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할 사람
“결혼할 사람 만나면 종소리가 들린다던데 진짜 그래?”
친구의 기습질문이다. 4년이 넘도록 교제한 남자친구를 두고 묻는 소리였다. 무슨 종소리냐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내 머릿속을 계속해서 떠다녔다.
2018년 12월, 갑자기 주어진 열흘간의 휴가에 멍하니 사무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동료 둘은 이미 유럽으로 떠날 비행기표를 찾고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혼자? 유럽을 간다니.’ 동료들은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가보겠냐며 바람을 있는 데로 불어넣었고 순식간에 내 마음은 빵빵해졌다. 이렇게, 갑자기, 혼자 유럽에 가는 게 영 용기 나지 않아서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그때 그의 대답은 이랬다. “송이, 무조건 가야지!!”
그는 뜨겁게 달궈진 핸드폰에 내 귀가 벌게지도록 ‘지금 당장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지만 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저렇게 태평한가, 내 걱정 안 되나, 무슨 자신감인가’ 하는 야속한 마음과 ‘혼자서도 갈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 있는 마음을 계속해서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기도하고, 자기(남자친구)를 믿고 가라는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왕복 75만 원!’ 유럽 가는 제일 싼 비행기표다. 3일 후 출발이라니, 내 생에 이런 티켓팅은 없을 것이다. 마음이 풍선같이 부푼 탓인지, 75만 원이나 하는 비행기표가 마치 영화표같이 가볍게 느껴졌다.
출발 당일,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서점을 찾아갔다. 내가 찾던 ‘독일’ 여행책을 발견하고 나니 헛웃음이 났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며 야심찬 마음으로 공항에 왔는데 혼자라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내 옆에는 유일한 동반자인 보라색 캐리어만 있을 뿐이었다.
‘혼자라 어떡하지. 내 말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외국인이 말 시키면 어떡하지, 길 못 찾으면 어떡하지, 숙소 예약 안 됐으면 어떡하지, 기차 잘못 타면 어떡하지, 심심하면 어떡하지, 누가 쫓아오면 어떡하지, 메뉴 세 가지 먹고 싶으면 어떡하지,’
불안하기도 하면서 설레기도 하는 이 묘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여느 때와 같이 나의 안위를 위해 기도했는데 어느 때보다도 간절했다. 그 기도 덕분인지 독일로 향하는 11시간의 비행 여정이 끝남과 동시에 어떡하지로 도배되었던 마음이 깨끗이 정리되었다.
열흘 간의 일정 동안 한 순간도 외롭지 않았다. ‘먹고, 자고, 보고, 듣고’ 혼자서 해내는 내 모습에 이따금씩 그가 떠오르기는 했다. 그보다 처음으로 내가 나와 단둘이 있는 기분을 느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일상에서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며 지냈었는데, 그곳에는 오직 나만 있었다. 걱정했던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혼자 있으니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유로웠고, 편안했고, 평화로웠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뮌헨과 체코 프라하에서의 시간을 무사히 보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사진첩을 올려다보는데 사진이 생각보다 별로 없어 아쉬웠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고, 즐긴 여행이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다. 좁디좁은 비행기 좌석에 등을 있는 대로 기대어 자세를 편안히 하고, 눈을 좀 붙이려는데 체코 프라하의 천문시계탑에서 들었던 정각의 시계 종소리가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나 들어봤던 고풍스러운 서양의 종소리였다.
‘아! 종소리!’
소매치기가 많아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던 프라하의 구시가지에 홀로 서서 들은 그 종소리와 사람들의 엄청난 환호성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 믿어주고, 세워주는 그 덕분에 성취해 낸 광경이었다. 그 사람과 함께라면 앞으로도 송이답게, 아주 나답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마치고 나는 내내 잠을 잤고, 안전히 한국에 도착했다.
요즘도 남편과 그때 이야기를 할 때면 이렇게 묻는다.
“그때 날 유럽으로 떠밀지 않았거나, 같이 가자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남편은 기세등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송이. 그래도 결혼했을걸?”
혼자 떠났던 유럽 여행, 이 사건은 남편도 인정하는 내 인생 가장 기억에 남을, 신혼여행보다 더 소중한 인생 여행이다.
“결혼할 사람 만나면 종소리가 들린다던데 진짜 그래?”
누군가 다시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런가 봐. 난 프라하에서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