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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랑 Mar 06. 2023

데이트 통장을 거부했던 이유

_ 아내의 이야기(2)



체리아빠는 첫 만남부터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다는 말을 했다. 살면서 ‘경제적 자유’를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에게는 1차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데이트 통장’을 만들자고 했다. ‘데이트 통장’을 해본 적 없는 나였기에, 2차 충격이었다.



그가 데이트 통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한테 쓰는 돈이 아까운가?'라는 철부지 같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렇게 나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데이트통장에 대한 대화가 흐지부지 될 무렵,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그와 술자리를 가진 후, 대뜸! 그날은 데이트 통장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대뜸!



“데이트 통장 말이야~ 돈은 똑같이 내는데, 너네 집에서 뭐 해 먹고 남은 식재료 같은 것들은 너네 집에 보관하잖아!! (그래서 하기 싫어.)”라는 지금 생각해도 쥐구멍에 머리를 박고 싶은 말을 했더란다.



다음날 체리아빠에게 내가 저런 말을 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웠다. 저 말을 전한 체리아빠도 민망했을 것 같다. 30대 여자가 남은 식재료는 내가 가져가지 않아서 데이트 통장을 거부하다니.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으로 남은 식재료 가져가서 어디에 쓸거야 이 여자야.



아무튼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데이트 통장을 개설했다. 그리고 어느새 친구들에게도 데이트 통장을 추천할 만큼, 나는 데이트 통장이라는 시스템(?)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누가 계산을 할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소비하는 것도 좋았다. 저축액도 늘어났다. 나에게 첫 만남부터 '경제적 자유를 이루겠다'는 말로 충격을 주었던 남편이 어느새 자랑스럽고 멋있어 보였다.



부부가 된 지금, 우리는 매주 일요일 저녁 함께 가계부를 쓴다. 같이 일주일의 수입과 지출을 정리한 뒤, 칭찬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매월 말일에는 우리의 총자산을 점검한다.



결혼을 한 뒤 우리 부부는 경제적 목표가 생겼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부부’의 경제 개념뿐만 아니라, 체리가 크면 어떻게 경제 공부를 알려줄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머지않아 체리가 ‘돈’의 개념을 알게 될 때 눈높이에 맞는 경제이야기를 해주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그때가 되었을 때, 더 당당하게 알려줄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절약하며 살고 있다.



나를 닮은 체리이기에, 엄마 아빠에게 1차 충격을 받지는 않을까 약간 걱정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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