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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Aug 09. 2015

언 에듀케이션(론 쉐르픽 감독)을 보고

제인에어를 읽으면 무얼하나?


첫 대사는 학교 문학 수업에서 선생님의 어떤 질문에 대한 제니의 의기양양한 대답으로 시작한다.

anybody? jenny again?
isn't it beacuse Mr. Rochester's blind?

문학수업에서 다루는 책은 바로 "제인에어"였다.
제인에어는 강압적인 학교에서 수모와 역경을 헤치고 가정교사가 되어 나름 안정적으로 살게 되었지만, 그 집의 주인인 로체스터라는 나이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파국을 맞는다. 자신의 미친 부인을 꼭대기 쪽방에 가둔 사실을 숨기고 자기 딸의 가정교사였던 제인에어와 사랑하다가, 제인에어와의 결혼식날 그 사실이 발각되었고 제인에어는 잘못한 것도 없이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미친 부인은 집에 불을 질렀고 큰 화재로 인해 로체스터는 눈이 멀게 된다. 그렇게 몇년이 흐른 후 제인에어는 환청을 듣고선 다시 로체스터의 집으로 향한다.


제니가 "로체스터씨가 눈이 멀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라고 대답했던 선생님의 질문은 거꾸로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왜 제인에어는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갔을까라는 질문이었을까? 그 질문이었다면 제니는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을 것 같다.


제인에어가 그런 운명이었으니까요.

제인과 제니라니...제인에어 수업과 제니의 생활이오버랩 된다. 그래도 제인에어는 쏜필드로 돌아갔을때 눈이 멀고 팔 하나를 잃은 로체스터가 홀로 덩그러니 있었지만 제니가 찾아간 데이빗 집에는 와이프와 아들이 있었다. (게다가 임신은 안했냐고 묻기까지 하는 무서운 와이프) 제니는 로체스터와 데이빗이 아닌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로체스터처럼 눈이 멀고 팔 하나를 잃는 댓가를 치르지 않은 데이빗은 그냥 도망쳤다. 이 점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남자들의 역할은 그냥 거기까지. 한 여자의 삶을 무너뜨리리면서 그 여자가 스스로 점점 더 강인해지게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로체스터와 데이빗이 중요하다기 보다,

제인에어가 쏜필드로 제니는 학교체제로 돌아갔다고 본다면 no way out의 순환적 구조에 두 여인 모두 빠진셈이다.

그런데 이런 순환에 또 빠진 사람이 있다. 바로 King Lear.

영화 중간, 문학 선생님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을 학생들에게 읽게 시킨다.

Dose any here know me?
This is not Lear.
Dose Lear walk thus? speak thus?
Where are his eyes?
Ha. waking? Who is it that can tell me who i am?

킹 리어는 아첨하는 딸 리건과 고너릴에게 재산을 다 나누어줘버리고
코델리아를 버린다. 두 눈을 잃고 황량한 들판에 서서 나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없고 그 질문은 끝이 나지도 않는다. 킹 리어는 중세와 근대가 함께 공존했던 엘리자베스여왕의 시대에서 제임스왕으로 넘어가던 시대에 쓰여졌고 전환기가 그렇듯 기존의 가치가 절대적인 것에서 벗어나 의심을 받기 시작하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움을 담고 있다.


내가 누구인가? who i am? 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계속되는 고민들은 출구가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니는 리어왕이기도 하다. 리어왕은 저 질문에 계속 이렇게 되뇌인다. nature fool 이라고.

좋은 작품이 정말 좋은건지 고민된다는 제니의 말에, 작품엔 왜라는 이유가 필요없다. 맛을 한번 보면 맛이 뭔지를 모르는게 아니라 맛을 전부 아는 것이라고 아리송하게 대답하는 데이빗의 친구.

재즈클럽, 미술품 경매, 파리 등 그녀가 막연히 동경하는 모든 것들은 좋은 작품이라는 단어로 모아졌고, 그녀가 동경했고 지금은 손에 쥘 수 있게 되었지만 이게 정말 좋은건지. 확신이 안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여자아이의 말에 어른은 이렇게 대답한다. 좋은 줄 알고 선택하게 된 것들은, 선택 이후 좋다/나쁘다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작품엔 이유가 없듯이 그것이 자신의 인생으로 들어온 순간 이미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그 남자는 고가의 명품 첼로 역시 자기 수중에 들어온 이후엔 더 이상 켜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과도 연결된다. 맛을 한번 보는 순간 이미 맛에 대해 다 알게 되어버린다는 것.

제니는 선택의 무거움을 알았을 것이다. 고통의 시간을 거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번 존스를 좋아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I feel old. but not very wise. 학교로 돌아갔지만 그녀는 예전의 그 학생이 더이상 아니다.

he wasn't who he said he was.
he wasn't who you said he was either.

자신의 잘못된 인지가, 무모한 사랑이, 과도한 동경에 따르는 선택의 무거움에 대해 확실히 느꼈을 것이다. 학교의 교육은 지겨웠지만 지겨웠기 때문에 일탈을 꿈꾸고 맛봤고, 그래서 인생을 조금 배웠다고 한다면 이건 학교 덕분인가? 의무라는 학교의 교육은 밝고 훈훈하고 명랑하고 쓰디쓴 인생의 교육은 주로 시끄러운 클럽에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에, 캄캄한 한밤중에 이루어진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교육이라면 제니는 정말 24시간 내내 교육을 받았고 계몽주의 사상에 따르면 훈육의 결과..엄청나게 성숙한 여인네가 되었을거다. 자신은 old하지만 wise하지 않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그녀는 반대로 wise하고 not old인 것이다. 기회가 있는 그녀는 아직 젊고 아름답다.

열등감으로 가득찬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문학 선생님은 실은 그렇지 않은 어른이었고, 당당하고 멋졌던 데이빗은 뻔뻔한 사기꾼. 그 역시 옥스포드 문턱도 넘어보지 못해 똑똑한 제니의 지성에 매료되어버린 한심한 인간이었고, 강했던 아버지는 자신이 옥스포드에 가지 못해 딸에게 옥스포드를 주입하고 딸처럼 허황된 꿈을 꾸는 미성숙한 어른이었던 것이다. 제니는 이런 인식을 하고 나서도....어찌됐건 다시 학교로, 평온한 체제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몹시 보수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옥스포드를 주입하는 체제에 의해 뒤틀리고 왜곡된 경험을 하고 난 후. 다시 그 체제로 걸어들어간다니. 그렇다면 정말 쏜필드로 다시 발걸음을 옮겨 로체스터의 수발을 들어야하는 제인에어와도, 뭔가 끝나길 바라지만 끝나지 않는 endgame을 살고 있는 처절한 리어왕과도 비슷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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