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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

095. 외상

심부름은 항상 둘째인 내 차지였다.

아마 많은 둘째들이 심부름을 다녔을 거라 생각한다.

형은 형이어서 안 가고, 동생은 막내여서 안 갔다.

 

그래도 심부름을 다니는 일은 참 좋았다.

아빠의 담배를 사면 꼭 500원이 남곤 했으니까.

“요한아 왔니.”라며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시던 슈퍼 아주머니의 다정한 목소리도 좋았다.

아주머니께선 사탕이나 초콜렛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심부름을 가는데 아빠가 돈을 주지 않으셨다.

그렇게 외상이라는 걸 하게 됐다.

처음엔 그냥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난,

내 작은 부끄러움이 아빠의 자존심을 지켜드렸다는 생각에 제법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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