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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Aug 13. 2015

릴리슈슈의 모든 것(이와이 슈운지 감독)을 보고

I wanna be just like a melody

지금 내 마음을 잘 모르겠으니 적어도 좋아했던 것은 확실했던! 영화인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대해 두서없이 써 보려고 한다.


2000년 4월 1일, 일본의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 바로 여기! http://www.lily-chou-chou.jp/holic/bbs/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보았더니, 아직도 게시판은 살아있다)


일본 영화 감독 이와이 슈운지는 "릴리 슈슈"라는 가상의 가수 공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게시판에 던져놓았다. 그리고 감독은 몇 개의 대화 명으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복수 인물이 되었다. 그 이후 독자랄지, 네티즌들은 이 이야기에 자유롭게 동참하게 되었고, 그들 스스로가 등장 인물이 되었다. 이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독자들은 열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독자들은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없게 되었고, 대신 가상의 범인이 혼자서 여러 개의 글을 올리게 된다. 사실 이것 역시 연출의 일부였다. 게시판이 닫히며 독자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영화이자 소설인 “릴리 슈슈의 모든 것(All About Lily Chou-Chou)”는 이처럼 독자들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졌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모습과 그들이 올린 글이 끊임 없이 생성되는 자막을 통해 90년대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독자로 하여금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도록 하여, 생활 양식의 변화에 대해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를 새로운 형식의 내러티브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영화 dvd의 인터뷰에서, 독자들은 어떤 글이 감독의 글인지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일종의 무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감독의 이 발상은 내러티브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영화라는 것이 감독의 일방향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쌍방향도 아닌것이 일방향도 아닌것이 거짓말도 아닌것이 사실도 아닌것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이 사실은 왜 유명해지지 않았지?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엄청난데....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영화 속의 아이들은 현실세계에서는 서로간에 꽉 막혀있다. 왕따를 시킨다던가, 성폭행을 한다던가. 그렇지만 진짜가 아닌 공간에서, 서로가 누군지는 몰라도 진심을 나눈다. 어쩌면 신체라는 물리적인 무엇인가가 이들의 진심을 막고 있는 것만 같다. 인터넷을 이용한 대화가 진짜 의사소통이 아닐지 몰라도, 누구도 그것을 진짜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죽어가면서 또 살아난다.


이미 많이 유명해진 아오이 유유가 앳된 모습으로 연기한 '츠다 시오리'는 강요된 원조교제에 지치고 재미없는 생활에 찌들어 있다. 이러한 츠다가 잠시나마 즐거운 14세 중학생으로 돌아갔던 장면은 애석하게도 죽기 직전이었다. 초록 들판에서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해피 엔딩을 기대 했다. "하늘을 날고 싶다"던 츠다는 연을 날린 후 첨탑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츠다가 죽기전에도 사실 죽음을 연상시키는 장면은 있었다. 학교 옥상에서 남학생을 기다리는데 쨍한 햇빛에 생긴 그림자가 그녀의 목을 조르는 장면.


그 외에도 다른 아이들에게서 죽음을 연상 시키는 장면들은 많다. 친구들과 섬으로 여름에 여행을 간 호시노가 물에 빠져 정신을 잃었던 장면. 그리고 영화의 거의 끝 부분에서. 하스미가 피아노를 치다가 피아노 의자 위에 올라갔는데 목이 천장에 가려서 마치 목을 맨거 같아 보였던 장면.


결론적으로는 두명의 아이들이 죽었지만,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존재하는 것이 주는 상처


영화 속, 끊임없이 보여지는 글들 속에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한 구절이 있다.


인간에게 최대의 마음의 상처는 <존재>



누군가가 특정한 폭력적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그 존재 자체가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사춘기는 상처의 시기이다. 아무도 위로할 수 없고, 자기 자신도 위로할 수 없다. 그저 지나올 수 밖엔.



드비쉬와 릴리와 슈슈


영화 속에서 한 모범생 여자아이는 끌로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를 연주한다. 몽환적이고, 그러니까 졸리고, 아름다운 선율이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 그 느낌은 배가된다.



드비쉬는 모델 출신이었던 릴리 택시에와 결혼했다. 그런데 드뷔시는 한 은행가의 부인이었던 엠마라는 여자를 사귀었는데, (불륜..) 슈슈는 바로 드비쉬와 엠마의 딸, 끌로드 엠마의 애칭이다. 엠마는 드뷔시 제자의 어머니였고, 릴리는 이 사실로 이혼하고 자살기도.


드뷔시의 음악들은 시각적이기도 하고 알려진대로 해체적이다. 감독이 어떤 의도로 영화 속의 여가수에게 릴리슈슈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그리고 영화 제목이 왜 릴리슈슈의 모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청소년기와 드뷔시와 릴리슈슈라는 가수는 모두 불안하고 위태롭다.



공기 속에 꽉 차 있는 에테르


 '에테르'라는 건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낸 제 5의 개념으로 진공 혹은 하늘을 채우고 있는 물질을 말한다.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공기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세상이 꽉 채워져있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과학이라는 분야에서나 쓰일 단어 같은데, '에테르' 는 무척 문학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처음에 에테르가 무조건 적인 선(善)이라고 생각했다. 하스미가 릴리슈슈의 '호흡' CD를 훔쳤을 때 가게 점원이 릴리슈슈를 좋아하면서 도둑질을 하다니 에테르가 더럽혀진다고 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니까 에테르라는 것은 선이라는 어떠한 가치라기 보다는, 각자의 삶을 둘러싼 고체로 된 공기(물론 말이 안 되겠지) 같다. 악인이라 할 수 있는 호시노에게도 에테르가 존재하고, 약자로 비춰지는 하스미에게도 나름의 에테르가 존재한다. 어느 한 사람의 존재를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에테르가 아닐까.


I wanna be just like a melody
just like a simple sound like in harmony


Salyu의 "Glide"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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