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끝을 따라 읽다
아기가 1시간 정도 혼자 어린이집에 있는 연습을 하는 동안 산 입구에 들렀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었다. 터벅터벅 흙 밟는 소리 사이로 타다다닥- 부산스러운 인기척이 들렸다. 청설모다.
다람쥐와 청설모, 진달래와 철쭉, 매화와 벚꽃을 구분하는 법은 아빠에게 배웠다. 다정하거나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항상 내게 자연에 있는 것과 자동차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름뿐만 아니라 냄새, 소리, 색깔도 다 알려주었다.
”한송이 이리 와 봐. 저게 뭐게?“
늘 모른다고 대답하고선 무엇인지 배웠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아는 게 더 많아진 나는 한동안 ”아, 몰라. 안 궁금한데.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알지.“ 로 끝나는 대답을 했다.
이제 내가 말한다. ”바다 그게 궁금하구나? 그게 뭐게?“ 손가락 끝에 닿는 모든 것을 향해 사전처럼 정확한 목소리로 알려준다. 나팔꽃, 철쭉, 목련 나무, 돌, 하늘, 손가락.
바다는 요즘 시도 때도 없이 검지손가락을 펴 무언가 가리킨다. 몸을 흔들며 저게 궁금하니 보여달라고 표현한다. 그 손끝을 따라 아주 느리고 작은 산책을 한다. 바다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르는 거 없이 대답이 나온다. 지겹도록 듣던 아빠의 질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딸내미가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 아빠의 질문은 쉰 적이 없다.
”이야, 이거 봐라 이거. 크으~ 이게 뭔지 알어?“
대부분 이런 거다. 잘 익힌 홍시, 흙 뭍은 고들빼기, 김이 모락 나는 시루떡, 끝내주는 노을.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다시 맞장구칠 수 있는 딸이 되었다. 그리고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어 다시 그 재미를 느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