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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ating Kabin Jan 11. 2016

개강, 오늘

준비가 안된 채로 출발선상에 서버렸다.

하루 종일 잡동사니를 정리하다 늦게 친구를 만나 새벽까지 영화를 봤다.

그리고 오늘이 찾아왔다.

개강. 정말? 정말 개강이야?

한숨 쉬며 말하는 나를 둥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어본다.

정말? 난 다음준 줄 알았는데?

그러나 역시 그런 것 따윈 상관없다는 듯이 우리는 다시 영화에 전념했다.

그러고 아침이 찾아왔다.

늦게까지 영화를 보느라 늦잠을 자버렷다. 아침 9시. 한국 시각으론 10시이겠지.

따듯한 이불 속을 벗어나기가 너무 싫어 일부러 늑장을 부렸다...

원 계획은 아홉시 반 쯤 운동을 하는 것이엇던 것 같지만..

왠지 모르게 도시락을 싸버렸고 완성될 무렵엔 이미 시간이 10시 반을 훌쩍 넘겨 있었다.

부랴부랴 씻고 준비를 마치니 11시 반.

첫 수업이 11시 반부터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달리고 달려 11시 40분에 겨우 겨우 도착했다.

첫 수업은 중국어 레벨 테스트였다.

기억도 안나는 중국어 써서 뭐한담. 말도 안되는 영어와 병음을 몇 안되는 한자와 섞어 가며 에세이 한 장을 써서 냈다.

강사가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다가 이공대 학생이라고 답했더니 뒤에 있던 여자애가 웃었다..

학점에 안들어 가는게 다행일 따름이었지만 무언가 실력이 예전만하지 않다는 게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험을 마치고 걸어가는 길목에 유리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았다.

감색 버버리에 부스스한 머리. 정장에 쌩얼이라니. 아는 사람 마주치면 얼마나 쪽팔릴까?

그러나 나는 그 몰골로 교수님들이 북적이는 학교 호텔에 가서 밀린 일을 처리하고 학생들이 북적이는 스타벅스에 가서 요거트와 과일을 먹었다. 역시 헌내기의 뻔뻔함은 대단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것 같아 주변 빵집에서 깨찰빵을 사서 먹고 있다가 그제서야 내가 다이어트를 결심했다는 걸 기억했다. 아,,나 빵 다섯개 삿는데.

첫 날부터 벌써 집에 가고 싶어져서 기숙사에 왔다.

아니나다를까, 기숙사 정문 앞에서 동기 한 명을 만났다.

러시아로 인턴을 간다고 한다.

'나 러시아어 좀 하잖아~'라며 멋쩍게 웃는 그를 보자 내 중국어 시험지가 생각나서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도 언어 공부 더 해야지..

그리고 지금 난 브런치를 쓰고 있다.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동안 먹지 않은 깨찰빵을 먹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극복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다시 수업에 가 봐야겟지..

오늘 마지막 수업이 7시반부터 9시반까지다.

내가 대학을 왔는지 야학을 다니는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수업을 가야겠다.

오늘 남은 하루도 이렇게 좌충우돌일까봐 걱정이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2015년 1월 11일 쌀쌀한 초가을 날씨같은 오늘

개강 준비도 안된 채로 개강일을 맞은 내가 나를 응원하며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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