기도 했다.



인사과 팀장님과의 마지막 면담. "마지막 결재를 진행하면 다시 되돌아 올 수는 없어요. 정말 그만둘 건가요?" 라고 물으시는 질문에 순간 멈칫했다.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이 눈앞에 있었다. 이미 내 마음에 번복같은 것은 없다는 걸 알았다. 백만가지 감정이 스치는 마음으로 "네." 하고 대답을 했다. 드디어 강을 건넌 것이다. 아하하.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었다. 문을 닫고 돌아나오는데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런던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출발날짜는 비행기가 가장 싼 날짜로 정해졌다. 그마저도 베트남을 경유하는 28시간짜리 비행티켓.


최소한의 비상금과 최소한의 결혼비용을 남긴 남은 전재산으로 버틸수 있는 것은 6개월정도로 예상됐다. 그러나 참으로 볼품없는 몸이었기에 가장 비싼 여행자 보험 6개월치를 가입했다. 그리고 우린 28시간짜리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런던 그리니치 파크에서 바라본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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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머릭 우리의 방. 먹고 자고 장보고의 나날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하루하루가 전혀 여행스럽지 못했다. 몸과 마음은 오히려 떠나올 때 보다 더 무거웠다. 예상치도 못했던 무기력하고 소극적이고 우울한 자아가 불쑥 나타나 여행자의 모습안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았다. 스스로와 진빠지게 싸워야 했던 한달을 보냈다. 하루 종일 집안을 둥굴거리거나 하루에 세 번 있는 버스를 타고 나가 작은 시내에서 장을 봐오고 주말이면 열리는 동네 마켓 구경을 나갔다.


리머릭 시골 집의 호스트 프란시스 큰언니는 다행히도 우리에게 사랑과 온정을 베풀어 주었다. 프란시스의 사랑을 감사히 받아먹으며 회복을 기했음에도 어깨가 당기는 현상은 그다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쉼, 이라는 것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던 나는 만사 귀찮아 뻗어있는 스스로를 보며 여기까지 와서 지금 내가 뭐하는 짓인가 라는 자괴감에 자주 휩싸였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이것이 내가 택한 길이었고, 결국엔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다. 쉬기로 했으니까 쉬자. 자괴감에 굴하지 않고 뻗어있음을 꿋꿋히 이어나갔다.


축제에서 만들어왔던 화관이 시들었다.


우리의 주요 하루 일과였던 해질 무렵 동네 산책 중 만난 미니 데이지


집 창문밖의 평화로운 동네, 그리고 갑작스런 여우비.


리머릭 시내 페스티벌의 흔적.


프란시스가 엄마의 레시피로 만들어 준 부드러운 폭챱.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폭챱.


프란시스의 부엌. 요리는 곰주부의 담당.


프란시스와 장보러 가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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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머릭에서의 마지막 며칠을 남기고 휴식기를 접어야 한다는 마음이 다가오자 런던에서 만난 라이프 코치가 소개해준 상담사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프 화상 상담은 과연 어떤 것일까. 받아온 이메일로 정중히 메일을 보냈으나, 스카이프 상담은 불가하다고 거절당했다.


결국 나는 영국 상담 사이트에 들어갔다. 수도 없는 상담가와, 온갖 영어에, 압도 당했다. 며칠을 묵히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조금씩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찾다보니 이메일 상담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영어 대화의 부담감도 덜했다. 나는 한참을 찾다가 그중에 한명을 골랐다. 그녀의 이름은 카트리나.


후에 그녀는 왜 자기를 골랐냐고 물었다. 되돌아 생각해보게 되었다. 재미있는 질문이었다. 사진 속의 웃음을 보니 왠지 눈치가 빠르고 마음씨가 깊어보였다. 여느 상담사와 다르게 자신에 대한 다른 고객의 평도 올려놓은 것 보니 열심히 일것 같았고, Bereavement, depression, self-esteem 을 주로 다룬다는 문구가 맘에 와닿았다. 나는 깊은 이별들을 보내왔고 자존감은 떨어져 있었고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리머릭 옆집 정원의, 카라와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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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막상 시작하려니, 당황스럽게도 결제 수단이 막막하였다. 상담 사이트를 통해서 결제를 하려다보니 결제는 영국 거주자만 가능했다. 그리하여 돈을 직접 보내려니 송금 수수료가 어마어마했다. 런던 유학생인 뜸맘에게 물었더니 신개념 결제사이트인 페이팔을 통하면 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카트리나는 이미 페이팔 계정이 있었고 흔쾌히 동의하였다.


생소한 이메일 상담을 시작하기전 그녀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내가 메일을 보내면, 그녀가 50분의 시간을 들여 나에게 답메일을 써서 보내주는 형식이었다. 신기했다. 내가 경험한 상담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질문의 역동이었는데 이렇게 메일 두장으로 상담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카트리나는 이메일 상담만의 장단이 있다고 하며 정해진 틀이나 형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맞게 진행해 나가면 된다고 했다.


첫번째 메일에 내 근육 문제에 대해 아주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 근육 문제가 시작되기 전 해의 길고 긴, 하도 많이 이야기해서 닳을 것만 같은 그 이야기들을 다시 적었다. 네 번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 나의 이상형이자 나의 깊은 친구이자 스승님이었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달에 5년을 만나왔던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그리고 그 다음달엔 내 바로 옆자리에서 나와 매일 동네 야식을 함께하던 직장 동료가 갑자기 죽었다. 그리고는 바로 말도 안되게 불타는 사랑이 찾아와 6개월만에 끝이 났고, 나의 가장 어두운 곳을 넘나들며 1년 넘게 그 이별의 진창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했었다.는 한번만 더하면 닳을 것만 같았던 긴 이야기.


그녀에게서도 길고 긴 답변이 왔다. 대다수가 나의 이야기에 대한 질문이었다. 질문이 너무 많아 말문이 좀 막혔다. 이걸 다 언제 쓰지 하고.


리머릭 미술관, 생각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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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는 두번째 메일에서 서양의학이 내 근육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Holistic therapy 중에 하나인Alexander technique 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치료법을 시도해보라며 소개해주었다. Alexander 라는 연극인이 창안한 기법인데, 자신의 근육의 움직임에 대해 배우고 필요한, 불필요한 움직임들을 교정받으며 몸의 근육들이 원래의 흐름대로 존재하고 움직일수 있도록 몸 본연의 spring들을 되찾는, 몸 전체 흐름의 균형을 찾는 수련법이라 한다. 런던에서 시작되어 아일랜드, 북유럽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꽤나 유명한 알렉산더 테크닉. 특히나 자신이 가진 본래의 목소리를 잘 사용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게 해주기에 가수나 연기자, 댄서와 같은 예체능계의 사람들이 많이 받는 테크닉이라고도 한다.


며칠 후인 7월에 가게 될 다음 도시인 코펜하겐에 알렉산더 테크닉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두 군데가 있었는데, 1대 1 레슨이었다. 그런다 하필 두명 다 7월 중순에 국제 알렉산더 테크닉 컨퍼런스에 참석하러 가기때문에 7월 중순부터 레슨이 불가하다고 했다. 근데 너무 웃긴 것이 그 컨퍼런스가 열리는 곳이 그 하고 많은 전세계의 도시중에 지금 내가 있는 리머릭이었다. 허허허 참내. 왠지 기가 막히고 웃겼다.


어쨌든 그래서 하필 코펜하겐에 계신, 알렉산터 테크닉 협회의 회장을 3년동안 하셨던 연륜이 지긋해 보이는 전 바이올리니스트 매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내가 한달간 머무는 동안 당신에게 레슨을 받고 싶다고. vacation 을 가기 전까지 딱 4일간 수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연이은 4일 동안 레슨을 받겠다고

매리에게 답장을 썼다. 받아 본 후, 맘에 든다면 다음 도시에서도 아마 또 다시 받게 되리라.


아일랜드에서 받은 런던의 이메일 상담을 거쳐 또다시 코펜하겐으로 이어지는 이 알 수 없는 점들의 연결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무것도 알수 없어서 겁이 났던 이 깜깜했던 길을 무턱대고 걷다보니 정말 생각치도 못했던 점들이 자꾸만 나타나며 이어졌다. 내가 영어로 밤을 새며 이메일을 쓰며 상담을 받게 될줄이야. 코펜하겐에서 듣도 보도 못한 알렉산더 테크닉? 레슨을 받게 될 줄이야. 알렉산더 테크닉은 마사지나 요가? 자세교정 같은것인가? 하며 갸우뚱 거렸던 나에게는 생각치도 못했던 다음 점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일랜드 모퉁이 골목을 지나 문득 만난 장미.
다음 점이 기다리고 있는 코펜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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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지금 내가 있는 점이 아무리 괴롭다 해도

그 다음 점에 연결되기 위함이기에. 그 이어짐을 믿고 기꺼이 걸어가다보면, 그 다음 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우주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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