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뺀 기운에게서 힘을 얻는다
알렉산더 테크닉 학교 이야기.
이번 주에는 독일 프라이보그에 있는 Aranka 의 학교에서 선생님 4분과 학생 6명이 통째로 우리 학교에서 한 주를 보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부담도 됐고, 에너지 조절이 잘 안될 것 같아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신기하고 새로운 몸과 마음과 손의 '다름'을 만나니 놀랍고 재미나고 마구 배우고 싶은 마음이 풀풀 나와서 스스로도 좀 놀랐다.
학교마다 아무래도 디렉터의 영향을 받는 전체적인 느낌이 있는 것도 재밌고, 이번 독일 학교 사람들의 손은 대체로 무언가 비슷한 기운이 있는 것도 신기했다. 굉장히 가볍지만 깊은 핸즈온(Hands-on : 상대가 몸의 상태를 인지할 수 있도록 손으로 가이드를 주거나, 감각정보를 전달하는 알렉산더 테크닉의 기법), 등을 쓰담쓰담 쓸어주는 동작이나, 지속적으로 부드러운 움직임을 주며 가르침을 주는 방식이 대체로 비슷했다. 물론 개인마다 가르치는 스타일은 다 달랐지만, 그 안에서의 공통점이랄까. 리챠드의 빠워있는 손에 비해, 우리 학교 사람들의 손은 꽤 각양 각색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학교 사람들만의 공통점이 있다면 뭘까궁금하기도 했다. '독일 사람'들이라 해서 뭔가 조금 깐깐하고 딱딱 떨어지는, 정석적인 모습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유롭고 부드러운 분위기에, 빠짐없이 챙기는 똑떨어짐이 묘하게 묻어나는 것이 뭔가 내가 넘나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음... 크로아티아 사람인 디렉터 아랑카는, 뭔가 한 번에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여러 디멘션을 가진 매력이 폴폴 풍기는 멋진 할머니. 아 정말, 알렉을 하며 가장 좋은 점은, 나도 이렇게 늙고 싶다는 롤모델을 많이 만나게 되고, 매력 쩌는 나이 듦의 아이디어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
-
매일 거의 두 시간씩 독일 학교 사람들과 서로 턴을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번 나의 주제는 시팅 턴에 대한 두려움 극복이었음. 결국에 모든 것은 리쳐드 말처럼 "I am not enough" 에서 시작되는 두려움인 듯 하다. 나라는 존재로서 충분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잘 알아야하는데, 누군가에게 그저 '나'로서, 나를 나누어 주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진짜 내 속을 내보이기가 부끄러운 마음, 나도 나를 모르겠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마음을 만나게 된다.
독일 선생님들 4명에게도 턴을 받았지만, 오늘 3학년 학생이었던 안나와 주고 받았던 턴이 유독 나에게 많은 힘을 주었다. 막상 기억하려고 보면 안나는 꽤 많은 말을 하긴 했지만, 별 특별난 말은 하지 않았다. 매일 듣던 말들이기도 하고, 레슨 받을 때 마다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같은 길을 외롭게 건너온 자가, 두려움의 짐을 덜어내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전하는 소박한 고백은 마음을 움직인다. 말 보다도 부드럽게 서서 날 바라보는 몸이, 눈동자가 말한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그저 지금이어도 괜찮다고. 머리 속에서 무언가를 고치려 애쓰는 동안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음을 놓치게 된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긴장을 놓아도, 놓지 않아도 정말로 괜찮다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이 것들이 몹시 진지해 보이지만 우리가 진지한 척 만들어서 그렇다고. 사실 그냥 별 것 없다고. 몸도 마음도 제 갈길을 갈 것이니, 두면 된다고. 이 두려움의 길이 생각보다 가볍고, 꽤 재미나고, 대수롭지 않다고. 그냥 나이면 된다고. 나약하고, 부드럽고, 강한 그녀의 존재가 나에게 말한다.
안나의 턴을 받고 마음이 가득해졌다. 한참 후에 안 떨리는 척 별 말 없이 안나에게 다시 가서 시팅턴을 잠시 해주었다. 그렇게 좋은 턴을 받고, 나는 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꿋꿋하게 지금을 견뎠다. 내가 된다는 건 무얼까 하는 물음표를 안고. 순간에 손을 얹어 본다. 아주 잠깐의 턴이었는데도 저 멀리 도망치고 싶었지만, 안나는 이거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고, 너의 더 많은 것들은 언젠가 알아서 열릴 거라고 했다.
힘 뺀 기운에게서 힘을 얻는다. 마음을 나누는 시간들이 좋다. 조금씩 용감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이거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기로 해본다. ㅎ
2018.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