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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광인의 수기]

레프 톨스토이

by 지안
다운로드.jpeg 정말 심플한 책 표지

독서기간 : 2024. 07. 02 ~ 07. 04


0. 계기

나의 글을, 책을 읽고 쓴 서평을 타인에게 보여주는건 꽤나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익명의 독자들이 있는 이곳에 서평을 공개했고, 친한 친구들 몇명에게만 보여줬다. 서평을 읽고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던 친구가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며 그 자리에서 추천해준 책. 오랜만에 소설이 읽고 싶었고, 너무 두껍지 않은 책을 읽고 싶었던 나는 이 책을 골랐다.



1. 죽음의 5단계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사망과 임종 연구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Elisabeth Kubler Ross)는 임종 환자가 겪는 정서의 단계를 5가지로 서술한 바 있다.

Chapter 4까지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받아들이며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데, 죽음의 5단계를 떠올리며 읽으면 온전히 이를 이해할 수 있다. 톨스토이의 필력에 빠져서 읽다보면 어느새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반의 상황에 몰입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 하게 된다. 마지막 '수용'의 단계에 다다르면, 병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주체는 오롯이 자신이라고 느끼며 외롭게 병을 이겨내가는 모습이 서술된다. 부정과 분노의 격한 감정을 드러냈던 것과 달리 잔잔하고 차분해진 이반이 한편으로 쓸쓸해보이기도, 외로워보이기도 한다.

"의사의 간략한 설명을 들은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건강이 안좋은 상태지만 이 의사, 아니 어쩌면 모든 이에게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자 이반 일리치는 고통스러운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꼈고 이토록 중대한 문제에 무관심한 의사에게 엄청난 적의를 느꼈다. 그걸 아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점이 무엇보다도 이반 일리치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
"이반 일리치는 서재로 돌아가 자리에 누웠다. 그는 또 다시 죽음과 단둘이 남겨졌다. 죽음과 마주 보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죽음을 바라보며 차갑게 식어 가는 자신을 느낄 뿐이었다."


2. 톨스토이 - 삶과 죽음

나는 소설에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소설은 말 그대로 'fiction (imaginary event)' 이라는 생각을 갖고 읽어서 인지 와닿은 적이 없다. 철학책이나 에세이 위주의 독서를 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다만, 톨스토이의 소설은 다른 소설과는 달랐다. 오랜만에 '흡입력 있는 글'을 읽은 것 같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때마다 내가 소설 속의 인물이 된 것만 같았다. 내가 이반 일리치가 된 것 같았을 때 그의 외로움이 더욱 사무치게 느껴졌고, 아내를 향한 혐오감에 부르르 떨게 되기도 했다.


왜일까.

물론 톨스토이라는 거장의 훌륭한 필력도 한 몫했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소설의 주제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나는 꽤나 자주 삶의 이유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편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취향저격이었나보다. 톨스토이는 일생동안 '삶과 죽음'을 탐구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책의 마지막에 역자의 서평(?)을 보면, 90권짜리 톨스토이 전집은 그 전체가 이 질문에 대한 그의 사색과 고뇌를 기록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나처럼 90권짜리 벽돌책을 읽을 자신은 없지만.... 톨스토이의 필력과 죽음에 대한 서술을 한 번쯤 접해보고 싶다면 이 중편 소설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톨스토이는 죽음을 미워했다.
죽음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은 처음에 일단 분노였다. 두번째로 그를 압도한 것은 죽음이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살 대신 죽음의 성찰을 계속했고, 죽음의 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모색하는데 남은 일생을 다 바쳤다."


톨스토이가 자살을 생각한 이유와 '죽음의 불확실성'에 대해 읽을 때 생각난 M이 있다.

M은 내가 정신과 실습을 돌 때 만났던 어린 소녀였다.
M은 몇 번의 자살시도로 입원한 아이였는데, 정확히 그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 "죽는 거라도 제가 선택하고 싶어요."였다.


이 아이만이 알 수 있는 삶의 고통이 저 한 마디에 담겨있는 듯 했다. 톨스토이가 자살을 생각한 것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인생, 그리고 죽음의 불확실성에 불안해 했기 때문인 듯 하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 불안하게 살아가느니 내 손으로 인생을 끝내겠다는 생각 아니었을까.

사는게 참 견디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무력감이 들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 때

유일한 선택은 인생을 끝내는 것 뿐일까? 나도 우울함의 끝을 달려 동굴 속에서 나오지 않았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쩌다보니 살아가고 있는 지금. 아직도 매일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 질문의 명확한 답은 없는 것도 같다. 이반이 쓸쓸하고 외롭게 죽음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읽다보면, 그 전까지 그가 사회적으로 누구에게나 인정받기 위한 사람으로 살아왔던 삶이 대조적으로 느껴진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남에게 보여지는 인생, 행복한 척, 가식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지막은 참으로 허무하구나. 인생의 의미는 우리 밖에서 찾을 수 없다.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문명화된 삶을 지양했다. 그 이유는 문명화된 삶이 최고의 안락함과 고통을 회피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목표는 모든 가치를 전도시키고 삶의 의미를 알 수 없으며 그저 죽음을 거부하는 인생만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죽기 직전까지 삶의 의미와 죽음에 대해 고뇌했던 톨스토이처럼,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 고통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야 할 것 같다. 죽음만이 고통의 유일한 도피가 될 수는 없다.


3. 총평

길지 않고 흡입력 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삶과 죽음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강력 추천한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톨스토이의 휘몰아치는 필력에 감탄하며, 내가 이반이 되어 이입한다면 순식간에 다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빠져들어 한참을 읽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인생이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매우 긴 여운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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