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잖아요.

010. 겨울이잖아요.

교대생 1학년 겨울방학이었나.

용돈 좀 벌어볼 겸 다문화 멘토링 사업을 신청했던 적이 있다. 베트남 다문화 가정 멘티 학생들 2명이 배정됐고 녀석들은 남매였다. 전문성은 없지만 패기 충만했던 대학생 멘토로서 공부도 가르쳐주고 책도 읽어주고 같이 영화도 보며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하루는 녀석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계속 놀고 있었다. 시간도 다 채웠는데 그냥 갈까 고민하다가, 부모님 모두 일하러 가서 안 계시다는 녀석들의 말이 떠올라 운동장에서 같이 놀았다.


“애들아, 너희 아이스 스케이트 타봤니?”

“선생님, 그게 뭐예요?”

“우리 마지막 날에는 같이 스케이트 타러 갈까?”


집에만 있을 녀석들이 안쓰러워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결국 약속의 날이 왔고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힘겹게 아이스 스케이트장으로 가게 됐다. 녀석들은 벽을 잡고 엉금엉금 기어 다녔고 얼음을 타기보다 미끄러지는 것에 가까웠다. 라면을 먹을 땐 가장 행복해 보였다.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고 몸을 녹이며 먹는 라면의 맛이란.


채워야 할 멘토링 시간은 진작 넘었고 마음이 급해 돌아가려는데 녀석들은 한참 뒤에서 눈을 밟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애들아, 눈 없는 곳으로 걸어. 신발 더러워지고, 미끄러지면 다쳐.”


“선생님, 겨울이잖아요.”


아,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겨울이 아니면 밟을 수 없는 눈이라는 걸 아이들은 세상 그 어떤 어른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날이면 ‘출퇴근은 버스로 해야 하나’ 고민하는 내게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떤 아이들은 이 눈으로 겨울이라는 순간을 즐기며 행복해하겠지.

boy-5879012_640.jpg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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