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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Feb 14. 2019

블랙홀이 열렸나봐

아일랜드 몸 마음 탐험기 _ 근육이 추는 춤   


짧은 숨으로 하는 것들을 늘려 보기로 한다. 그러기로 마음을 먹는 것 마저 길다. 생각도 걱정도 고민도 길고, 뭔가를 하는데도 길고 긴 시간이 걸린다. 참으로 긴 인간이다. 그래서 아일랜드 바다에 몸을 담궜다 바로 총알처럼 튀어나오는 찬물 수영 같은 것이 자꾸 땡기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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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학교에서 이상한 일을 겪었다. 종종 세션을 받는 사람들 중 근육 경련이 일어나는 사람들을 봤는데, 오늘은 나에게 일어났다. 리쳐드에게 턴을 받고 갑자기 오른쪽 골반안 어떤 근육이 풀리더니, 피가 펄펄 통하며 찌릿찌릿 다리가 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은 턴이 끝나면 바로 원래의 습관이 곰새 빨리도 고개를 내미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피가 잘도 흐르는 긴 다리가 꽤 유지되었다. 그러다 엔리케 아저씨에게 턴을 받으려 테이블에 누웠는데 갑자기 오른손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거라.. 너무 심해서 좀 당황했다. 블랙홀이 열렸나봐. 얼마전에 다리 경련이 왔던 엔리케를 보며 웃었다. 오른손과 머리를 오가며 근육들이 그야말로 살사에 플라멩코를 췄다. 뭔가 소리를 내어 엉엉 울고 싶은 맘이 들어 집에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남기로 결정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수업을 잠깐 듣다가 하필 이거저거 앞에 나가서 해야하는 performance week이라 리쳐드에게 난 못하겄다고 선언하였더니, 리쳐드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리쳐드가 바로 알아챌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같이 테이블로 향하는데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테이블에 누우니 눈물이 줄줄 나며 팔과 머리의 춤이 계속 됐다. 어딘가 갇혀 있던 감정들이나 억눌려 있던 긴장들이 나오는 거라고 했다. 무슨 감정이냐고 리쳐드가 묻는다. 뭐가 막 섞인 것도 같고 잘 모르겠다 했다. 더 묻지 않는다. 수업을 해야하는 리쳐드는 돌아가며 사람들을 내 테이블로 보냈다. 덕분에 수업시간 내 누워서 돌아가며 사람들의 집중 케어를 받았다. 집에 갈 시간이 되니 춤은 어찌 저찌 멈췄다. 긴 다리는 여전히 있는지 없는지 자꾸 집착하게 되어서 머리 속에서 보내주기로 해본다. 리쳐드는 허그와 함께 오늘은 집에 가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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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즈온의 세계를 배우면 배울 수록 놀라운 것은, 동기들이 내 손을 통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상태인지를 너무 기가 맥히게 자세히 알아챌 때이다. 원래 우리는 손의 감각들을 통해 많은 것을 감지하고 또 나눌 수 있는데, 핸드폰 화면 외에는 딱히 만질 것이 없는 우리는 그 기능을 충분히 탐험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겠지. 내 스스로에게나 상대방에게나 연결이 제대로 안될 때 못느낄거라 생각하고 대충 지나가는 부분들을 자꾸 잡아내는 엔리케에게, 알렉산더 테크닉 CSI요원이냐며 자꾸 대충하는 2학년 범죄자를 잡아낸다고 둘이 깔깔 웃었다. 미세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점점 내가 느끼는 것,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실존함을 입증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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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하우스메이트가 나가고, 새 하우스 메이트가 들어왔다. 내가 오가닉 카할(Cathal)이라고 부르는 28세 아이리시 청년. 오가닉 농장에서 일하고, 자연과 음악을 사랑하는 섬세하고 샤이한 청년임. 구 하메이자 나의 동료인 루씨는 새 집에 들어가 얼굴이 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 왠지 묘하게 디스를 당하는 것도 같지만 나도 루씨가 없는 집이 왠지 모르게 후련하니 쌤쌤이다. 루씨는 새집의 기운이 좋다고 했다. 집에 화분도 많고, 방도 넓고, 뭔가 트여있는 것이 좋다고. 집과 사람의 기운에 대한 생각을 한다. 우리집은 어떤가, 새 하우스메이트는 어떤가, 그에게 우리는 어떤가. 알 것도 같고 모르겠기도 하다. 미세한 감각의 세계는 여기 저기에서 참으로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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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숨이 어느덧 길어지고 있으니 자러 가야겠다.  아무 것도 하지 말랬는데 역시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 뭔가 꼭 하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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