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시간부자의 일기
2018.09.18
여전히 아직 방학이긴 하다만, 개학 중일지언정 나의 월요일은 늘 비어있다. 이 놈의 멋진 학교는 화수목금만 가면 된단다. 이 뭔 천운인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졌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월요일이 있다는 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특히나 비가 오고 생리통이 심한 월요일이라면 말이다.
대학 졸업 후 알바 생활을 마치고, 처음 회사라는 곳에 제대로 취직이 되었을 때, 나는 당시의 남자친구를 붙들고 엉엉 울었더랬다. 문득 이 자유의 평일들이 이제는 정말로, 확정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뚝뚝 흘렀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쁨보다도, 평일 낮, 이 대수롭지 않은 거리를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 별일 없는 월요일들을 잃는다는 것이 그렇게 서럽게 슬펐더랬다. 그 정도 상실감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공평하게 눈물이 팡팡 나며 기뻐야 할텐데. 지금 다시 되찾은 월요일들은, 역시 그저 '별일 없는 월요일'로 돌아와 있을 뿐이다. 대수롭지 않은 방구석에 앉아 생리통을 겪고 있을 뿐. 역시 인간은 간사하기 그지없다.
-
돈 벌 길을 찾고 있다. 우주에게 부름을 내려주시라 시건방을 떨어본다. 그래서인지 나대신 오빠가 부름을 받고 있다. 우주님이시여 계속 그리하여 주시면 더 좋겠지만 천하태평 곰돌이 하나론 턱없이 모자르겠지. 우선 당장은 매일 매일 생각나는 것을 뭐든 써 보기로 맘을 먹고, 쓰기를 하고 있다. 내가 가진 비자는 Stamp 2A ,일명 일 못하는 비자로 내가 아일랜드에서 할 것은 없고, 우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글이든 컨텐츠를 만들어 보는 일인 것 같아 블로그 부터 시작하고 있긴 한데. 하루 종일 미루다가 밤 11시 반쯤 되어서야 끼작 깨작 시작했단거 빼곤 며칠 동안 계속 뭔갈 쓰긴 썼다. 일기 말고 좀 더 공이 들어가는 것들을 쓰고 만들어야겠긴한데, 나는 여전히 계속 별일 없는 월요일과 화요일과 수요일과 일주일 내내를 갖고 싶은 욕심뀨러기여서 아직까진 이정도까지의 노동만을 허한다. 그러게 둔다. 무리하지 않으며 기꺼이 무언가를 해내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리... (라고 쓰고 다행히도 오빠가 사진 관련 일이 몇 개 들어와서라 읽는다......)
-
오늘 나름 틈틈히 <unlimited memory> 를 읽었고, 블로그 잇님이 추천해주신 밀리의 서재(매달 9.900원 결제로 앱에 보유된 ebook 을 무제한 읽을 수 있는 서비스)도 첫달 무료로 신청하여 서재에 책을 마구 쌓아 놓았다.
<아무튼, 외국어> 라는 조지영 작가의 책을 훑다가 빠져들어 중간 쯤 부터 정독하고 있다. 외국어 공부에 소질 따윈 전혀 없음을 서론부터 고백하는 불어전공자인 그녀는, 그럼에도 불어, 독어, 스페인어.. 다양한 나라의 언어들에 왜 자꾸만 홀리는가, 왜 다 배우지도 못할거 언어란 놈에게 그것도 이놈 저놈에게 자꾸 빠져들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무엇이든 명확하게 설명해야만 하는 독일의 정확한 문화가 10개가 넘어가는 관사에서 나타남을 발견하고, 영화 코코의 스페인어 노래들이 영어로 더빙되면서 얼마나 그 특유의 절절함이 사라졌는지 아쉬워하며, <Habla con ella - 그녀와 말해요>, 라는 영화 제목이 영어로는 <Talk to her - 그녀에게 말해요> 로 번역되면서 '소통'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이야기 한다. 각 나라와 언어에 대한 그녀의 로망과 지식과 이야기들을 유쾌하고 소소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매우 재미지다. 대충 읽은 처음 부분을 다시 읽을지도 모르겠다.
-
큐레이션이나 스토리텔링에 늘 관심이 있어 왔는데 무언가를 시작해보려니 정말 제대로 된 노동을 해야한다.(뭐라니..) 우선 말할 것을 정해야 하고, 머리속에 입력해야 하고, 다시 누구의 눈으로 어떻게 풀지를 고민하고, 공을 들여 만들어야 한다. 모든 일은 제대로 된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겠지?(?) 그런걸까?(??) 그래서 오늘 <일하지 않을 권리> 라는 책도 빌렸지......부질없이 닥치고 욜심히 해야하겠지만, 그렇지만, 어쨌든 나에겐 별일 없어도 되는 월요일이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본다. 오늘도 참으로 아무일 없이, 생리통약을 먹고 잘지 말지 고민하며 나의 월요일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