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마음의 풍경을 다시 만나며
친구가
전남 장흥 8박 9일 살아보기
올해 마지막 살아보기 중이라고 카톡이 왔다.
장흥이 노벨문학도시라 갈 데가 많고
옆동네 보성에 태백산맥 문학관도 다녀왔다며
다음 주 만나면 할 얘기가 많다고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 덕분에
세계 곳곳뿐만 아니라
국내의 멋진 풍경들까지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카톡을 읽다가
문득.
태백산맥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멈췄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아주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80년대 후반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와 친구는
서울의 Y대 의대에 다닌다는 한 대학생을 알게 되었다.
나와 친구를 유달리 챙겨 주셨던
사회 선생님을 따라 성당에 갔던 날이었다.
선생님의 후배라고 했고
인근 농촌마을에 봉사활동을 하러 내려왔다고 했다.
사회선생님은 막 대학을 졸업해
우리 학교에 첫 부임을 한 젊은 분이셨다.
돌이켜보면,
진보주의 성향이 강한
아니 어쩌면 대학 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학생운동을 했던 분인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을 향해 항상 온화한 미소로
조용조용 얘기하는 분이셨지만
성당에서 봤던 소매를 걷어올리고 결연했던 얼굴
그 강렬한 눈빛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뜨겁던 시절,
명동성당이 피난처이자 해방구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 학교에서 멀지 않던 그 큰 그 성당도
대학생들의 피난처였던 것 같다
그곳에서
그 오빠를 만나고
우리는 <<태백산맥>>을 처음 접했다.
성당에서 언니, 오빠들이 모여 독서토론회를 하던 둥근 자리
그곳에 친구와 내가 나란히 앉아 있던 기억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때는
그 책을 이해하기에 나는 어렸다.
단지, 책이 나란히 쌓여 있었던 성당의 그 창가 자리.
책 표지에 <<太白山脈>>이라는 붉은색이
낯선 세계로 발을 들이는
어떤 두려움, 설렘 같은 감정이 공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오빠는 한참이나 그곳에 머물렀고
나와 친구에게 첫사랑, 아니 짝사랑이었다.
그 오빠에게 우리는 그냥 귀여운 여동생이었을 테지만.
몇 해가 흐른 뒤,
우리는 그 오빠를 서울에서 다시 만나
함께 음악회를 갔고.
자개 같은 통에 들어 있던 예쁜 손수건을 선물 받았다.
이후 나는 몇 날 며칠을 10권의
<<태백산백>>을 읽고 또 읽었다.
태백산맥 문학관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카톡을 보며
아주 오래전,
말이 별로 없고 조용하던 그 오빠가
독서토론회에서는 리드해 나가며,
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던
그 지적이고 빛나 보이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