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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Jan 08. 2019

#2. 우리는 생긴대로 살 수 있을까?

  초보 지구특공대의 일기 :  나도 과일도, 포장 없는 삶을 위하여  

; 땅 불 바람 물 마음




인생의 절반이 포장이다


인류는 뭘 그렇게 포장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을까. 몸도 이미지도, 음식도 물건도 온통 포장과 포장의 연속이다. 어디서 무얼해도 멀쩡해 보이는 것, 좋아보이는 것이 중요한 사회다. 아일랜드에서 1년 7개월을 살면서 드디어 화장(..비비크림)을 끊었는데, 지난 여름 한 달간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며 다시 오래 된 비비크림을 들고 거울 앞을 서성이는 나를 발견했다. 그냥 내 얼굴로 밖을 나간다는게 용기가 필요한 곳인 것을 잠시 잊고 살았다. 어쩌면 이런 사회에서 모나고 멍든 사과를 마트에서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Photo by Karina Tes on Unsplash


너무나 자연스레 마트에서 과일을 고를 때면 게 중에서도 가장 멀쩡하고 반짝이는 아이를 고른다.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라 가끔 싱싱하게 달콤한 향이 나는 과일을 찾으려고도 해본다. 포르투갈 어느 골목 과일가게 앞, 가게를 들어서기도 전에 머리가 짜릿할만큼 폭발하던 과일의 단내를 떠올려 본다. 그치만 커다란 마트의 반짝이는 사과에서는 아주 은은한 향수같은 향이 난다. 뭔가 의문스러운 냄새다. 이런 냄새가 나는 사과라면 이브가 굳이 사과 나무에서 따먹었을까 싶다. 태초에 선악과가 마트 사과였다면 인류의 원죄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별 다른 수가 없으니 그나마 향수같은 냄새가 조금이라도 더 나는 애들을 찾는다. 예쁘게 생긴 사과들을 비닐 봉지에 담아 비닐향을 추가하며 생각한다. 살아있는 냄새가 나는 사과는 어디에 있는 걸까. 모나고 멍든 사과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너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몇 달 전 학교 동기 올리브가 나에게 줄 것이 있다며 차 트렁크로 날 데려갔다. 저번 주말에 아는 사람의 옆 집에 큰 사과나무들 밑에서 다같이 사과를 따고 주웠단다. 트렁크의 대용량 종이백에 가득 찬 사과들이 보인다. 시큼상큼한 사과향이 곧바로 코를 공격한다. 절로 침이 고였다. 저 중에 한 열댓개 주겄지 했는데, 종이백 통째를 가져가란다. 자세히 들여다 봤는데 잠시 말문이 막혔다. 온 군데에 찍찍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사과 표면에 상처 딱지들이 보인다. 크기도 꽤나 작고, 모양은 제각각에, 멍든 구석구석들이 보인다. 이거 과연 먹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선은 선물이니까 표정관리를 다시 하고 너무 고마운데 나 이거 너무 많아서 다 먹을 수 있을까? 하고 발을 조금 빼본다. 올리브가 아마 못해도 한 달은 갈걸. 창의적으로다가 이리저리 먹어봐. 나눠도 좀 주고. 하며 시큼하고 무거운 쇼핑백을 내 품에 안겨주었다.  


사과산


집에 와서 딱히 손이 잘 가지 않아 우선 며칠 쇼핑백을 부엌과 거실사이에 가만 놓아 두었다. 집안에 그득해진 사과 향에 이끌려 자꾸만 눈이 갔다. 이 많은 사과를 어찌 처리해야하나 하며 결국 한 달간 사과먹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과생강청도 만들어 보고, 사과를 생강과 아예 통째로 넣어 사과생강차도 끓여봤다. 신맛이 울컥나기도 했고 사과가 다 부스러져 상한 것처럼 차에 둥둥 떠다녔다. 왜 배생강차가 나왔고 사과생강차는 안나오는지 알 것도 같았다. 당근 케일과 갈아도 먹어봤다. 사과를 큼직큼직 썰어 계피와 버무리고, 그 위에 오트, 설탕, 코코넛 오일을 뭉쳐 오븐에 구운,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디저트인 애플 크럼블도 처음으로 만들어 봤다. 그리고 올리브가 아는 사람(사과나무 주인)의 팁을 전수 받아 사과를 얇게 저며 말려서 먹어도 봤다.


흥미로운 맛을 선사했던 사과생강청과 나름 맛있었던 애플 크럼블


사람이 돌봐서 수확한 사과가 아니다 보니 속이 썩은 사과도 많았고, 무엇보다 재미난 건 사과의 맛이 다 달랐다. 어떤 사과는 침샘이 폭발하도록 지독하게 신 맛만 있었고, 어떤 사과는 신맛과 단맛과 알 수 없는 땅의 맛이 오묘하게 섞여 있었다. 마냥 달기만 한 사과는 없었다. 올리브 말로는 사과 나무마다 맛이 다 다르다고 했다. 인간 하나 하나가 별나디 별나 세상에 나와 같은 인간은 하나도 없듯이, 과일도 그럴 것이었다. 사과를 열어서 맛보고 작고 신 사과는 주로 얇게 썰어 말려 먹었다. 과일 건조기가 없는 우리는 거실 히터 위에 접시를 올려 놓고 말려 먹었다. 보기에는 좀 그래 보여도 여느 자극적인 간식 못지 않게 중독적인 맛이 났다. 결코 물리지 않는 시고도 단 맛의 오라가 입안을 휘몰아쳤다. 다 말리기도 전에 주워 먹는게 더 많아서 틈날 때마다 사과를 계속 얇게 저며 히터 위에 자꾸 자꾸 리필해 놓는 것이 일이었다.


처음엔 얇게 저며보려 했지만....


한 달 여에 걸쳐 사과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시 마트로 간 나는 더 이상 코 끝이 찡하게 신 사과를 구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신 사과는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왜 작고 못난, 여러 갈래로 달고도 신 사과는 마트에 나올 수 없어진걸까. 신 사과를 찾을 수 없게 된 이유가 결코 신 사과가 모자라서는 아니라는 것을 당신도 그 맛을 보게 되면 안다. 달의 뒷면처럼 보이진 않지만 저어 뒷편 어딘가에 온갖 다른 얼굴을 한 사과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같은 포장지를 입고, 이리저리 재고 따져지는 세상의 가판대 아래 어딘가에. 모나고 신 것들은 그대로 두기엔 보기가 영 그러하고, 도대체가 컨트롤이 어렵고, 자연 속에서 햇빛과 바람의 사랑을 누려야 하는 까다로운 것들이다. 그들은 영영 가판대 위에 오르지 못하거나, 모습을 바꾸려 애쓰며 숨기고 포장해야한다. 시고 모난 사과와 인간들의 삶이란 대체로 비슷한 듯 하다.


그리하여 수요와 공급은 대체 어떻게 변화하는 것일까? 생긴대로의 얼굴들이 마트에도 세상에도 보이려면, 그리하여 시고 달고 시고도 단 사과들이 마찬가지인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걸까? 도대체가 잘은 모르겠어도, 소비자로서 35살이 되는 해에 처음으로 신 사과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을 알게 된 나는 1인의 아주 작은 수요값을 거대한 시장의 수요와 공급 그래프에 입력하고 싶어졌다.




모두가 생긴대로 살아야만 균형이 잡히는 이 곳, 지구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chef's table : S1 Dan Barber 편의 다큐멘터리를 열심히 보다가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엄청 유명하고 비싼 이 미슐랭 별을 단 레스토랑에서는 아무 것도 손대지 않은 야채 그대로를 담아서 에피타이저로 낸다. 그런데 호박 하나, 무 하나도 당신이 알던 그 맛과는 다르다. 고작 무에서 이렇게나 다양한 맛이 날 수 있다는 것에 손님들은 충격과 놀라움에 빠진다. 옥수수가 주식인 멕시코에서는 우리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형형색색의 옥수수들을 볼 수 있는데, 요새 GMO 옥수수가 등장한 뒤로 59종의 옥수수가 시장의 뒷편으로 멸종 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그렇게 치면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쌀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맛의 배추와 무와 오이와 가지와 고구마가 사라진 걸까?


Netflix  <chef's table> S1 Dan Barber


땅은 가만히 두면 아름다운 갖가지 풀꽃과 식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음지면 음지 양지면 양지, 각기 다른 땅에 걸맞게 가장 잘 자라날 수 있는 생명이 알아서 싹을 틔운다. 흙에게 다양성이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아주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땅 속은 우주와도 같아 1000억 개의 미생물을 품고 있단다. 흙 속 미생물들은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주고, 식물은 답례로 광합성을 하여 미생물에게 다시 양분을 나누며 균형을 이룬다. 그리하여 다양한 잡초가 함께 살아야만 흙 속에 모자란 영양분을 골고루 채울 수 있는 미생물들이 생겨나고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지켜진다. 그렇게 필요한 만큼의 영양분이 생기면 자연은 결코 필요 이상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밭에 한 가지 작물로만 농사를 하면 흙 속에는 한 가지 세균만 늘어난다. 땅은 필요한 영양분의 균형을 스스로 맞추는 능력이 있지만, 더 크고 때깔 좋은 과일을 위해 특정 비료를 더 주게 되면 여분의 영양분을 먹으러 진딧물들이 동네방네 노래를 부르며 잔치를 시작한다. 병충해가 생겨 밭의 균형을 깨는 것이 아니라, 균형이 깨진 밭에 병충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결국 크고 달고 씨가 없는, 때깔 좋고 반짝이는 것만을 찾느라 다양성이 부재하는 우리의 식단은 땅의 균형을 깨트린다. 균형이 깨진 땅에 농사를 하려면 온갖 화학 비료와 살충제가 채워지게 되고, 그 땅에서 자라난 것은 다시 우리의 식탁으로 돌아온다. 바쁘게 정신없이 흙을 만지지도 보지도 못하고 살 때는, 흙이 대체 나랑 뭔 상관이 있는지 알지를 못했다. 하지만 땅이, 초록 생명이 어떻게 스스로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지를 배우고 그 땅과 생명들을 되찾는 일은 결국 우리 식탁 위의 일이고, 신 사과들을 세상의 가판대 위에 올려야만 하는 일이다. 그것이 어쩌면 시고 모난 나로서의 삶을 회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이 땅의 일부인 인간들도 별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모두 각자 생긴대로의 삶이 살아져야만 미쳐 돌아가는 것만 같은 세상도 균형이 잡히는 것이 아닐까.




선택이 모이고 모여 땅과 밥과 나를 이루나니


어느 날 집에 놀러온 브라질 친구가 말했다. 브라질에서는 집 마당에 생기는 잡초가 그냥 생긴게 아니라 믿는다 했다.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식물이 앞마당으로 찾아오는 거라 믿는단다. 그러면서 아일랜드 온 천지에 민들레가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냐고 했다. 맥주와 위스키의 나라에는 간을 지켜줄 민들레 요정이 많이 많이 필요할꺼라고. 무언가 맘이 찡해져왔다. 잡초가 찾아와 주는 마당이 있는 집은 평생의 꿈으로 키워야 하는 우리나라의 삶이 얼마나 흙과 풀과 자연과 동떨어져 있을지. 흙을 만진 손과 발에서 이어져 오는 생명의 이야기와 지혜 없이 살아온 그간 내 삶의 상상력은 참으로 아파트 빌딩 숲처럼 메말랐고, 그리고 그게 아마도 산다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살아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아일랜드 어느 마당 앞 민들레들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앞마당에 찾아오는 새와 친구가 된 이야기를 해준다. 매일 아침마다 보이는 새가 엊그제 아침엔 꿈틀거리는 지렁이 한 마리를 자기 앞에 가져다 주었다고. 분명히 자기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했다. 집에서 15분 거리의 바다에 자주 발을 담그며, 일주일에 한 번은 무지개를 보고, 하루 걸러 하루 얼굴에 세찬 비를 맞고, 미세먼지 없는 공기를 마시며,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다보니 자꾸만 더 땅에 가까운 것들을 찾게 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찌보면 우리는 자연의 일부니까, 그 연결성이 회복되면 자연스레 흙과 그 위 생명들에게 마음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마음이 가는 것에게 마음을 써보기로 한다. 결국엔 모든 것은 지금의 '선택'들로 이루어진다. 내 삶을 이루는 것도 이 지구를 이루는 것도 결국에는 내가 혹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서 시작한다. 매일 무얼 먹을지 장은 뭘 볼지 뭘 사고 뭘 버릴지 끊임없이 선택하는 삶이지만, 막상 내가 살던 삶은 선택이라는 단어를 꺼내기도 전에 그저 살아지고 살아내는 삶이었다. 그러다 보면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거나, 나의 의지는 필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들이 숱하고 숱했다. 마트의 빨갛고 예쁜 사과를 고르는 일들 같이. 그래서 나는 자꾸 당연하고도 어려운 질문을 물어야 했다. 내가 선택하고 있는 것들을, 나는 정말로 원할까?


질문들이 반복되면서, 필요 없거나, 원치 않거나, 이것이 대체 왜 여기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마음의 포장지들을 어러겹 벗겨내고 나니, 그 안에는 발가벗겨진 날 것의 생이 나를 꿈뻑 꿈뻑 쳐다보고 있었다. 이것 참 낯선 얼굴이어서 한 번에 오래 들여다 보지도 못했다. 넌 그래서 무엇을 원하냐고,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겨먹은 것이냐고. 생긴대로 살겠다 하니 그래서 대체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뭐 나도 알 수가 없어서 나의 단골 카드인 만성 무기력증을 다시 꺼내들고 숨기도 하고 뛰쳐 도망도 가보지만, 끽해야 비와 바다와 맑은 공기와 돈 없는 내가 이곳에 있다. 도통 너무 어렵다가도 정말 고요하고 단순한 삶의 하루 한가운데에서 매일 그저 선택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내 생긴대로, 자연의 일부로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 삶. 다 모르겠고 우선은 단순하게 가보기로 한다. 우선 난 어려우니깐 사과부터 생각해 본다. 좋은 땅에서 기쁘게 자라나는 신 사과들을 더 만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기로 한다.




나도 과일도, 포장 없는 삶을 위하여


땅을 잘 알고 또 아끼는 사람들이 키운 작물을 포장지 없이 사는 방법은 아마도, 근처의 유기농 농장을 찾는 것일거다. 혹시나 해서 구글에서 Organic farm 을 검색하니 아니 왠걸, 내가 사는 지역 바로 인근에 정확히 내가 원하는 농장이 있다. 바로 코 앞에 있었는데 이걸 모르고 벌써 1년 반을 살았다니. 아예 이러한 옵션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삶에서, 구글 서치 1회로 바로 내 코 앞에 있는 것을 이제서야 발견하는 삶으로 점프. 아니 뭐 이렇게 극단적으로 쉬운 것을 까맣게 생각 조차 못하고 살았을까, 바보 같기도 하고 뒷통수를 때려맞은 것 같았다. Plastic-free box 라 해서 플라스틱 포장은 아무 것도 없이 종이 박스에 유기농 농산물을 배송받을 수 있다. 주문하면 바로 배송되는 것은 아니고 로컬 딜리버리라 해서 지역마다 정해진 요일 별로 배송이 되고, 종이 박스는 접어서 다음 주문 때 반납한다. 박스 크기별로 야채, 과일, 혹은 야채+과일 패키지가 있었고 종류와 갯수가 조금씩 달랐다. 늘 주문한 농산물이 백프로 있는 것은 아니라, 없으면 내가 지정한 세 가지 대체 상품 중 랜덤 배송이 된다. 복불복으로 받아보는 재미가 왠지 쏠쏠했다. 버섯이나 당근은 비닐이 아닌 종이백에 담겨져 왔는데, 금방 상하곤 했던 마트표 비닐 포장 오가닉 제품들 보다 훨씬 오래 갔다.


한 알 두 알씩 귀엽게 배송된 나의 첫 유기농 박스


그리하여 눈물이 찡하게 신 사과는 아니지만, 크기도 작고 조금은 못생긴 사과들이 살아있는 사과향을 풍기며 나를 찾아왔다. 흙이 묻은 감자와 스크래치 난 오이와, 속이 꽉 찬 단단한 양배추와 같은 아이들도 함께. 생각보다 어이없게 쉬운 변화였다.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삶이 이렇게 쉽게 올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씩의 선택을 모으고, 하나씩의 방법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사과를 넘어서 생긴대로 날 것의 나를 바라보기가 조금은 쉬워질런가 말런가 여전히 모르겠다만 말이다.


모나고 시고도 단 사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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