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아 안녕
진심으로, 내 일처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말하기’의 효과는 엄청나다. 심지어 이것만으로도 용기를 얻고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치유가 팍팍 일어난다. 원리적으로는 틀림없다. 사람만이 가진 영적이면서 동시에 실제적인 힘이랄까.
여자 뿐 아니라 남자들도 가장 흔하게 많이 쓰는 셀프 힐링법이다. 부담 없는,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 두서없이 말해도 좋고, 과거-현재-미래를 타임머신 타고 오가듯 말해도 좋다. 상대방의 적절한 추임새가 마중물이 된다. 맥주 한 잔 곁들여 떠드는 것만으로도 속 시원해진다. 말과 함께 마음에 이끼처럼 켜켜이 낀 노폐물이 흘러나올 수 있다. 가슴속 울화 같은 것이 어느 정도 비워질 수 있다. 미처 몰랐거나 알고도 외면하던 문제를 깨닫고 정리할 수도 있다. 비슷한 눈높이와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맞장구치며 웃을 수 있다면 제반 환경은 충분하다.
‘치맥’이 좀 과하게 곁들여져 주객이 전도되기라도 하면 고민하는 머리 말고 다른 머리까지 아프고, 나눈 대화를 짚어 보면 ‘남는 게’ 없는 후유증도 있다.
물론 이보다 더 근본적인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상대가 전문적인 상담 훈련이 되어 있거나 정신의학, 심리학적 전문성을 가진 사람, 즉 의사나 심리치료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들은 얘기를 빌려오거나 짧은 경험을 토대로 피드백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뒤 없는 위로와 격려, 즉 “토닥토닥...잘 될 거야...힘 내...홧팅!” 등의 말은 따뜻해서 좋을 뿐, 문제 해결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그걸 받아들인다면 약물 오·남용과 같은 결과, 심지어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 비극으로까지 치달아 가게 할 수도 있다.
또 하나는 말하는 사람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거나, 띄엄띄엄 빼놓고 말해 왜곡하거나, 상대방을 보면서 수위를 조절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다 말할 수 없고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것. 정신의학적 치료나 심리 치료에 있어서도 핵심이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사실에 입각해 정확한 정보를 의사에게, 또는 상담자에게 내놓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감추거나 부정하거나 자신의 정당함만 주장한다면 무슨 진단에, 무슨 치료가 일어난다는 말인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틀림없는 ‘진실’이 그것이다.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실 그대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하늘 부끄럽지 않은 진실이 가슴에 들어 있어야 한다. 특히 관계의 문제, 상황의 문제에는 ‘자신’도 들어 있다. 자신을 빼거나 이기심을 넣고 나면 모든 게 남탓이 된다. 심하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이 환자요 외계인, 이 세상은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세상이 된다.
‘비뚤어진’ 성토는 강한 휘발성이 있다. 말함과 동시에 바로 허무하게 공중으로 증발해서 사라진다. 남는 게 없다는 게, 그 뜻이다. 힐링은 무슨. 단순 봉합만 있을 뿐. 안에서는 썩고 그 위에 묘비석 같은 아집과 고집, 착각과 오해로 눌러놓을 뿐.
실수나 잘못은 인정하고 고치면 된다. 다시 안 저지르도록 노력하는 것에 동의하고 지키면 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착각에서 정당화하는 것, 자기 방어막을 둘러치는 것으로부터 말이 시작되면 결과는 뻔하다. 눈밭에서 눈덩이 굴리듯 문제만 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