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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Jul 01. 2018

나는 정말 변화를 원할까 - 알렉산더 테크닉

알렉산더 테크닉 유학생활 1년 차, 즐거운 변화의 기록 _ 첫 번째.

1600시간, 총 10학기, 3년하고도 3개월의 유학생활 중 어느덧 4학기를 마치고, 2년이 남아있다. 중간점검 차 그간의 나의 변화들을 간단히 정리해보려 한다. 알렉산더 테크닉을 공부하며 제일 어려운 질문은, 알렉산더 테크닉이 대체 뭐냐는 질문일 것이다. 알렉산더 테크닉은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내가 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을 우연처럼 만나 어떻게 배웠는지에 따라 대답이 참으로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공부의 난해/매력 포인트이다.


누군가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기 위한 방법을 배운다고 하고, 누군가는 예술가를 위한 몸과 감정의 사용기술, 또 누군가는 몸과 마음의 습관을 파악하고 바꾸는 기술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유럽에선 예술학교마다 기본 과정으로 들어가 있으며, 어떨 땐 재활치료에 쓰이고, 등이 구부정해진 아이들에게, 혹은 허리디스크, 파킨슨병, 공황장애 치료의 일부로, 때론 시력교정을 위해서, 통증 없는 앉기/서기/뛰기/걷기를 배우기 위해, 아니면 일상생활의 일들을 더 잘 해내기 위해, 혹은 나처럼 완전히 번아웃되고 무기력증을 앓고 있던 사람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슨 알렉산더 테크닉이 만병통치약이냐고 묻겠지만, 실제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잘 먹고, 잘 자고, 걱정 없이 가벼운 마음' 같은 것들이 그렇듯 알렉산더 테크닉에서도 사실은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듯하다. 주로 '나'에 대한 것들 말이다.


알렉산더 테크닉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 동영상. 그럼에도, 직접 해보기 전엔, 정말 좋은디...라고 말하는 산수유 광고같은 느낌을 주로 받게 된다. 작업한 자막이 곧 뜨길 바라며!


한국에서, 유럽 나라들을 떠돌며, 혹은 현재의 아일랜드 학교에서 지금까지 꽤 많은 알렉(-알렉산더 테크닉) 선생님들을 만났다. 시인과 무용수, 음악가, 달리기 선수, 서커스대장, 작가와 운전 강사, 심리 상담가, 연구원, 요가강사나 배우였던 사람들이 알렉을 만난 후 기존의 자신의 커리어와 삶을 융합해 오랜 시간에 걸쳐 훌륭한 스승이 되었고, 학교를 열거나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알렉산더 테크닉은 매우 다른 모습을 띠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누구를 만나던 그 안에서 흐르는 크고 깊은 줄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곤 생각지 못했던 본질적이고 깊숙한 질문을 만나 당황하거나, 이를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 어이없게 단순하고 쉬워서 황당했던 적도 많다.


나는 왜 이 공부를 시작했을까? 의사들은 일상생활을 멈추게 만든 내 근긴장의 원인을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했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답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난 그저 내가 되고 싶었고, 나로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한편으론 그게 뭔 소리냐, 넌 너로서, 너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할 테지만, 나는 30여 년간 여전히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나마 알고 있는 부분마저도 제대로 살지 못했고, 무엇보다 그러는 법을 잘 몰랐고, 이렇게 살다간 계속 영영 모르는 채로 몸이 먼저 부서져내리다 단명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1년간,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나는 나로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던 내 바람을 이루고 있을까? 다행히도 그 답은 강한 Yes 다. 그렇다고 '내 몸이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생을 살아갈 의지와 에너지가 생겨날 수 있을까' 에 대한 의구심과 좌절감이 온전히 나를 떠난 것도 아니고, 무려 강한 Yes 라 말하게 되기까지가 결코 쉬운 길도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나는 강하게 Yes 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변화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책을 펼쳐놓고 무언가를 더하는 공부가 아닌, 자꾸만 덜어내는 스스로에 대한 공부를 일주일에 4일씩 꼬박꼬박 쌓아나가며 물론 몸과 몸의 사용을 위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한 해 동안 나는 내가 인생에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력을 길렀다. 내가 나의 질병을 바라보는 시선, 내가 나를 묶어두었던 개념, 의식적인 선택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아이와 같은 무의식에게 맡겨두었던 현재의 시간들을 말이다.



"변화가 이렇게 쉬울 리가 없다"는 억울함과 마주하기


초반 오랜 시간 변화하려는 나의 발목을 가장 세차게 붙잡았던 것은, 아마도 억울함이었다. 여전히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고, 가장 도전적이며, 인간으로서 굉장히 재밌는 현상이다. 심지어 심리학 수업시간에 배운 바로 그것. Sunk cost bias, 매몰 비용 편향. 그동안 어렵게 노력해온 게 억울해서, 변화할 수 있는 쉬운 시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특히나 고질적인 습관 때문에 만성질환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부딪히는 난관이라 생각한다. 공부하며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은, "어깨가 너무 긴장되어 있고 불편한 게 아니라, 너가 어깨에 긴장을 붙들고 불편하게 하고 있는 거야." 라는 말이다. 주어와, 책임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어깨가 널 괴롭히고 있는게 아니라, 니가 어깨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니가, 어깨를 그만 괴롭히면 된단다. 쓰는 지금도 여전히 어금니가 꽉 물린다. 역시나 아직도 괜한 억울함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그렇게 쉬운 것이었으면 왜 내가 이 긴 시간동안 고통받아야 했단 말인가? 단순히 어깨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무언가 엄청나게 복잡한 것들이 얽힌 것이 분명한데. 그래서 그 많은 치료와 운동들에도 불구하고 결코 나아지지 않았던 것인데, 난 분명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끈질기고 지겨운 무언가에게 오랜 시간 괴롭힘을 당했고, 눈물과 절망의 시간을 이겨내며 죽도록 노력을 해왔는데, 그럼에도 차도가 없었는데, 이게 그리 간단한 것이라고 끈질기게 말한다. 리쳐드는 나와 늘 같은 이야기를 자주 반복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나에게, 1년을 내리 같은 말을 반복해 주었다. 늘 방긋 방긋 세상 간단하단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나는 나에게 뭘 하고 있냔 말이다



"너가 매일 벽에 머리를 쾅 쾅 내려쳐놓고 근데 나 머리가 아픈 것 같아.. 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너는 뭐라고 말해줄래? 그럼 벽에 머리를 박지 마. 라고 말하겠지? 그리고 상처가 났을 때 생긴 딱지를 가만히 두기만 하면 다친 데가 저절로 낫지? 근데 너가 그 딱지를 계속 떼어낸다고 해봐. 그럼 나을 리가 없지. 똑같은 거야. 너의 몸은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우선 너가 너를 어떻게 아프게 하고 있는지를 찾아야 해. 그리고 그것을 하지 않으면 돼. 그리고 딱지가 다 나을 때까지 너를 괴롭히지 않으면 돼."


"그래. 말은 쉽지. 개념은 알겠어. 근데 그래서 대체 내가 어깨를 긴장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는 어깨의 긴장을 풀려고 생각할수록 더 긴장이 되는데. 노력할수록 더 괴롭다고. 안 해본 게 없다니까! "


"우리의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반응하게 되어 있어. 아이들을 봐, 호기심을 동력으로 움직이고, 눈이 보는데로, 머리가 이끌고 몸이 따라가지. 너 화장실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 의자에서 엉덩이를 일으키고 오른쪽 다리를 떼고 왼쪽 다리를 움직여야지 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우리의 몸은 우리가 방해하지만 않으면 우리가 의도하는 대로 가장 조화롭게 몸을 움직이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 우선 너가 어깨가 긴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너의 몸은 긴장될 수밖에 없어. 너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근육을 하나씩 조정하려고 드는 것도 도움이 안 돼. 그리고 알렉산더가 말했잖아.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느냐가 아니라, 그 노력이 어느 방향으로 이루어졌는지가 중요한거라고. 올바른 것을 하려 하지 말고, 잘못된 것을 멈추면 돼. 긴장이라는 건 왜 하는걸까? 인간은 동물이라,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근육의 긴장으로 해석하게 되어 있어. 동물은 적을 만나 도망가거나 싸워야 할 때 긴장하며 준비태세를 갖추지. 인간도 마찬가지야, 어려운 일을, 화나고 슬픈 일을 만나서 도망가거나 싸워야 할 때.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몸을 준비하는 거야. 책임감을 가질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한 자세로 쉼 없이 오랫동안 앉아 있을 때도 우리는 긴장을 하지. 동물들은 긴장해야 하는 일이 지나가면 어떻게 하는 줄 아니? 얼룩말은 몸을 탈탈 털어내. 그야말로 몸을 흔들어서 긴장을 털어내지. 근데 인간은, 그 사실을 잊은 거야. 긴장할 일이 지나갔는데도, 긴장을 계속 붙잡고 있지. 너는 어때? 왜 긴장하고 있어? 지금 여기에는 천장이 무너질 일도, 불이 날 일도 없어. 심지어 오늘은 햇빛이 좋고, 바람이 달콤해. 지금 여기서 너가 긴장을 붙잡고 있어야 할 이유 있을까? 너는 안전해. 긴장을 붙들어 둘 필요가 없어. 그걸 믿어야 해."


You translate everything, whether physical, mental, or spiritual, into the muscular tensions.
우리는 육체적인, 정신적인, 영적인 모든 것을 근육의 긴장으로 해석해낸다.
F.M. Alexander



나는 왜 긴장을 붙잡아 두는 걸까? 그게 그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일일까? 머리로 애써 이해하는 척하며, 마음을 내려놓아보려 했지만, 몸으로는 큰 변화가 없던 긴 나날들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 A라는 새로운 사람이 찾아왔다. 불안장애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이 앞에 나와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잠깐 있었고, 리쳐드가 도움이 될 만한 것, 시도해 보면 좋은 것을 얘기해 주었는데, A는 내가 시도를 안 해본 게 아니야.. 근데 별 소용이 없어. 라고 말을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A가 변화할 수 없는 이유를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나의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마음은 그간의 소용없음이 만들어 낸 절망에 잠식되어 있었고, 절망에 머무는 것은 안전했다. 변화가 그렇게 쉬운 것일 리가 없다, 왜냐면 그 말은 지금까지 내가 헛된 노력을 했다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잘못된 노력에 내 모든 에너지를 바치느라 내 삶을 누리지 못했으니까. 그는, 아니 나는,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안전했기 때문이다. 내 과거 시간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그 절망감을 뚫고 살아남은 나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서.


리쳐드의 말이 맞았다. 변화는 쉽고 간단했다. 어려운 것은 나의 마음을 설득해내는 일이었다. 그동안의 절망을 내려놓고, 그간의 노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내 지난 세월이, 덧없이 지나갔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야만 지금이라도, 앞으로의 좋은 세월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긴장을 붙잡아 두는 이유는 복잡한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 이런 일들을 겪어 왔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습관처럼 긴장을 하는 것일 거다. 내가 그동안 노력한 방식으로는 실제로 이 모든 것을 여전히 극복할 수 없는 것 또한 맞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긴장을 붙드는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리고 앞으로 여전히 내가 그 복잡한 이유로 긴장을 끊임없이 붙들게 되더라도, 지금 나는, 그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내려놓겠다고 결심해내는 것, 과거의 나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순한 변화를 진심으로 원하는 것, 그 모든 복잡한 원인과 절망의 무게와 끝끝내 이별하고, 단순한 현재로 발을 딛어내는 마음이었다. 더럽게 억울하고 말도 안 되지만, 이렇게 쉽다는 것을 그냥 인정하는 것. 그리고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그러니 잘했다고, 이제 됐다고. 이제 다 쉽다. 이제부턴 정말 쉽다.고 소리쳐 보는 것. 그렇게 어려운 거였는데, 이제 다 쉽다!!!! 고 외쳐 보는 것. 다 괜찮다고, 내 마음을 다독이는 일. 용기 내어, 그렇게 믿어보는 일. 그것이 변화의 시작을 위한, 나를 찾는 이 기나긴 여정의 길을 출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어렴풋이 든다.



축하한다 나야!




사실 이 이야기는,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알아챌 수 없었던,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던, 그래서 더 괴로웠던 내 몸 안에서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기엔 멀쩡해 보였겠지만, 걷기도, 눕기도, 앉기도, 서기도, 뛰기도, 모든 것이 괴로웠던 날들을 외롭고 외롭게 살아낸 날들에 대한 이야기. 모든 것들은 언제나 개별적이고 주관적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니거나, 해당이 되지 않고, 누군가에겐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일 테지만, 이 이야기가 작은 불씨가 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쓰다 보니 오랜 기간 포기하고 싶은 많은 순간 토해낸 깜깜한 울음들을 기꺼이 받아내어 준 내 남편에게 참으로 고맙다. 뭔가 아주 혼자만 눈물 없인 쓸 수 없는 글을 쓴 기분이다. 그래서 몸이 많이 나아졌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니, 몸은 여전히 날 자주 괴롭힌다. 아니, 나는 몸을 여전히 자주 괴롭힌다.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인 기분이다. 그치만 난 강하게, 변화의 기운을 느낀다. 가벼운 마음이다. 어려운 길을 스스로 빠져나온 자의 후련함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어렵지만, 아주 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쉬운 길 위에 올랐음을 믿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변화임을 누구보다도 나는 잘 안다. 요이 땅, 이제 출발이다. 더 새롭게 지랄맞은 많은 눈물과 웃음이 즐비할 즐거운 여정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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