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통이 지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

익숙한 것을 놓아주는 일에 대하여.

by 안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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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는 이상하게 글을 쓸수가 없었다. 격렬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끝을 달렸다. 원래 이탈리아에서는 베네치아에 머무르고 싶었으나, 가격이 가격이었던지라 그저 젤라또를 먹으러 로마에 온만큼(...) 매일 매일 '하루 2 젤라또'를 실천하며 산 것 만이 나의 가장 큰 자랑(?)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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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치유의 여정에 또 다른 점이 찍혔다. 로마에서 딱 한 분 계시는 알렉산더 테크닉 선생님께서 우리 집 5분거리에 살고 계셨다. 자꾸만 말도 안되게 무언가가 맞아떨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뜬금없이 옛날옛날 내가 좋아하던 일산의 요가 사부님께서 "스승님을 만나고 싶으면, 스승님을 만나고 싶다. 하고 바라면, 스승님이 오시지요." 라고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나의 세번째 스승님. 이탈리아의 곧은 힘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안토넬라. 원래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하시는데, 지금은 방학기간이라 특별히 선생님의 집에서 레슨을 해주시겠다 했다. 그녀는 요가 선생님을 하다가 알렉산더 테크닉을 알게된 이후 직업을 바꾸었다 했다. 긴 머리에, 기품있는 자세와 표정. 그렇지만 재밌는 얘기를 할때는 말투가 엄청 귀여워지던 40대 후반 미모의 여인.


재밌게도 선생님의 손길에서 이탈리아의 기운이 느껴졌다. 부드럽지만, 외향적이고, 직선적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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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다. 안토넬라가 어깨가 아프냐?라고 물어서 "고통이 느껴지진 않지만 엄청 불편해." 라고 했더니.


"스트레스 상황이 왔을때 사람들은 어깨를 움추리고 몸은 긴장되잖아. 근데 우리는 스트레스 상황이 지나가도

몸 어느 부분엔가는 긴장을 꽉 쥐고 있어. 너의 어깨도 어쩌면 니가 네안에서 무언가를 계속 붙잡고 있기 때문일거야. 지나가야할 고통이 네 안 어딘가에 있는거야. 그걸 놓고 고통이 지나가게 해야해. 무엇보다도 고통이 지나갈 수 있다고 믿는게 중요해. 내가 몇 년간 지독한 두통 때문에 고생할때, 나는 살기가 싫었어. 이렇게 사느니 죽는게 낫다고 말했었어. 그렇게 오래 계속되는 두통이 사라질거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는데, 알렉산더 테크닉을 만났고, 내 삶은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 두통은 어느샌가 사라졌어. 너도 마찬가지야. 계속 붙잡고 있지 말고, 지나가게 놓아줘. you have to go through the p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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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209.jpg 동네 계단에 떨어진 과일과 꽃.


하리클리아를 만난 이후로 내가 웅크리고 있던 홀 속에서 나오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웅크려진 마음은 하루아침에 펼쳐지지 않았다. 내가 들어와 있는 홀은 생각보다 깊었고, 나갈 수는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몸의 변화는 분명했지만, 아주 느렸다. 다시 무기력감이 찾아올 무렵에 안토넬라를 만났고 그녀가 한 말은 가슴을 푹 찔렀다.


어느 날 수업중에 내 쏟아지는 질문들에 답변을 하다 그녀가 말했다. "몸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재밌는건, 변화고 싶다고 말은 하는데 정작 그들은 아무것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아."


살아가면서 자주 겪는 나쁜 감정이나 나쁜 상태에 우리는 놀란만큼 익숙해진다. 몇 년 전 지독한 사랑을 겪으며,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던 것도 그 사람이 가진 우울의 무게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우리는 익숙한 것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익숙한 것은 마약과도 같아서,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는 그것을 원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것은 늘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변화의 바로 문 앞에 서서도 익숙한 것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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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증상은 정말 기이하리만치 내 마음의 증상과 비슷했다. 내 어깨의 근육들은 꽉 긴장한 상태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치 내 몸안에 어떤 못되먹은 난쟁이가 어깨가 제자리에 가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레슨을 받을 때 조차 쉽게 잘 풀리지 않는 4년간 나를 괴롭혀오던 오른쪽 어깨를 놓아주어야하는 때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지나가도록. 못되먹은 난쟁이를 달래고 집으로 보내야했다. 어떤 고통이 오더라도 그 고통은 지나갈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중단되었던 이메일 상담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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