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빛난다
"나 밀려났어. 완전 뒤통수 맞은 느낌이야.
반드시 성공해서 다시 그곳을 찾아갈 거야"
"나 청춘을 다 바쳤어, 그 병원에.
이사장은 처음엔 병원을 이만큼 키운 사람이 나라고,
분원을 나에게 주겠다며 온갖 약속을 하더니 결국 팔은 안으로 굽더라.
이사 아들과의 갈등 끝에 내가 밀려났어.
아니 더럽고 치사해서... 결국 내가 사표를 던지고 나왔지."
학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H는
옆자리에 앉자마자 쉼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연단에서는
'AI와 의료의 미래'라는 주제로
00 대학교 의과대학 주임교수의 강의가 한창이었지만
H는 의자에 깊게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은 채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ㆍ
"퇴직금도 안 받고 나왔어"
"이사장은 기다려보라고 붙잡았지만... 그냥 나왔지"
나는 H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혹은 과장된 기억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척했지만 시선은 계속 강단을 향해 있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흘렀다.
'얘는 사업가의 기질을 타고난 것 같아.
정말 어떻게 평사원으로 들어가 이사 자리까지 올라갔었을까.
청춘을 다 바쳤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아'
한때 동문 소식지마다
'0000 병원 이사 000'이라는 이름이 자랑처럼 올라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이름이 사라졌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H는 누군가에게 오래 묵혀 둔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나 보다.
아니 그녀는 원래 말을 잘했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 말을 하고 있어도 중간에 대화를 가로채거나 개입을 하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H와의 대화에서 조용한 청취자를 자청했다ㆍ
얼마 뒤, 동문 밴드에서 H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축하드립니다ㆍ
저희 동문 000대표의 회사인 000이 코스닥 예심을 통과했습니다.
신문 기사를 링크해 놓은 글 아래
"축하드립니다"
"멋지십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축하의 댓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정말 멋지긴 하다ㆍ
그때 했던 말이 빈말은 아니었나 보다ㆍ
'반드시 성공해서 그 병원 이사장에게 찾아가겠다'고 했던 말이ㆍ
묘한 감정을 느꼈다.
H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했지만,
그 뒤통수가 오히려 그녀를 더 큰 세계로 밀어 올렸다.
인생은, 참 새옹지마다.
사람들에게 여러 번 뒤통수를 맞아
더는 누구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그게 어떤 느낌일까"말하는 이도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후자에 가깝다.
살면서 딱 한 번, 아주 오래전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십수 년 전, 지방의 한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하던 시절.
서울에서 내려와 학교를 다니던 한 여학생이 나를 많이 따랐다.
강의가 끝나면 차를 태워달라고 해 함께 교정을 나오기도 했다.
성실했고 착하고, 공부도 잘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기 말즈음 인가.
부모님이 용돈을 보내지 않아 급히 쓸 돈이 필요하다며
조심스럽게 얼마를 빌려 달라고.
학생이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얼마나 급했으면 나한테 얘기했을까' 싶어
계좌를 물어 남편에게 부탁해 돈을 보내주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모바일 뱅킹을 하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 이후
학생은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묘하게 나를 피했다.
졸업 때까지 아무 말 없이 멀어져 갔고 나는 그 이유를 끝내 알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말하면
여전히 그 아이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배신감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저릿한 슬픔 같은 것이.
H는 뒤통수를 맞고 창업을 하고 7년을 견딘 후,
이제는 코스닥 상장을 앞둔 회사를 일구었다.
그 여정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오십이 넘은 H가 여전히 불꽃처럼 살아가는 소식을 접하며,
내 자리에서 나도 마음을 다시 세운다.
나이탓 하지 말고
고요하게, 그러나 뜨겁게 살아가자고.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 '뒤통수를 맞았다'는 말을 해도
그 학생은 기억 속에서 떠나보내야겠다.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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