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순간 삶을 택할 수도 있다. 좀더 깊이 삶으로 삶으로 나아가기를
왁작왁작한 학교 20주년 파티가 끝났다. 일주일간 독일의 학생들, 선생님들과 함께한 일주일도 끝났다.
나에게 영향을 미친 선생님들을 꽤 만났지만, 이번에 만난 아랑카는 무언가 특별하다. 너무나 가볍게 살아 움직이던 그녀의 손도, 변화무쌍하고 솔직하던 눈빛도, 그리고 내가 여자인 스승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된 것도. 아랑카와의 짧은 턴에서 나는 너무나 내려놓고 싶지만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무의식 속에 고집스럽게 박혀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 그리고 그 무언가가 주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 내 말을 그녀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 강력한 고통의 힘이 딱 그만큼의 세기로, 반대로 살아나는 힘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안의 혹은 내 앞의 어떤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열어 보는 것, 컨트롤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살아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것이 그대로 그녀의 존재에서, 손에서, 마음에서 진하게 전해졌다. 일주일이 너무 아쉬웠다. 그리하여 독일 학교 사람들이 떠나는 마지막 날, 나는 아랑카에게 벌컥 일주일간 독일의 학교로 놀러가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마 1월 즈음에 가겠다고. 그냥 뭔가 그곳에 다녀와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다니면서도 굳이 갈 맘이 없었던 독일이라니.
돈도 없고 뭣도 없지만 어찌저찌 다녀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말하자마자 아랑카는 바로 잘 곳을 마련하여 엮어주었다. 슝슝 일사천리로.
살면서 문득 문득 요러한 길목에 들어선다. 내 성미상 결국엔 가봐야만 하는 길이 짠하고 나타난다. 아일랜드에 온 것도 그리했고. 따라가 보면 다음 길의 실마리가 나타나곤 했다. 그 경험들이 쌓여 어떤 믿음이 생기기도 한다. 이젠 별 주저도 없이 덜컥 길위에 오른다. 남의 학교 가서 이꼴저꼴 힘들고 외로운 시간들이 그려지는데도 그 안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묘하게 기대가 된다. 살아있는 기분이 있다면 이런 기분인 것인가, 좀비처럼 살아온 날들이 하도 많으니 나에겐 꽤나 낯설은 기분이기도 하다. 걱정은 접고, 삶을 믿어 보는 기분. 삶이 주는 것을 기꺼이 받아봐본다.
파티에서 만난 첨보는 졸업생 한명이 진짜 뜬금없이 자기 얘기 하다가 학생이 준비가 되면 선생이 나타난다는 말을 했다. How life unfolds, it is truly beautiful. 이라며. 진짜로 그러하다. 오늘 아랑카가 말한 것 처럼, 엔리케가 만든 영상에서 중얼거린 것 처럼, 우리는 매순간 삶을 택할 수도 있다. 좀더 깊이 삶으로 삶으로 나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