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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Feb 07. 2019

말에게 배우러 갑니다

  Equine(horse) Assisted Learning 체험기



말이랑 대체 뭘 하길래!


아일랜드에 와서 처음 만난 세계가 있다면, 바로 말(Horse)의 세계. 워낙 시내에서 약간만 떨어진 들판 길을 지나다 보면 쉽게 노니는 말들을 볼 수 있기도 하다만, 학교 사람들과 가게 된 Horse Connect 란 곳에서 나는 말들과 듣도 보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고것은 바로 Equine Asssited Growth And Learning(말의 도움을 받는 성장과 배움) 이라고 불리는 작업. 보통 짧게 EAL 이라고도 불리운다. 무엇을 성장시키고 배우냐 하면, 홈페이지에 아래와 같은 것들이라 써있는데.. 경험해 보기 전에는 그야말로 알쏭달쏭 그 자체다. 말이랑 대체 뭘 하길래.. 전문성과 자존감과 리더십 개발이 된단 말인가.


Professional development | 전문성 개발

Personal development | 개인 역량 개발

Wellness | 웰빙 라이프

Relationship building | 관계 구축

Problem solving | 문제 해결

Communication skills | 커뮤니케이션 역량

Team work | 팀워크

Self Esteem | 자존감

Setting boundaries | 자기 경계 설정

Leadership skills | 리더십

And much, much more! | 그리고 무궁무진한 더 많은 것들! 이라고 홈페이지에 써 있음.ㅋ




신비한 영혼들과의 만남


우리 학교에서는 누군가 졸업할 때마다 어떤 졸업식을 할지 정할 수가 있는데, 올리브/메리/바바라가 함께 졸업하는 날 우리는 다같이 단체 EAL 세션을 받기로 했다. 말을 타는 것도 아니고, 말을 보거나 만지는 것도 아니고, 말들과 그저 함께 하며 배우는 세션이라니..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졸업식 오후, 두근거리는 맘으로 우리는 들판 구석에 숨겨진 센터를 찾아갔다. 여기저기 말들이 지내는 실내 공간이 보였고, 멍멍이 두 마리와 담당자 두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작은 컨테이너 공간에서 차를 마시며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우리 심장에서는 전자기장이 형성 되는데 그 에너지 장이 2.5~3m 에 달한다고 한다. 말들은 우리보다 더 큰 심장을 가지고 있어서, 5배나 더 넓고 강한 전자기장이 형성 된다. 그래서 말들은 직관적으로 매우 예민하고 민감하게 주위에서 일어나는 에너지들을 인지하고 인식해 낼 수 있다고.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Coherent heart rhythm(일관된 심박 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심박 패턴은 평안하고 안정된 즐거움의 상태를 대표하는 리듬이기도 하단다.


그리하여 말은 우리 마음의 상태를 굉장히 잘 읽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지금 여기에 있는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 예전에 세션을 받아 본 적이 있는 올리브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고요한 마음일 때 말들은 관심을 보이고 다가오지만, 내 맘이 개똥밭이면 말들은 저 멀리서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결국 말들과 한 자리에 있다보면, 말들은 내 상태를 그대로 미러링한다고 했다.


넓은 들판 울타리 안에 두 분의 퍼실리테이터와, 약 열댓명의 학교 사람들과, 우리를 위해서 선정된 말들이 대략 한 시간~한 시간 반 가량을 함께 머문다. 퍼실리테이터들은 정해진 절차에 따른 몇 가지 지시 사항이나 과제들을 알려주는 것 외에는 철저하게 관찰자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추후 세션이 끝나면 함께 관찰하고 경험한 내용들을 서로 나눈다. 말들과 함께하면 스스로에 대한 어떤 통찰을 얻게 되기도 하는데, 쉬운 언어로 누군가 떠먹여주는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가 그 배움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라 했다. 아마도 일주일 후, 한 달 후 샤워를 하다가, 길을 걷다가 문득 앍!!! 그게 그 뜻이었구나! 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말들과의 소통법


구염진 조랑말 두 마리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어른 말 세 마리가 우리와 함께 했다. 첫 과제는 각자 말들에게 자기 소개를 하고 그들이 던져주는 단어 하나씩을 받아오는 것. 모두의 표정은 읭? 어떻게??? 였지만, 아무도 말들과 소통하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말들 앞에 서 보았지만, 내 멋대로 마음 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건지, 말들이 정말로 나에게 뭔가를 떤져 주는 건지 도통 구분할 방도가 없었다. 퍼실리테이터인 메리는 그저 직관에 따라 들리는 것,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말들과 고요히 마주한 가운데 각자의 물음표들이 떠다니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 다음의 미션은 팀으로서 이루고 싶은 한 가지 목표를 정하고, 우리 주위에 있는 여러가지 구조물들로 목표와 장애물들을 형상화 한 후, 모든 말들을 동시에 그 목표지점까지 데리고 와야했다. 말들을 강압적으로 움직이거나, 먹이로 유혹해서도 안되지만, 털실 같은 몇 가지 도구를 사용할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물리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말들과 어떠한 방식으로든 소통을 해야한다고 했다. 정해진 방법은 없었다. 아무 힌트도 주어지지 않았다. 정말 아무 정보도 없는 무의 허허벌판에서 말과 내가 마주보고 있을 뿐. 결국엔 언어가 아니라 마음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는 법을, 내 마음을 읽는 말들의 모습을 읽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존재하는 법을, 머리와 마음을 쥐어짠 시행착오를 통해 하나씩 실험해 보는 수 밖엔 없었다.


말들은 뛰어다니거나, 서로 싸우는 듯 부딪히거나, 아무 흥미가 없거나 참으로도 제각각이었고, 우리도 그랬다. 아마도 우리가 그래서 말들이 그런 것이었겠지만. 목표를 정하는 것부터가 난제였다. 학교에서도 늘 각자 혹은 많아봤자 두 세명이 함께 하는 작업만 해봤지, 이렇게 다같이 무언가를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결국 우리는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기 보다는 그룹으로서 함께하기 정도를 목표로 삼았다. 목표를 형상화 하기 위해 바닥에 긴 길을 만들고 그 끝에 원을 하나 그렸다. 이제 모든 말들을 동시에 저 긴 길을 지나게 한 후 원 안으로 데려와야 했다. 흠... 대체 어떻게? 혼돈의 들판이 펼쳐졌다. 모두 뿔뿔이 흩어져 말들을 얼르고 달래며 각자의 방법을 동원하는 난리통이었다. 말을 타는 것에 익숙한 어떤 사람은 이랴이랴 소리를 내며 말을 조정하려고 들었고, 말 보다도 우리가 함께 뭔가를 정하고 했으면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자 자꾸 성질이 나는 듯 한 사람도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말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온 얼굴의 근육을 들썩이며 텔레파씨를 보내보려 애쓰는 사람(나), 말에게 장난을 쳐보려는 사람, 도대체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 등등.. 말과 소통하는 갖가지 방법은 그 사람의 성향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우리와 함께 했던 구요미 조랑말. 바닥에는 우리가 목표를 형상화 하기 위해 사용한 구조물들.




말에게 비친 나를 바라보며


뿅하고 어떤 연결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던 기대와는 달리, 어느 순간에는 말들이 정말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왔고, 어느 순간에는 날 쳐다도 보지 않았다. 대체 좀 전 내 마음이 어땠길래 온 걸까 하며 바로 5초 전의 내 맘을 들여다 봤지만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나는 말에게 실례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너무 가까이 가거나, 허락도 안받고 만지거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노크를 하고, 어떠한 응답을 받기를 기다리며 대체로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말의 근처를 서성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갈색의 말 한 마리가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왔다. 근데 그 말은 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았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빛은 분명히 나에게 온 것이 맞았다. 묘하게도 이 말은 나와 비슷한 것을 고민하는 듯 했다. 그렇게 10여 초를 우리 둘은 애매한 거리에서 어찌해야 하나를 망설이며 서 있었고, 곧 말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냥 가까이 오면 되는데 왜 안왔을까? 왜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까? 내가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닐까? 나중에 세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말의 태도가 결국 나의 태도를 미러링하고 있었단 것을 뒤통수 때려맞듯 깨달았다. 가까이 다가는 가지만 늘 어찌할 바를 모르고 조심스러운 나, 누군가의 마음의 대문 근처에서 집주인이 자면 어떡하나, 나 때문에 뭐 방해되면 어떡하나 초인종도 못 누르고 창문 밖을 서성이는 나. 말의 모습은 참으로 기가 맥히게도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태도 하나가 내 삶의 얼마나 많은 곳에 묻어나고 있는지, 그 조심스러움이 반대로 어떻게 연결을 방해하고 있는지가 가슴팍에 훅 들어왔다. 사람들에게 핸즈온(학교에서 배우는 알렉산더 테크닉 기법 중 하나)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때 내 손이 너무 조심스럽다는 이야기, 턴(알렉산더 테크닉에서 동료들끼리 주고 받는 작은 레슨)을 할 때도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게 뭘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어찌할 바 모르고 걱정하는데 시간을 보낸 많은 순간들이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싱기방기 하면서도 가슴이 턱 막히기도 했다. 알게 된 것과 그 다음 발자국을 내딛는 것은 참으로 다른 일이니까. 어쩌면 이 마저도 조심스러운 마음가짐 인걸까.  


다시 그룹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말을 데려 오는 목표는 어찌되었냐 하면은.. 여차 저차 끝에 모두가 실을 잡고 뛰어다니다 큰 원을 만들어 말들을 유인(?)하는 전략을 썼던 우리는 몇 번의 실패 끝에 마법 같은 순간을 맞이했다. 우당탕탕 말들이 다같이 뛰어 원까지 잘 오더니만 실을 뛰쳐 넘어가 우리를 놀라게 했던 첫 번째 시도와 달리, 마지막 시도에서는 진짜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말들을 조정이라도 하는 듯, 말들이 다함께 길을 지나 원 안에 모두 모여 고요히 섰다. 모두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찼다.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왜 때문에 말들이 여기에 와서 멈춰준건지 우리는 누구도 정확히 답을 알 수 없었다. 각자만이 이해하는 마음의 조각들이 뿅하고 모인 순간일 것이었다. 말들을 어떻게든 모으고 통제해 보려는 마음을 버린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고, 혹은 그저 손에 손을 잡고 지금 여기에 서서 말들을 초대하는 마음이 한 곳에 모인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들도 우리도 그저 다 너무 피곤해서 빨리 끝내고 싶었던건지도.


세션이 끝난 후 퍼실리테이터 두 분과 우리 그룹이 모여 언 손에 차 한 잔씩을 들고 각자가 관찰하고 느낀 것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말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한 것, 자기 얼굴을 가져다 댄 건, 서로 물어뜯고 장난한 건 무슨 의미인가요? 등등의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지만, 퍼실리테이터들은 그게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였나요? 라고 되물었다. 각자가 말들과 소통했던 그 순간에서 본인이 느낀 것, 내가 찾은 의미가 의미있을 뿐이라고. 그러면서 우리가 보지 못한 순간들을 하나씩 짚어 주셨다. 우리가 세운 목표와 장애물들에 말이 어떻게 움직이고 반응했는지, 우리의 행동에 말들이 어떻게 함께 상호작용을 하고 우리에게 화답했는지. 모든 작은 것들 하나씩이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명확하게 해석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의미부여 왕인 나는 그래서 되려 벅차고 신기했다. 그룹으로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우리가 얼마나 미숙했는지, 목표를 이루려고 애쓴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얼마나 말들에게서 그대로 보였는지, 뜻대로 마음을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놀라운 것인지 등등에 대하여 공유를 하며 세션은 막을 내렸다.




말들을 더 만나고 싶다!!


이후로 나는 동기 두명과 함께, 한 번은 남편님과 함께 말들을 더 찾아갔다. 세 번의 세션 모두 목표와 장애물을 정한 후 구조물들로 형상화하고, 말들을 목표 지점까지 데리고 오는 방식은 동일 했다. 하지만 그룹의 에너지와 목표에 따라 말들이 반응하고 보여준 모습들은 완전히 완전히 달랐다. 말들은 명확한 해답을 내려 주지는 않았지만, 현재 나의 마음에 대하여, 내가 가진 목표와 그에 대한 나의 태도와 행동에 대하여 거울과 같은 통찰력을 주었다. 물론 그 깨달음은 세션이 끝나고 한참 후 엉뚱한 곳에서 왁하고 튀어나오긴 했지만.


말들에게 흠뻑 빠져 정보를 좀더 찾아보고 나니 Equine Assisted Learning 은 세계적으로 굉장히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발달된 분야였다. 자격증을 따려면 최소 6,000시간 동안 말들과 함께 공부해야 하고 이후 2년 안에 100시간 이상 실제 관련 작업을 직접 진행 하며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실제 세션은 말 전문가와 심리 전문가가 반드시 함께 팀을 이뤄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 흥미로운 건 한국에는 전혀 전혀 소개되지 않은 분야라는 것. 기초 교육과정을 찾아봤더니, 영국, 아일랜드 일부 지역, 미국, 하와이 등에서 코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와이가 몹시 가고팠지만 쥐똥같은 나의 자산을 봤을 때 아직은 인연이 아닌 걸로.


내가 세션을 받은 센터가 외진 곳에 있긴 하지만 우연찮게도 우리 집에서 자전거로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우주의 뜻을 받들며 살고자 하는 요즈음 요것은 우연이 아니라 어떠한 필연이라는 생각으로 센터에 자원봉사를 해보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다. 아쉽게도 Equine Assisted Learning 은 굉장히 사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Theraputic Riding(치료적 말타기)라는 작업에서는 자원봉사자가 너무 필요하니 한 번 해볼 생각이 있느냐며 반갑게 답변이 왔다. Theraputic Riding이 또 무엇이냐 하면, 말을 타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타는 사람의 육체/심리적 도움 및 치료를 위해 말 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라이딩인 듯 했다. 학습에 이슈가 있거나, 통증이 있거나, Neuro-divergent(자폐,아스퍼거 등 일반신경시스템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말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주로 많이 찾는 기법인 것 같다. 핸즈온이 쓸모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하니,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일들이 펼쳐질지도!  12월 부터 2월 중순까지는 말들이 쉬는 시간을 가진다 하셔서 지원서를 프린트 해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말똥을 치우는 일들로 시작 될 새로운 만남이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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