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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Nov 15. 2018

등대지기의 월요일을 상상하며

숨겨진 비밀의 길, 아일랜드 위클로 헤드 라이트하우스 


아일랜드 동쪽동네 여행 이야기, 두 번째.

테이블을 밟고 올라가야 바다가 보이는 숙소 


더블린 일정을 마치고 위클로에 있는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 얘기를 잠깐 하자면, 여느 때와 같이 Booking.com 에서 잡은 숙소. 이름은 무려 Hilltop Seaview Apartment 였는데.. 번호들이 달려 있는 아파트 단지로 안내가 되더니 그 한가운데서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네비에게 정신을 차려달라 부탁했지만 같은 곳에 우리를 자꾸 세워주었다.  알고 보니, 일반 아파트먼트(1-2층짜리 빌라들)단지에 있는 집주인이 에어비앤비와 부킹닷컴을 이용해서 숙박업을 하고 있는거였음. 집주인들 정원 뒷켠에 있는 게스트방을 활용하여서! 에어비앤비로 구했으면 예측이 가능했겠지만, 부킹닷컴에서 주택을 빌리면 보통 개인집에 딸린 곳 말고 제대로 된 숙박시설을 만나게 되는지라 왠지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방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언덕 위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딱히 바다가 보이는 산책로가 있진 않았다. 주인아찌는 정원에 있는 야외테이블을 밟고 올라가면 풍경이 보인다고 하며, 언제든 밟고 올라가서 보라며 사람좋게 허허 웃었다. 숙소 실패까지는 아니지만, 언덕위 바다뷰를 기대하고 가격을 조금 더 내고 굳이 고른 방인데, 뭔가 아이고나 방심했구나 싶었다. 게다가 방이 생각보다 추워서 왜이리 춥나 하고 잤는데 알고보니 커튼 뒤에 창문을 열고 잔 우리..... ㅋㅋㅋ '기대'란 놈은 무서운 놈이다. 숙소 고를 땐 역시나 마지막까지 정신을 바쫙 차릴 것. 이름에 속지 말고 현실적인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평과 사진을 잘 보아두어야 한다. 





넓은 방과 작은 부엌. 네 명이 자도 충분한 방. 이 사진 체크 아웃할 때 찍은 건데... 놈나 깨끗하게 정리했네;



아일랜드의 정원, 위클로 


저녁에 숙소에 있는 위클로 책자로 정보를 찾아봤는데, 은근히 갈 곳이 많은 듯 하여 혼란이 찾아옴; 위클로는 아일랜드의 정원으로 불린다. 운전을 하며 보이는 풍경이 정말 다른 지역들의 돌산이나 넓고 넓은 들판들이 아니라, 나무들이 여기저기 많다. 제주시에 있다가 서귀포시에 온 기분과 좀 비슷하다. 남쪽나라의 느낌이랄까. 주택가에도 좀더 휴양지스러운 느낌이 있다. Donegal 바닷가에 가면 미친듯이 바람이 불어서 걷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그래서 도네갈 사투리는 소리를 지르는 듯한 느낌인가? 아니 이렇게 따사로운 곳이 있었다니. 킬라니, 도네갈.. 그동안 우리가 험한 곳만 주구장창 골라다녔나 싶은 느낌이 들어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아일랜드에서 뼈가 너무 시릴 땐, 위클로로 도망와야지.

어찌되었든 우리의 일정은 하루였기 때문에, 욕심은 고이 접고 원래 가기로 했던 Glenda lough, Powerscourt waterfall 두 곳에 더해 아침에 바로 숙소 근처에 있던 등대 산책로에 잠시 들리기로 했다. 


굽이 굽이 숨겨진 비밀의 산책로, 위클로 헤드 라이트 하우스


네비에 목적지를 찍고 도착한 곳은 저 등대가 보이는 빨간 문앞. 하지만, 문에는 이곳은 개인 소유지이니 출입을 절대 엄금한다. 라고 써있다. 오돌돌 나 같은 겁보는 저 문 앞에 서자마자 간이 개미똥꼬만해져서는 오빠에게 돌아가자고 소리를 빽 질렀다. 들어 가냐 마냐 실갱이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문 앞에서 보이는 것들은 뭔가 시원찮은 보이다가 마는 바다와 들판.. 돌아가려는 발이 잘 안떨어진다. 아니! 구글지도에서 평이 분명 높았는데 요런 말은 없었다.. 핑계거리를 찾기 위해서 구글을 다시 뒤졌더니, 문 앞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써있지만 다들 들어가지롱. 이라 써진 평을 찾았다. 조금의 용기를 얻었지만 그럼에도 누가 볼세라 오빠를 붙잡고 덜떨어진 도둑들 마냥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다.



묘하게 등대를 지나 바다가 보이는 작은 길이 보이자 금세 신이 나기 시작한다. 나쁜 짓이 이래서 재밌는건가. 어느덧 오빠를 지나 달리듯 성큼성큼 바다로 향한다.!


(끼야호)


그렇게 코너를 돌고 돌자 펼쳐진 마법같은 풍경. 바다 근처까지 연결된 곁길도 있었다. 일정이(혹은 용기가ㅋㅋ) 좀더 넉넉했으면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봤을지도.



그 다음에 나타난 또 다른 등대. 이 작은 언덕배기에 등대가 총 3개나 있다. 위의 사진은 가장 바다 가까이에 있던 등대. 옆에는 등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가 보인다. 잘 안쓰는 듯 해보이는 작은 부엌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창문. 그리고 그 앞에 안락의자 두 개가 놓여져 있다. 

등대지기는 몇 시에 출근할까? 등대에 불을 켜야하니깐 밤에 출근하나. 해질녘 출근하여 그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았을 등대지기의 월요일을 상상해 본다. 깜깜한 바다 앞에서 별을 보다 심심해지기도 하고, 비바람이 부는 날이면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겠지. 살면서 등대지기를 직업으로 생각해 볼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하고 있는 일. 세상에는 참으로 내가 모르는 다양한 모습의 삶이 있겠지.


이 등대는 평소에는 잠겨있지만 일반인들이 예약하면 숙소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아쉽지만, 드넓은 호수와 폭포를 보러 등대에게 작별을 고한다. 만나지 못한 등대지기님께도 몰래 나의 발자국을 남기며, 수고가 많으심다.



나오는 길에 보이는 드넓은 들판과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소와 양들. 아까 처음 만났던 미지의 빨간 문과, 비밀의 길을 돌고 돌아 나와 다시 만난 빨간 문의 느낌이 새삼 다르다. 30분 동안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기분이다. 위클로 바닷길을 지난다면 꼭 들러 볼만한 위클로 헤드 라이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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