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삶을 지배하는 것들

스승님을 만나 몸을 지배하는 마음에 대해 배우다.

by 안소담



드디어, 50년 경력의 스승님과의 첫만남.


그녀의 이름은 하리클리아. 기품이 흐르는 표정의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다. 70세가 넘었음에도 순수함이 묻어나는 맑은 미소의 그녀. 그 미소와 눈가의 주름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는 듯했다.


그녀는 덴마크인이지만, 지금은 그리스에 살고 계셨다. 알렉산더 테크닉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만 레슨을 하시는 분. 알렉산더 테크닉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다 지금은 은퇴를 하시고 일 년 중 절반은 아테네에서, 나머지 절반은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 본인을 보러 휴가를 오는 제자들에게 종종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는 70대 미모의 여인.


그녀의 손길은 마리의 손길보다도 훨씬 섬세했다. 가만히 서서 진중하게 준비시간을 가진 후 부드럽고 섬세하게 내 등과 몸에 손을 얹었다. 나비같은 손길이었는데, 따뜻한 마음이 손길에 묻어져 있었다. 신기했다. 그녀의 손이 내 근육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손에는 50년의 세월이 담겨있었다. 마치 무슨 봉인해제를 한것처럼 꼬이고 잠겨있던 온몸의 근육들이 스르르 풀렸다.


그녀에게 당신은 magic hands 를 가졌어. 라 하니 나도 그 magic hands 를 만났었어. 그래서 이렇게 되었네. 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테이블위에 책을 베고 semi-supine 자세를 하고 누웠다. 그녀가 한동안 내 등 뒤와 목, 발과 팔을 releasing 시키고 있는데, 등 뒤에 피가 들어오며 지릿지릿하는 것이 느껴졌다. 누우면 바닥에 늘 삐뚤게 닿아지던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가 정말 오랫만에, 균형이 잡힌채로 바닥에 닿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청승맞게 한참을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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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released 된 기분을 느낀 후, 또 다시 금방 몸에는 긴장이 찾아왔다. 이완의 경험을 하고 나니, 평소에 내가 느끼는 긴장이 도대체 어디서, 왜, 오는걸까? 하는 궁금증이 더욱 강해졌다. 한국에 있을 적에 양방한방을 어울러 갈수 있는 모든 병원을 다 가보았다. 턱, 어깨, 등, 골반의 근육들이 24시간 내내 나를 잡아당기는 기분이라고. 가끔은 어깨가 없는 기분이에요. 어깨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제자리에 있는 기분이 아니에요. 라고. 의사들은 인상을 엄청 찡그리거나 껄껄 웃었다. 어깨는 거기 멀쩡히 있다며. 약간의 경추 디스크가 있으나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근육은 아주 멀쩡하다 말하며, 모두가 각기 다른 원인을 제시했다. 저혈압이라서, 스트레스를 받아 비교감 신경이 이상해져서, 턱관절이 비뚤어져서, 머리와 허리가 미세하게 삐뚤어져서, 혹은 아무 이상이 없다, 물리치료 받으면 나아질 것 이다. 등등. 몇 년간 물리치료, 요가, 필라테스, 체질치료, 카이로프랙틱 등 모든 치료를 총동원하며 엄청난 돈지랄을 이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절망적이었지만 삶은 나를 위해 멈춰주지 않았다. 이유를 알수 없는 채로, 그 불편한 몸에 조금씩 적응하며 살아나갔던 것 같다.


하리클리아의 핸즈온을 만나고 나서 내 몸은 원래 이렇게나 부드럽고 편해질수 있는데, 금세 또 다시 온 근육이 이토록 꽉 조여매지는 현상에 대한 원인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가 알수가 없어 나는. 내몸이 왜 이렇게 됐는지." 라고 그녀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몸을 꽉 조여 웅크리는 흉내를 내며, " It is your way of managing the life. Now you have to learn a new way of managing your life." 라 대답했다.


마음이 징하고 울렸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웅크리고 살아왔는가. 얼마나 몸과 마음을 꽉 조여가며 살아왔는지. 하리클리아의 말대로 지금까지의 내 삶의 모든 부분은 지금의 내 자세, 지금 내 몸이 가지고 있는 긴장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회사에서 아무리 애써도 잘 안되는 일들을 하며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진 않을지 해놓고도 욕먹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누군가와 싸워서 이겨내야 할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던 나날들.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것과는 너무나 다른 회사라는 세계. 나의 기준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잘 모르겠는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마땅히 해야할 말 한마디를 당당하게 하는게 왜그리 힘이 들던지.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었다. 사실 뱉고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내 생긴대로 사는 것이 무어 그리 어려웠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아픔과 죽음을 봐오며 나도 모르는 마음속 불안함이 자라났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과 이별은 결코 익숙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도망갈 수 없지만, 평생 사라지지 않는 일도 아니다. 지나간다. 모든 일은. 산 사람은 살아나간다.


하리클리아 말대로 나는 삶을 매니지하는 다른 방식을 찾아내야 했다. 난 꽉 조여 웅크린 삶에서 벗어나야한다.


어느날 의자에 폭싹 붙은듯이 앉아있는 나에게 하리클리아가 말했다.

"너 지금 어떻게 앉아있는 줄 알어?"

"어떻게 앉아있는데?"

"홀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이제 홀 안에서 나와도 돼. 나올 때가 되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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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하리클리아가 바닥에 누워 잘 때 똑바로 누워자니, 옆으로 자니? 하길래 원래 나는 옆으로 잤는데 지금은 옆으로 잘수가 없어, 어깨가 무너지거든. 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너무나 맑게 웃으면서, 내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다시 옆으로 잘수 있게 될꺼야. 정말로."

그 얘기를 들으니 등에 피가 마구 돌았던것 처럼 마음속에서 갑자기 따뜻한 피가 흘렀다.


런던에서 타진이 내눈을 보고 확신에 그득차 말했던 것과 같은 그 기분을 다시 느꼈다. 누군가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내 가능성과, 내 몸의 회복에 대해서 확신에 가득찬 채로 믿어주는 것.


그것이 이렇게 힘이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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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테크닉의 철학중 가장 매력적인 부분. 자신의 몸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 내 몸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몸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주는 것.


하리클리아는 알렉산더 테크닉이 언제 어디서나 즐길수 있는 제일 값이 싼 여행이라고 했다.

" It's a journey to your bo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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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도 일요일도, 쉬지 않고 매일 매일. 원래대로라면 45분짜리 수업을, 거의 매일 1시간 반씩 받았다. 내 자잘한 질문과 수다들을 하리클리아는 매우 즐겁다는 듯이 함께 했다. 내 몸이 충분히 realease 될 때까지, 내가 충분히 알아들을 때까지 핸즈온을 하고, 설명하고 또 하는 그녀.


짝꿍 곰돌이에게 그녀의 마법손을 체험시켜주고 싶어 한번만 레슨을 받아도 되겠냐 물었더니 흔쾌히 승락하여 레슨을 한번 받았는데. 돈을 내려하니, "돈은 필요없어. 이건 선물이야." 라 한다.


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여자. 이것은 분명 돈주고도 살수없는 백만불짜리 레슨.


나는 어떤 변화의 시점을 마주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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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날수 있는 날이 이제 3일밖에 남질 않았다. 슬프다. 인생에 스승님을 만난 것은 보물보다 값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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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내 몸에, 내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해나가고 있다. 상담선생님은 두번째 편지에서그렇게 해나가고 있는 스스로를 celebrate하라고 했다. 그래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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