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있어 여행은 생활의 꼭 절반이었다. (그러니 일이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함인지, 여행으로 일의 에너지를 만드는지에 대해 하나만 고르기를 바라는 질문은 꺼내지도 말자.) 어쨌든 그는 즐거움 속에 나날이 가보고 싶었던 곳을 줄여 나갔다. 그는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올 수 있었다.
그러던 그가 세상에 알려졌다. 어느 곳의 풍경이든 들어가 그 일부가 되는 재주를,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그를 궁금해 하거나 흉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는 흔쾌히 여행 비법도 알려주고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주었다.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그의 여행에 예전에는 없던 동행들이 많아졌다.
그는 세계가 아는 유명인이 되었다. 그의 여행 리스트는 화려해졌고 여행은 생활의 전부가 되었다. 기자는 물론 방송팀이 동반하는 여행도 늘어났다.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이제 그의 배경으로서만 의미가 되었다. 자연과 그의 대화는 그 둘 사이, 인터뷰를 위해 줄서는 사람들로 인해 끊어졌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안 즈음, 새 즐거움은 끝났다. 여전히 어디든 오갈 수 있었으나 여행은 아니었다. 그는 깨달았다. 동행이 많게 되면 계속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돌아가려면 먼저 사람의 관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돌아가는 기쁨은 ‘탕자의 귀향’ 만큼이나 크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