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을 누가 먼저 했는가?
_ 아내의 이야기(3)
책과 드라마를 통해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배웠다.
배운 대로 잘 실천했을 뿐인데, 남편에게 평생 놀림감이 생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남편과는 소개팅으로 만났다. 결혼하고 싶은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 나와서 놀랐다. 나는 소개팅 경험이 많은 편에 속하는데, 소개팅으로 이렇게 괜찮은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그간 연하를 소개받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래, 한번 연하도 소개 한번 받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오케이 했다. 신기한 건, 남편도 소개를 안 받는다고 한사코 거절했으나 주선자가 '몰라, 그냥 번호 넘긴다!'라고 했단다. 그렇게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난 후 '인연은 있다'는 말을 어느 정도는 믿는 사람이 되었다.
결혼식 날, 성혼선언문에 우리의 소개팅 이야기를 담았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보통은 선한 거짓말을 할 법도 한데, 이번 소개팅이 몇 번째냐는 저의 질문에 두 번째 소개팅이라며 솔직하게 말하는 신랑의 솔직함에 반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소개팅 당일엔 여느 평범한 만남처럼, 밥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서 카페가 문 닫을 때가 되어서야 헤어졌다. 남편이 헤어질 때 집에 따뜻하게 가라고 핫팩을 건네주었고, 집에 잘 도착했냐는 연락도 먼저 주었다.
연말인 12월에는 항상 약속이 많은 나였기에, 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사실은 나도 남편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 며칠 후에 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소개팅 다음 날, 점심이 되도록 이 남자가 연락이 없었다.
‘아~ 분명히 분위기 좋았고, 다음 약속도 잡아놨는데 왜 연락이 없지?’
점심시간쯤 내가 참지 못하고 연락을 먼저 했다. 소개팅을 수없이 많이 해본 나였지만, 소개팅 다음날 먼저 연락한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 매우 떨렸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연말 연초에 바쁜 업무를 맡은 남편은 그날도 매우 바쁜 날이었고, '오늘 너무 바쁘네요'라고 답했다. '힘들 텐데 파이팅 하시라'는 말을 예의상 몇 번 주고받으며 연락이 끊겼는데, 퇴근 후 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오늘 너무 바빠서 업무시간에 연락을 못했다고..!
사람들마다 연락을 주고받는 방식이 다르다. 남편은 문자를 장시간에 걸쳐 하나씩 끊어서 주고받는 성향이 아니라, 한번 연락할 때 서로의 궁금증이 해소되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하고 두 시간 있다가 한 마디하고 하는 건 기다리는 사람이 답답해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개팅 다음날 ‘선연락’은 내가 했으니까, 호감을 먼저 표시한 건 나라고 소문을 내고 다닌다. 아직 엄마 아빠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체리한테까지 벌써부터 소문을 내고 있다. 역시 뭐든 조급하면 안 된다. 조금만 더 참을걸. 먼저 연락을 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놀림감을 내주게 되었다.
이 글은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했다. (아닌가..?)
누가 상대방을 꼬신건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백 퍼센트 남편이 나를 먼저 꼬셨다. 나중에 체리에게 엄마 아빠의 연애 스토리를 들려주면, 체리도 '아빠가 엄마를 엄청 마음에 들어 했구나?' 하며 내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날을 상상하니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