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슬픔이 내 마음에 다가올 때

사랑을 잃고도 사랑을 가르친 사람

by 순수

구독을 하고 있는 한 작가가 올린,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오빠에 대한 글을 읽었다.


유난히 마음이 먹먹해져 오는 겨울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작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

할머니가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여섯 살쯤 되었던 나는 그 모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신 적 없던 할머니가

무너져 내린 모습이

그저 낯설고 두려워 멀뚱히 바라보다가

눈물만 흘리며 서 있던 어릴 적 기억.


할머니의 그 울음은 얼마나 깊고 깊은 고통이었을까.

자식을 둘이나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할머니의 절규.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삶의 풍파는 할머니 앞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첫째 아들,

내 아버지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는 세 살.

아버지는 사진 속에서만 영원히

젊고 고요하게 웃고 있다.


큰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그 후 작은 아들마저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할머니는

언젠가 "이제 그만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삶은 할머니를 아흔네살까지 이 세상에

머물게 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온 몸이 시리도록 아픈 상처.

겨울날 찬바람 같은 아픔을 가슴에 안고.


할머니는

"예의 바르게,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 말씀을 나는 지키며 살고 싶었다.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가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가식적이야?늘 행복한 척하잖아."


상처였지만, 나는 그 말에도 그 아이와 졸업때까지

친구로 지냈다.

내가 받고 싶은 존중을, 그 아이에게 먼저 건네야 한다고 믿었기에.

그것이 할머니의 가르침이라고 여겼기에.


살아오는 동안 그 가르침은 때로,

나를 남보다 뒤로 물러서게 만들기도 하고

착해야 한다는 굴레로 이어지게도 했다.

그러나 마흔이 넘어 그 말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했다ㆍ


나를 먼저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되

무례함에는 단단한 선을 긋는 것.


그것이 할머니가 진짜로 전하고 싶었던

지혜였을지 모른다.


오늘,

오빠를 떠나보낸 어느 작가의 슬픔에 마음으로

깊은 위로를 보낸다.


그 글을 읽으며 나 또한

아픔으로 점철되어 살다 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먹먹한 슬픔을 느낀다.

그 슬픔 뒷면에

할머니가 내게 전해주신 지혜와 사랑에

깊은 감사를 전하며.


그 작가도 오빠와의 즐거웠던 추억,

감사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슬픔보다는

조용한 기쁨으로 하루빨리 평안하시길 바라며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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