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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Mar 28. 2018

여차하면 방학

서른 네 살의 방학 일기


알렉산더 테크닉 티쳐 트레이닝 스쿨.

 


총 10학기, 3년하고도 3개월, 1600시간의 공부를 마치면 알렉산더 테크닉이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되는 학교 아닌 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디 붙어있는지 알지도 못했던 '아일랜드'라는 나라의 바다마을 골웨이, 거기다 시내에서 저 멀리 정류장도 없는 외딴 시골 길 어딘가 작은 집의 학교에서. 그리고, 벌써 1학년이 끝났다. 어안이 벙벙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년 쯤 지났으면 실감이 날 법도 한데, 여전히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조금 꿈같다. 길고도 짧고, 많이 울고 또 웃고, 변했지만 또 징그럽게 변하지 않은, 홀로 또 함께였던 시간이 늘 그렇듯 지나갔고, 어쨌든, 다시, 또 방학이다.




저번 학기 졸업식 풍경.




노력하지 않으려는 노력


 요새의 나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니, 노력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대략.. 1년간! 같이 공부하는 얀이라는 동료가 어느날 물었다. 너는 너가 정말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불편한 몸이(나는 몸 전반에 굉장히 센 근긴장을 늘 느껴 생활에 불편함이 있다.)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너가 열심히 하고 있는 바로 그게 잘못된 건 아닐까? ..처음엔 얀을 한 대 세차게 쥐어박고 싶었다. 니가 뭘 알아!!! 라고 외치며.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할 수록 왠지 맞는 말 같다.  


모든 것을 관두고 아일랜드까지 오기 전, 한방과 양방에 골고루 돈지랄을 하며 숱하게 병원도 다녀 보았고, 요가도 헬스도 필라테스도 물리치료도 침도 뜸도 마사지도 퇴사도 여행도 라이프코칭도 심리상담도... 안해본 것이 없었다. 사실 이곳 학교에 온 후로도 마찬가지였다. 내 몸의 긴장이 어디 있나 왜 있나 열심히 들여다도 보고, 또 그 긴장들이 풀리기를 바라며 몸에게 쉴틈 없이 이것 저것을 제안하고 실험하고 묻고 적용했다. 사실 너무 많은 것을 했다.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까지도, 절박하게 했다. 결국에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나아지고 싶어 조바심 가득히 "애쓰는" 마음과, 해도 안되는 건 아닐까 하는 절망 섞인 의구심 뿐.


당신을 괴롭히는 마음의 습관


사람마다 각자의 습관이 존재한다. 나를 괴롭히는 오래된 습관. 그 습관들은 몸과 마음 어딘가에서 꼭 사고를 낸다. 그리고 그 피해가 커져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잘 눈치를 채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온 몸이 이곳저곳 아프고, 누군가는 매일 화가 나거나, 누구는 무기력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누군가는 자꾸만 운다. 암에 걸리거나, 디스크에 걸리고,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산다. 우리는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크고 작은 신호를 보지 못하다가(혹은 모르는 체 하다가), 결국 멈춰야 할 수밖에 없는 때가 와야만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언가를 끊임 없이 해야만 뒤쳐지지 않고, 끊임 없이 이루어 내는 것들로 '나'를 입증받는 이 시대 많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트랙 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무조건 달려가는 습관이 있다. 내 생의 대부분의 시간은 실제로 그렇게 갔다. 대학을 가기 위해 쉬지 않고 줄 세워지는 성적표 중심의 시간을 어린시절 내 보내다,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던 대학에 간 이후론 취업을 해야만 하는 배신의 시간, 그리고 취미 생활을 즐기며 소소한 일상을 가질 수 있다던 취업을 한 이후로는 그 곳에서 버티기 위한 시간, 그리고 머지 않아 결혼을 해야하는 시간까지 쉬지 않고 흘렀다. 중간에 잠시 그 시간을 멈출 때면 죄책감 혹은 불안감이 들었다. 멈춰도 멈춰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내가 굳이 살지 않아도, 살아지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 것인지는 생각해 볼 새도 없던 적이 많았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끊임이 없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놓쳤다. 무수한 야근을 하고, 스트레스를 버티며, 그게 이상한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내가 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몸은 어느새 손 쓸새 없이 망가져 있었고, 마음은 지독히 찌들어 있었다. 더 이상 그 쏟아지는 시간의 흐름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나는 약한 것이 맞았다. 근데 그걸 나는 몰랐다. 약한 것이 아니고 싶었다. 강한 척 하다보면 강해지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나는 약했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맘은 계속 놀라고 상처입어서 스스로에게 문을 꽝 닫아버렸다. 어디가 다쳤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마음은 그걸 그대로 몸으로 표출해냈다. 내 몸엔 언젠가 부터 엄청난 근긴장이 찾아왔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학교에 처음 왔을 때 리쳐드 선생님이(학교의 대장) 나의 습관이 무엇이냐 물었다. 몸 말고, 너를 괴롭히는 마음의 습관이 무엇이냐고. 두 학기가 지난 후에야 대답할 수 있었다. "열심히 하는 것." 지난 직장 면접 때 나의 장점이 무엇이냐는 말에 대답했던 같은 말이기도 했다. 애쓰는 삶. 사회가 나에게 계속 얘기 하는 어떤 기준에 들어맞기 위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그 마음이 나의 모든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쥐고 흔들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멈추는 것 밖에 없었다. 그 다음 일은 티끌도 모르겠으나,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죄다 멈춰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나에게 맞는 시간의 속도를 찾고 싶었다. 곧바로 이래도 되나 하는 이유가 불분명한 죄책감 부터, 이렇게 하다 길바닥에 내앉으면 어떡하나 하는 익숙한 불안감이 날 끊임 없이 괴롭혔다. 마음과 시간의 관성은 대단했다. 물리적인 퇴사와, 조금 더 천천히 흐를 수 있다고 생각한 삶의 전환으로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쉼과 휴식은, 거저 찾아오지 않았다. 꿋꿋하게 내 스스로를 설득해야 했다.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내 시간대로의 삶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스스로 살아냄으로서 내 자신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이었다. 내 몸과 마음이 온전히 설득당할 때까지, 나는 그 괜찮은 삶을 버텨야하는 것이었다.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꼭 하지 않아도, 열심히 애쓰지 않아도, 그리고 괜찮아도 괜찮다는 것을.




클로이처럼만 살 수 있다면! 학교 앞 뜰, 가운데 클로이.




그리하여 나는 1년에 3학기라 3번이나 있는, 그리고 학기 중에도 일주일 씩 쉬니, 정말로 여차하면 찾아오는 방학을 또 다시 맞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방학을 말이다. 불안감과 죄책감은 여전히 저 어딘가에서 제 모습을 드러낼 궁리를 하고 있지만, 나는 이제 1년 전보다 조금 더 설득 당했다. 구하면 뭐라도 얻어지는 생, 어떻게든 살 방법은 있고, 산 입에 거미줄은 안치더라, 이런 것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받는 작은 희망과 위안도 조금 더해져서. 기쁘게도 드디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조금씩 지겨워지고 있다. 1년간 우울증의 힘으로 미드나 줄기차게 보아온 시간들이 말이다. 하고 싶은게 많은 것도 같은데, 막상 하려면 귀찮다. 뭔가 에너지도 없고 걱정도 되고 내가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등등 이제 또 들여다봐야 할 다음 습관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결국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도저히 지루해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틈을 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 하나를 드디어 쓴 것이기도 하다. !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


리쳐드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사회가 우리에게 누군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somebody training'을 계속 시켰다면, 이곳은 아무도 되지 않아도 되는 'nobody training'을 하는 곳이라고. 그냥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이 되면 된다고. 그게 얼마나 쉽냐고. 학교에 오고 싶으면 오고, 오고 싶지 않으면 오지 않으면 된다고. 해야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며 나에게 세상 좋은 얼굴로 싱긋 웃는다. 난 리쳐드가 죽도록 귀여워서(60대의 배불뚝 할아버지 시지만) 이곳에 있는 건지, 학교가 좋아서 있는 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내 시간의 흐름이 아주 조금씩 나를 닮아가길 바랄 뿐이다.


매일 같이 "Nothing to do!" 를 서로 외쳐대는 학교. 귀여운 스승님과, 그를 닮아가는 학생들과, 작작 좀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아니 노력하지 않으려는, 왠 한국인 학생의 2학년이, 조만간 또 시작되겠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방학이 지나면 말이다.





졸업식 다음 날, 학교 시작 5분 전, 리쳐드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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