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아내의 이야기(1)
체리(딸의 별명)를 만나는 순간은 늘 나의 예상과 빗나갔다.
이때부터 임신과 출산, 육아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임신을 계획한 2021년 6월, 체리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아기천사로 우리에게 찾아와주었다.
사랑니를 뺀 날이었다. 너무 아파서 항생제와 진통제가 들어간 약을 먹으려고 했는데, 순간 '혹시 지금 임신했다면 약을 먹으면 안되잖아?'라는 생각이 스쳤다. 가벼운 마음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해봤는데, 희미한 두 줄이 보였고 만약의 가능성에 대비하여 약을 먹지 않고 버텼다. 나에게 난생 처음으로 '모성애'라는 것이 갑자기 생겨났다. 이렇게 운이 좋을 줄 예상하지 못했고, 사랑니를 뺀 타이밍을 후회했다.
나에게는 로망이 있었다.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서프라이즈로 말하겠다는!
예전부터 서프라이즈 임밍아웃(임신+커밍아웃) 영상을 찾아보면서 같이 감동을 받곤 했다. 생각해보니 괜한 일이었다. 감성도 없고, 멋도 없게 "나 혹시 모르니까 약 먹기 전에 테스트기 한번 해볼게!" 라며 확인했다가 두 줄을 확인해버리다니...
재미있는 것은 임신 사실을 알기 전, 체리의 태몽도 갑자기 찾아왔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임신을 계획한 달에 결혼식을 올렸고, 알고 보니 결혼식 때 체리도 나의 뱃속에서 결혼식을 우리와 함께 했다. 신혼 여행 4일차에 꿈을 꾸었는데, 잔잔한 해수욕장 같은 곳에서 내가 조개를 들어 올렸는데 반짝반짝 진주 한 알이 빛나고 있었다. 이 꿈을 꾸고 일어나서 혼자 마음 속으로 '오? 나 임신했나?'라는 생각을 바로 했었다.
양가 부모님이 평소에 꿈을 자주 꾸셔서 나 대신 태몽을 꾸실 줄 알았다. 태몽이라 함은 호랑이, 용, 토끼 등의 멋지거나 귀여운 동물들이 나오는 휘황찬란한 것일거라 생각했기에, 나에게 찾아온 태몽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태몽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주위에 아무도 태몽을 꿔준 사람이 없어서 "혹시 이게 태몽이려나?"라고 물어보니, 다들 "그게 태몽이야!"라고 답했다. 체리가 엄마 놀라지 말라고 참 잔잔하게 신호를 보냈구나 싶다.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체리는 출산 당일에도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었다.
출산 예정일은 3월 12일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배가 많이 나오지 않았고, 컨디션도 좋고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아서 2월 28일까지 일했다. 출산휴가는 3월부터였는데, 체리는 예정일보다 2주 정도 빠르게 3월 2일에 세상에 나왔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는 3월 1일 하루 쉬고 체리를 낳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월요일 진료에 양수가 너무 적어서 목요일 쯤 양수가 더 없으면 유도 분만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화요일 쯤 '이게 이슬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보였고, 배가 콕콕 쑤셨지만 주기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도 찜찜한 기분에 수요일 오전 9시 쯤 병원을 찾았다.
원장 선생님께서 초음파로 확인을 하시더니 "배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병원에 와야지!"라고 말씀하시며, 양수가 전혀 없어서 아기 심박수가 내려가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말로만 듣던 긴급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남편한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 긴급 수술해야 한대, 아기 심박수가 내려가고 있대"라고 말하여 눈물을 흘렸고, 전화를 받은 남편은 회사에서 병원으로 날아왔다.
진료를 받기 전 남편과의 카톡의 마지막 문장이 '지금 진료실 앞에 산모분들이 엄청 많아! 나도 정말 자연분만하고 싶다'였는데, 그 바로 다음 카톡이 '여보, 내 반지랑 목걸이 가방에 넣어 놓을게'였다. 2022년 3월 2일 오전 11시 57분, 체리가 세상에 나왔다.
체리는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를 찾아왔다. 예상하진 못했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들이었기에, 한 해가 지난 지금도 그 소중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앞으로도 체리를 키우며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수없이 찾아오겠지만, 그 순간들은 또 얼마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