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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세우기의 허상

토드로즈, 평균의종말

by Toothless

줄 세우기 덕에 성공한 대한민국, 허나 이제는 그 틀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외국 학생들에 비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했고 더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찍이 선행학습을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 심하면 유치원생부터 수능 레이스에 자녀를 참가시킨다.

하지만, 나 또한 선행학습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한다.

수능의 틀안에서는 말이다.

매우 어릴 적부터 우리는 1등부터 꼴등, 평균 이하~평균 이상으로 줄 세우기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평균 이하인 학생들은 저능아라 평가되어 학교, 집 그리고 사회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평균 이상인 학생들은 대접을 받으며, 좋은 기회를 많이 부여받는다.

이런 시스템의 문제점은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근데 이걸 왜 바꾸기가 어려운가..

그동안 해왔던걸 하는 게 가장 익숙하고 편하다. 또, 이렇게 줄 세우는 것이 기업이나 사회에 더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은 사람을 고르는데 매우 최적화되어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새로운 시스템으로 개편하는 것은 귀찮고 힘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을 고기 등급 나누듯 분류해 높은 등급의 사람은 원 없이 누리게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국물도 없는 이런 시스템 덕에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생각한다.

평균 이하인 사람이 겪는 냉혹한 현실을 보며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동기부여를 얻고 사회가 정한 '평균' 아니 그 이상을 해내려 발버둥 친다.

직장 동료보다 더 많은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내야만, 옆자리 친구보다 더 높은 성적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 머리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원래 그런 거 아닌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집착과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런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이것에 파생된 유행어가 있지 않은가?

워커홀릭.

나쁘게 말하면 일 중독.

저자는 우리가 치르는 첫 경기. 수능의 허점을 지적한다.

수능은 결국 좋은 머리, 나쁜 머리를 구분 짓는 시험이다.

평균의 머리, 평균 이상의 머리, 평균 이하의 머리.. 이걸 구분 지어 그 사람의 성공 가능성을 평가한다.

여기까지 내 생각이 맞는가?

하지만 이 책에서는 평균적인 뇌라는 것은 없으며, 평균은 허상이라 말한다. 평균으로 학생을 구분 짓기보다 학생의 개개인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각자 가진 재능과 잘할 수 있는 것이 다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 왜 대한민국은 선 줄 세우기, 후 재능 발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저자는 기업에서 수능시험 즉, 학벌로 지원자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필요한 실무 능력을 지원자가 갖췄는지 확인하고 그 증거로 자격증을 요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실제 머리 좋은 놈들 들여와도 실무에서는 꽝인 사례가 여럿 있다는 주장을 하는데, 대기업인 코스트코의 사례를 빗대어서 설명한다.

코스트코는 회사 발전을 위해서라면, 말단 직원의 의견일지라도 귀담아듣고 또 제안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 시작은 일반 직원이었음에도 대학 전공과 관련 없는 직무를 맡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제공했다.

만약, 코스트코가 승진에 있어 학벌 제한을 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는 직원의 개개인성을 존중했기에 가능했으며, 코스트코는 직원들의 높은 충성도로 낮은 이직률을 기록했다. 그렇게 지금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진 아주 잘 알겠다.. 이렇게 만 되면 참 좋을 거 같다.

근데, 이 시스템을 바꾸려면 처음에는 기업들도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장기간에서야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또 뿌리박힌 기업문화를 한 번에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고 갈등도 많이 빚을 것이다.

문제만 일으키던 비행청소년을 끝까지 믿어주고 이끌어주고 마침내 그 아이가 번듯한 직업을 얻게 되고 사람 구실을 하게 되었다는 감동 스토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특히 내가 겪진 않았지만.. 이 학벌 줄 세우기식 채용, 그리고 등급 나누기식 교육은.. 개개인의 능력을 발굴하고 이를 발휘시키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평등한 '맞춤'이라는 개념을 권장한다.

'맞춤'이라는 것이 생소할 수도 있으니, 한 예시를 들자면.. 비행기 조종석을 제작하기 위해 조종사들의 '평균' 몸 크기를 재었다. 그렇게 조종석을 제작했는데..

이게 웬걸 맞지 않는 것이다.

분명 평균 몸 크기 대로 잰 것이니, 모든 조종사가 여기에 딱 들어맞아야 맞는 것 아닌가?

우리가 숭배하는 평균대로 한 것이기에, 이런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바로 조종사 몸의 다양성과 개개인성을 무시해서 발생했다.

평균 키, 평균 몸무게, 평균 어깨너비, 평균 팔 길이

이 4가지만 본다고 치자.. 근데 어떤 사람은 키는 평균 이상으로 큰데 팔 길이는 평균 이하로 짧을 수도 있고 그렇다.

그러니 저 4가지에 딱 들어맞는 조종사는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를 깨닫고 각 조종사에게 맞는 '맞춤형' 조종석을 제작했다.

이 예시는 책에서 종종 등장하는데, " 평균이라는 개념은 허상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쓰인다.

이 예시처럼 우리에게도 개개인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맞춤교육, 맞춤학습, 맞춤 환경이 필요하다.

수능 시스템을 통째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학벌이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도 깊이 공감한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평균의 허상에 사로잡혀 개개인성을 무시하는 것은 더 많은 인재를 발굴할 기회를 놓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학교와 직장을 평균주의 시스템에 맞추는 대신 개인에 맞춰 재설계할 경우 갇혀 있던 굴레에서 풀려날 인재들을 상상해 보라.

평균의 종말



실제로 지켜보니 학력(성적과 채용 심사자의 견해에 따른 취득 학위의 수준)과 실무 수행력 사이는 거의 상관이 없거나, 아예 상관이 없었다.

평균의 종말



제대로 잘 살펴보면 누구에게서든 재능이 발견되기 마련이라는 신념에 따른 자세가 큰 몫을 했다.

평균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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