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기온이 좀 풀린 어느 날이었다. 지용은 벌써 봄을 맞은 사람처럼 신이 나서 카페에 가자는 전화를 했다.
"갑자기 카페? 아니 나는 뭐 맨날 모자 쓰고 외출하나. 미리 말을 해주든지. 그리고 곧 바다 잘 시간이야. 안 갈래."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전화는 끊어졌다. 갑자기 카페 간 적 많은데 그날따라 삐쭉 솟아 정리 안 되는 앞머리들이 감정을 찔러댔다.
출산 후 5개월쯤 되니 정말 머리카락이 숭숭 빠졌다. 안 빠지나 싶다가 어느 순간부터 배수구를 까맣게 가릴 정도였다. 이거 어떡하나 싶을 정도. 빠진 머리카락 뭉치를 보면 다시 난다는 말도 잘 들리지가 않는다.
유명한 머리 앰플을 사야 하나 검은콩을 먹어야 하나 고민만 하다 흐지부지된 머리카락 지키기. 시간이 약이었다.
요즘 빠졌던 자리에 새 머리카락이 나고 있다. 9개월쯤부터였을까. 갑자기 자라나고 있는 그 녀석들은 어정쩡하게 짧아서 정전기에 잔뜩 오른 것처럼 옆으로 위로 뻗쳐있다. 어디가 빠졌던 건지 알 수 있었다. 친구는 이때 자라는 머리카락 모양을 잔디 같다고 말했다. 탁월한 비유다.
지금 이 길이로는 핀 꽂을 길이도 안되고, 올려 묶이지도 않아서 잔디 모양 그대로 둬야했다. 거울 속 모습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감사할 일인데 그날 왜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을까. 남편에게 사과를 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제야 모양이 좀 웃기긴 하다며 낄낄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모자를 눌러쓰고 카페에 갔다. 정말 봄날 같았다. 미안하지용.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어서 이 머리카락들이 자라 자리를 잡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빠진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다는 말은 진짜이니 모두 믿고 스트레스 덜 받기를 바란다. 나도 그러지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