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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Aug 12. 2015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스)를 읽고

예감의 끝에는 죽음만 있었다.


어릴적부터 남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람들간의 사건들간의 연관고리에 대해 미치도록 생각하는 에이드리언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라고 라그랑주를 인용했었다.

반면 선생님의 질문에 매번 단순한 대답을 일삼고, 몇십년만에 만난 예전 여자친구 베로니카가 자기를 아직도 좋아하는게 아닐까. 도대체가 무슨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감을 못잡고있는, 감을 잡을 생각도 없는 토니는 "역사란 살아남은 자들의 회고록"이라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토니의 부정확한 기억과 에이드리언의 찢겨진 일기장이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토니의 확신이기도 하고, 완벽하지 못한 기억을 가진 살아남은 토니가 회고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 역사관들이 이 책의 전부이다. 불충분한 문서를 앞에 두고 토니도 독자도 끊임없이 추측한다. ~했을 것 같다는 예감.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나? 예감이 틀렸는지 알기 위해서는 끝으로 가야한다. the sense of an ending. 끝의 예감. 예감의 끝. 토니의 예감은 틀렸고,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을 거라는 독자들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가 남긴 유산 500파운드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은 무엇을 뜻한 것일까. 또한 베로니카는 그 유산 500파운드는 피묻은 돈이라 말하는데 왜 피가 묻었다는 것일까.

나는 진실을 알아가는데 쓰라는 용돈? 교통비? 정도로 생각하다가 문득 양육비인가 싶었다. 노산과 난산으로 인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의 자식을 토니에게 맡긴다는 의미. 에이드리언의 일기장 전체를 남겼는데 이 안에는 그런 내용들이 다 적혀있을테니, 남겨진 일들은 네가 다 책임져라. 이런 의미의 유산이었을 것 같다.


피가 상징하는 것은 죽음이기도 하면서 생명력이기도 하다. 많은 영화에서 여성의 처녀성이 무너지는 순간을 대부분 흰색 옷에 붉은 피가 비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원시시대 할례라는 풍습은 어머니의 피를 빼내기 위함이었다. 어머니의 월경은 "아이를 낳을 수 있음", 즉 생명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다. 이처럼 피라는 것은 생명력과 죽음을 동시에 상징한다. 따라서 피묻은 돈이라는 것은 난산으로 인한 고통, 딸의 남자친구를 빼앗았다는 어머니의 죄책감, 토니의 저주가 가득한 편지에 대한 원망 등등과 함께. 네가 말한대로 대대손손 이어지는 저주가 내 아이에게도 왔고, 그 무거운 마음의 짊을 너도 함께 짊어져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싶었을 것 같았다 (사라는 토니의 그 편지를 봤을까?)

에이드리언이 남겼던 일기장의 "만약 토니가..." 이 부분은 나는 처음에는 만약 토니가 편지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게 시작이 되어 모든 연결고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일들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토니가 편지를 보내기 전부터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는 교제를 하고 있던 것이니. 진짜 시작은 그 둘이 만나기 시작한 그 때, 아니 토니가 베로니카를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시켜준 그 때 부터였을 것 같았다.


1. 만약 토니가 나였으면, 나처럼 복잡하고 집착적으로 인간관계를 다 잘 가져가려 이렇게 수식까지 세우면서 고민을 했을까? 토니는 그런사람이 아니었으니..


2. 만약 토니가 아주 예전 베로니카의 가족을 만나러 갔을때 사라와 사랑에 빠졌다면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사라는 그때도 딸의 남자친구인 토니에게 누가봐도 좀 이상하게 군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3. 그리고 사실 일기장을 찢은건 베로니카이기 때문에, 베로니카가 왜 그 장만 찢었는지? 어차피 나중에 자신의 이복동생까지 보여줄거였으면 처음부터 일기장 전체를 주지 않았는지? 하는 마음에서 그 뒤에는 베로니카의 치부가 들어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토니가 나쁜 여자(!) 베로니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인과관계의 시작은 계속 과거로, 과거로 밀린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을 되돌아보게 한다. 토니가 편지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토니가 나 대신 사라와 사랑에 빠졌더라면. 토니가 베로니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토니가...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토니가 나였다면? 이러다보면 결국 생명의 탄생과. 그 생명이 없던, 그 이전인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에이드리언은 자살을 택하지 않았을까. 모두가 다 함께 살수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수식을 세워가며 고민했지만 연관관계의 쇠사슬을 풀기위해 처음으로 되돌아가려다보니 그 끝엔 죽음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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