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트
그날이 떠오른다.
이혼 숙려기간 중 어느 하루였다.
이제 막 퇴근을 하고 걷다가
옆에 있는 음식점 주차장을 문득 보게 되었다. 아기엄마가 차 옆에 서 있고 아기아빠가 조수석 뒷좌석 카시트에 아기를 앉히고 있었다.
아기의 웅얼대는 소리와 카시트 벨트를 채우느라 상체가 차 안으로 들어가 있는 남의 아기아빠 뒷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그렇게 났다.
너무 부러웠다.
카시트 벨트 채우기가 어렵다며 아이가 5살이 되도록 단 한 번을 해주지 않았던 그가 생각나서.
꾹 꾹 눌러 담아왔던 서러움이 터져버렸다.
카시트에 좀 앉혀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면 못하겠다고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렸던 그가.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서 괴로웠다.
나는 왜 저런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조차 겪어보지 못했을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나는 언제나 쩔쩔맸다.
그냥 내가 하고 말지. 괜히 말했다.
이런 후회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었다.
시댁에 가는 날,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라 짐이 참 많았다.
게다가 일주일을 머무를 예정이라 기저귀와 분유, 옷가지들, 젖병들 등등
거기에 우리 어른 두 명의 짐까지 하니 너무 많았다.
짐을 좀 들어서 차에 가져다 놓자 하니
내가 짐꾼이냐고 되묻던 사람.
그 말에 화가 나서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냐고 우리 짐이지 않냐고 뭐가 불만이냐고
말했더니 결국 나에게 화를 내면서 짐을 던져버렸다.
나는 아기띠를 매고 짐들을 차에 실었다.
두세 번 넘게 차에 왔다 갔다 하며 결국 혼자 짐을 다 실었다.
술을 좋아하다 보니 항상 택시를 타고 다니고 차가 없었던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음주운전을 해서 면허가 취소되었다.
그런 그를 믿을 수가 없어 결혼생활 내내 운전은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미안해한다거나 고마워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사람.
오히려 조수석에 앉아 내내 잠만 자다 고속도로에서 조금이라도 덜컹거리게 되면 바로 짜증과 화를 내던 사람.
나는 언제나 미안해해야 했다.
이런 사소한 일상들이 반복되고 누적되면서
나는 점점 익숙해져 간 것 같다.
저 사람은 어차피 안 할 거니까 그냥 내가 하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하면서.
싸우고 싶지 않았던 나의 최선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바랬던 건 큰 게 아니었다.
그냥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
그게 아기 분유를 만들어준다거나 아기랑 물놀이를 한다거나, 아기랑 함께 놀러 간다거나, 아기의 옷을 입혀준다거나 기저귀를 갈아준다거나 하는 그런 사소한 일상을 함께 하며 웃고 떠들고 싶었었다.
그게 너무나 절실했었다.
주변 친구들이 이제 막 결혼을 많이 하고 다들 갓난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나에게 전화로 남편에 대한 서운한 점을 얘기할 때가 있다.
그럼 나는 들어주고는 이렇게 말해준다.
"그래 서운할 수도 있겠다. 근데 그래도 퇴근하고 본인도 엄청 피곤할 텐데 아기 봐주고 놀아주고 재워주잖아. 그거 당연한 거 아니다~? 그렇게 안 해주는 사람도 있어ㅎㅎ
그리고 그 행동에는 네 생각해서, 아이 보느라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서 해주는 마음도 있는 거야.
당연하게 자꾸만 생각해 버리면 고마울 게 사라져 버려. 자꾸만 고맙다고 얘기해 주고 그래."
어쩔 수가 없다.
아는 만큼만 보이는지라
친구의 이야기에 또 감사하라는 말 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내 친구들이 나와는 다르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니까.
결혼생활을 하며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그 사람의 작은 행동과 배려를 언제나 눈 크게 뜨고 지켜봐 주고 고마워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언제나 네가 최고야라고
서로 인정해 주며 응원해 주면.
그렇게 한다면.
그러면 처음 두 사람의 뜨거웠던 온도만큼은 아니더라도
따뜻하고 은은한 정도의 온기쯤은 계속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매일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니까.
그걸 나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기로 한 사람과
서로 다독여가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배려해 주면서 감사를 속삭인다면.
왠지 나는 행복할 것 같아서.
그럼 얼마든지 그 사람과 평생 뛸 레이스에서 힘든 줄도 모르고 손잡고 뛸 수 있을 것 같아서.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와 그렇게 손 꼭 잡고 내 인생 끝까지 뛸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