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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Dec 08. 2018

#1. 지구도 나도 좀 살려고요.  

지구특공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1시간 20분, 걸어서 학교가는 길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우며 


유럽 대륙의 가장 서쪽, 초록의 섬나라 아일랜드에서 머문 지 어느덧 1년하고도 7개월이 지났다. 한국에서 버티며 사는 삶에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들고 도망치듯 떠나와 알렉산더 테크닉을 배우고 있다. 물론 돈은 점점 바닥나고 있다. 그래도 집에서 15분만 걸으면 바다가 나온다. 1년 내 미세먼지가 있는 날은 0일. 집에서 밖으로 나오면 온몸이 짜릿할 정도로 공기가 좋다. 20분만 걸으면 어쩜 이리도 너른 땅들을 그냥 이리 내버려 펼쳐두었나 싶게 초록 들판들이 나오고, 그 위의 한가로운 소들이 눈을 꿈벅이며 인사를 건낸다. 


지독한 무기력감과 근긴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방법을 절박하게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에는 나를 돌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만이 살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별 것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알게 되는 사실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다. 무얼 먹고, 얼마나 걸었는지, 꾸준히 집안일을 하고, 손과 몸을 충분히 썼는지, 내가 원하는 노동을 하고, 궁금한 것을 배우며, 쓸데 없는 놀이를 하는 시간을 충분히 보냈는지와 같은 것들. 결국 몸이 주는 신호들에 제때 알맞게 반응하고, 뭘 하든 마음이 괴로울 때까지 버티지 않으며 사는 방법을 실험하게 된다. 


시간이 많아지며, 일상의 범위가 늘어난다. 언제나 먹는 낙이 가장 큰 낙인 나에게 하루 중 가장 큰 일과는 그리하여 오늘은 뭘 해먹지이다. 돈은 없지만 요리할 시간은 많다. 외식찬스 같은 것은 없다. 먹고 싶은 것을 뭐든지 만들어 먹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한국에선 스트레스 때문에 거의 항상 말썽이던 위장문제들이 이젠 단순히 음식에 따라 반응한다. 뭘 먹으면 가스가 차고, 뭘 먹으면 속이 편한지를 가늠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속이 불편하면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것도 좀더 명확해진다. Gut feeling 이라고 부르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결국 점점 자연스레 건강한 식재료와 식단으로 눈이 돌려진다. 


이 동네엔 유기농 제품들과 온갖 신기한 베지테리언 식재료들을 파는 식료품점이 있다. 게다가 주변엔 비건이나 베지테리안들이 그득이다. 그렇다보니 평소라면 결코 만들 일이 없을 고기 없는 잡채를 만들어야 되는 날이 온다. 이곳 친구들을 초대하면 야채만두, 고기 없는 쌈, 액젓이 안들어간 백김치.. 결코 맛볼 일이 없는 야채식단을 반강제적으로 만들고 먹게 된다. 그런데 웃긴 것이 고기 없는 음식이 왠걸? 꽤나 맛이 있다. 누구 줄 잡채도 아닌데, 어느덧 집에서 고기 없는 잡채를 만들어 먹고 있다. 더군다나 오가닉 과일과 야채는 농약 묻은 채소들보다 10배쯤 더 맛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된다. 결국엔 창가의 단 한뼘 틈에서 작은 샐러드 농사를 시작한다. 


시간만 부자인 백수 유학생으로 살아남으려 한 것인데 어쩌다 보니 창의로운 자급자족 기술의 세계를 열어 버렸다. 점점 다음 단계의 수준이 높아진다. 소화가 더 잘되는 빵을 만들 수는 없을까, 탄산 음료 덕후인 나를 위해 만들어 먹을 음료는 없을까.. 자급자족 세계엔 이미 앞서가는 대 스승님들이 주위에 많다. 유튜브 세대로 살게 된 것도 기맥힌 축복이다. 개안을 하고 보니 배울 것이 투성이다. 새로운 삶이다. 뭐 그렇게 만들어 먹을 것이 많단 말인가. Kombucha니 water kefir니..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많다. 흥미진진하여 죽을 것 같다. 


매일 유산균 음료를 만들려면 얘네한테도 밥을 줘야하니 부지런해질 수 밖에 없다. 몸에게 맛있는 것을 잘 먹이면, 밖에 나가 산책할 기분이 난다. 달달한 공기를 세차게 맞고 오면 머리가 맑아진다. 개운해진 머리로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고픈 일이 하고 싶어 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누리는 힘을 기른다. 별 것 없어 보이는 것이, 가장 별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잘 먹고 잘 지내는 일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결국에는 삶의 전부가 아닐까. 


천연 발효 탄산음료 Water kefir. 레몬생강청이 발효되며 추는 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결국엔 나에게 돌아온다


그렇게 나를 살리는 삶을 되찾게 될수록 결국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좋은 음식, 좋은 쉼과 노동을 찾을 수록, 결국엔 내 주위에 '자연'이 충분히 살아있어야만 한다. 좋은 야채를 먹으려면 건강한 땅이 있어야 하고, 좋은 우유를 먹으려면 행복한 소가 있어야 한다. 좋은 산책을 하려면 맑은 공기가 있어야하고,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을 하려면, 지구인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당장 12년 후면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로 인류는 멸망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고 한다. 인류가 변화를 일으킬 시간이 120년도 아니고, 딱 12년이 남았단다. 그때면 인생의 한창인 마흔 한복판이다. 이제 좀 잘 살아볼라고 할 때쯤이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겨우 좀 살겠을 즈음에 지구가 없어질 판이다. 


페이스북에 온통 쓰레기 천지인 바다나 강 같은 무서운 동영상들을 보면, 저렇게 쓰레기로 점철된 거대한 바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은 무기력감이 몰려온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결국에 저 모든 것들이 내가 한 짓이기도 하다. 내가 구매하는 모든 것들의 플라스틱 포장재와 부엌 세제와 샴푸가 결국에는 내가 마시는 물로 돌아가고, 내가 먹는 음식의 땅으로 돌아간다. 내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 컵이 녹아있는 땅에서 자란 배추, 내가 쓴 샴푸가 녹아 있는 물로 찌개를 끓여 먹고 있는 것이다. 나만 먹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제 100일 된 내 친구 딸래미도, 초등학생 조카에게도 돌아간다. 눈 앞이 캄캄해진다. 


지구를 지키는 것은 대단한 누군가가 전기자동차를 상용화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해내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이 보통 사람의 수많은 삶들이 변화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의 삶이 변화한다는 것은 결국 지구를 살리기 위한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살리는 일이 아닐까. 아직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았을 때, 설국열차같은 세상의 마지막 기차에 몸을 싣기 전에, 아직 푸르른 가을의 하늘을 볼 수 있을 때, 눈사람을 만들 수 있고, 봄의 연둣빛들이 남아있을 때 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열심히 스스로를 살리다보면 지구도 살려지는 것이 아닐까. 


아주 가끔의 아침 산책이 주는 바다의 엄청난 풍경들 




진짜 '지구인'의 삶이 주는 가능성을 마주하며   


그리하여 나도 지구도 좀 살아보려고, 지구특공대가 되기로 결심한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그 시절 캡틴플래닛도 알았던 것을 나는 지금에서야 시작한다. 지극히 찌들고 때 탄 보통 사람이 스스로를 살리려 애쓰는 시행착오의 기록이자, 서툰 초보 지구특공대의 변화 일지를 남겨보려 한다. 옆동네 소가 오늘도 큰 눈을 멀뚱이며 그래서 오늘 저녁은 무얼 먹을 것이냐 묻는다. 소와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친구의 친구를 먹는 것은 아무래도 잔인한 일이니까. 저 멀리에 보이는 초록의 바다에 맘이 시큰하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자연이 주는 것을 온전히 누리며 살았던 조상들의 지혜를 낱낱이 훔쳐오고 싶다. 34년 학교에서 사회에서 나는 뭘 배운걸까. 맨날 지들끼리 싸운 땅따먹기의 역사 말고, 좋은 흙을 만드는 법, 건강한 위장을 지키는 방법을 다시 배우고 싶다. 배울 것이 산더미다. 누릴 것이 산더미다. 오래도록 누리기 위해 지킬 것이 많다. 지구특공대로서 어깨가 무겁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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