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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ating Kabin Oct 07. 2015

떡볶이와 비빔냉면

한국을 그리고, 한국을 나누고, 한국을 먹다.  

열두시 반 경 미적미적 일어나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책상에 앉아 어카운팅 책을 펴고 공부를 시작했다.

우중충한 날씨에 걸맞게 오늘 하루 종일 내 상태도 헤롱헤롱.


한 두시간 경 징징대며 공부를 하니 가 메시지를 보내 왔다.

"나 기숙사 G층이야~"

이런. 제대로 옷도 입고 있지 않은데 벌써 올 건 뭐람. 

대충 옷을 꺼내 입고 윤을 데리러 내려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12층은 너무 높다. 

라푼젤 타워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으며 울림이 심한 회색 계단을 하나 하나 내려가다 보면 많은 생각이 이리 저리 피어난다.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이든. 

오늘 하루는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 그리고 나는 왜 이것을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하다 보면 어느 새 가장 아래 층인 ground floor에 도착하게 된다. 

게이트에 학생증을 대고 나와 빵빵한 에어컨 바람 아래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윤을 데리러 갔다. 

-

2시간은 너무 짧다. 

공부 할 때는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는데. 

저 편에서 나를 보며 미소 짓는 윤과의 시간은 더욱이 짧다. 

나른한 몸짓으로 저 멀리 앉아 있는 그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한참 동안이 아니었나.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세시 반. 이런, 밥 약속이 있었는데. 


"넌 그래서 어디 갈껀데?" 

"난 너네 만나는 동안 몽콕이나 다녀와야지~" 


윤은 아쉬운 인사를 남기고 육교 너머로 가 버렸다. 

곧 있으면 비가 올 텐데,

혹시나 길을 잘 못찾는 그가 사람과 습기로 가득한 몽콕 시내 한복판에서 길을 잃진 않을까 싶어 한참 동안 육교 쪽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정신을 차리고 주가 기다리는 더 컵 맞은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습한 홍콩에서 비라니. 

지구 저 너머에는 가뭄으로 고생하는 나라도 많다는데, 신은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역시나 주는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난 주 금요일 밤, 왁자지껄한 바에서 우연히 친해진 주는 회색 빛깔 머리가 참 잘 어울리는 밝은 친구이다. 

친해지고 싶어서 밥을 먹자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바로 응했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서로를 맞은 우리가 향한 곳은 바로 홍함 시내에 있는 한국 음식점 혼딤(韓店).

태극 마크가 요란한 간판이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참 조그만 가게다.

높은 의자 몇 개와 작은 2인용 테이블 하나가 다인 가게 안에는 아직 손님이 없었다. 


"우리 뭐 먹을까?"

늦은 점심이라 해도 시간이 시간인지라 역시 밥 류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메뉴를 보며 고민하다가 우리가 고른 것은 떡볶이와 비빔냉면. 메뉴에 쫄면이 없는 관계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빔냉면을 주문했다. 

우리가 시킨 떡볶이와 비빔냉면. 비빔냉면도 그나마 쫄면 대용이었다. 

떡볶이는 거의 컵볶이 수준이었다. 4500원 주고 먹기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 

하지만 한국 음식이 금값인 홍콩에서는 이 정도도 감지덕지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우리는 포크를 들었다. 

떡을 몇개 정도 집어먹고 있으니 비빔냉면이 나왔다. 


별로였다. 아직 소스가 채 배지 않은 떡볶이 떡이. 면 뭉치가 덜 갈라진 냉면 면발이. 

그러나 한국 음식이 너무나도 귀한 홍콩 땅에서, 우리는 세상 진미를 발견한 듯 감탄하며 참 열심히도 먹었다. 

대구에서 17년 동안 있었다는 주는 고향이 부산인 나에게 서면과 남포동 이야기를 했고, 

일산에서 14년 산 나는 분당 근처에 사는 주에게 일산에서 서울 가기가 얼마나 힘든 지에 대해 한참 불평했다. 

우리는 그렇게 홍콩에서 함께 한국을 그리워했다. 


한참을 이야기 하고 있자니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아직 4시 반이 되지 않은 시각, 오늘 홍콩에서는 비가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비 온다는 주의 말을 듣고 돌아본 내 눈 앞에는 참으로도 홍콩 다운 홍콩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높이 솟은 빌딩, 바쁘게 갈 길 가는 사람들, 그리고 급하게 커브를 도는 차량들. 

대낮부터 환하게 켜져 있는 한자 가득한 전광판은 우리에게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고 외치는 듯 했다. 


벌써 온 지 일 년이 넘었다.

일 년 전, 이 곳에 처음 온 나는 홍콩에 왔으니 홍콩을 먼저 알아야 한다며 한국을 외면하다시피 했다. 

한국 음식을 먹지 않았고, 외국 노래만 들으려 했으며, 오로지 홍콩을 아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 덕에 외국인 친구들은 많이 사귈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맘 속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밤만 되면 답답한 이불마냥 나를 덮쳐오는 외로움 때문에 한참 동안 괴로워했더란다. 

나는 외로웠지만 내가 왜 외로운지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유학 생활은 힘들다.

외로워서 힘들고 힘들어서 외로운게 유학 생활이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옷을 입어도 외로움은 채울 수 없다.

맛도 없던 떡볶이와 비빔냉면을 바람에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해치워 버렸던 오늘, 

나는 어쩌면 외로움과 마주하는 것이 제일 맞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헀다. 

그리운 감정을 애써 억누르려 하지 말고,

그리움을 느끼고, 그리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그리움을 먹으면

오히려 친근한 향수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것이 외로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참 다가가기 힘들다, 너란 존재. 외로움.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친해져야 하겠지.

이 순간에도 나는 광화문 한복판을 그리워했더란다.

큰 광장과 저 너머로 보이는 돌담길들. 나는 그렇게 한국을 먹으며 한국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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