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욜란다 Jun 02. 2022

04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일단 말 해 두고보자

"다음 달에는 그동안 늘 마음에 품었지만 시도하지 않았던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번 생각해 적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까요?"


Caregiver Support Group



1년여 시간 동안의 가족상담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center 이숙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어로 하면 '가족 돌보미 그룹 모임'  caregiver support group 만들 예정인데 참여 의사가 있는지 물으시는 연락이었다. 나는 내가 일을 하지 않는 평일 화요일 오전 시간대를 정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감사한 제안이었다.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일만 하며 아픈 부모님을 돌보는 환경은 자칫 사회적으로 고립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러한 support system 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caregiver support group이라고 하니 혹시 편찮으신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데 어떤 skill 배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선뜻 응하기로 했다.


화요일 오전이지만 내 스케줄상 한 주의 사이클을 마무리 하는 사실상 주말의 첫날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몸을 일으켜 차를 몰고 그 자리에 가서 한 시간을 앉아 있는 것이 큰 도전이었다. 몸은 마치 물먹은 목화솜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모임 참가자와 함께 간병에 관한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나누는 시간 자체는 힐링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과 마음 깊숙이 꿍해 두었던 일상의 스트레스를 비밀이 보장된 곳에서 맘껏 터트리고 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모임의 기본 취지는 Self-care였으며 스스로를 돌보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몸도 마음도 점차 회복되며 삶도 균형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번 session은 Jannet선생님이 교육을 가시는 관계로 한번 건너뛰게 되며 모임은 짧은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2019년 봄의 일이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길 건너 스타벅스에 들러 다이소에서 산 $1짜리 선 없는 노트를 펼쳤다. Support Group 초창기 부터의 메모가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사실상 내가 쓴 첫 번째 기록이었다. 맨 앞장은 Harvard Health Publishing의 Self-care for Caregiver라는 제목의 Article로 시작되고 있었다. 그 후로 참여자들과 함께 하는 명상과 호흡법 관련 Article, 서로 나눈 도서 정보, self-care란 무엇인가와 왜 중요한가, 내 삶을 위협하는 최근 issue 등을 이야기하고 함께 다음 질문도 만들어 간 흔적이 고스란히 있었다. 모임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마음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도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원해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3개월 만에 20lbs나 감량하게 되어 20대 후반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몸으로 돌아가는 기적도 일어났다. 지금은 물론 다시 요요가 왔지만 당시에는 마음의 병이 몸의 건강도 해칠 수 있듯이 마음이 풀리니 몸도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출처 pixabay Iillustrated by Maria Bulkova]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 앞에서는 막상 떠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원래도 하고 싶은 것이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눈앞에 놓인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다 녹아내리고 컵이 땀을 뻘뻘 흘려 탁자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놓을 때 까지도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게 맞나, 이것을 말했다가 이 시국에 괜히 망신만 당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꿈을 위해 무엇을 해 왔는가' 온갖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에이 그냥 생각 못했다 치고 다음 달 모임에서는 다른 시람들 말을 듣기만 하자.'라고 마음을 접고 한 달간 다이어트 유지에만 힘을 쓰기로 했다.  


반가운 모임이 시작되고 변화된 나의 외모에 대한 선생님들의 칭찬과 격려가 이어졌다. 그리고 돌아가며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저는......"


나를 포함 단 세명의 인원이었지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집중하는 상황이 마치 우리를 진공 공간에 밀어 넣은 듯 마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가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읽었는데 김영하 작가님......"


[......]

[......]


"저도 마음의 위안을 주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이화영 선생님은 글을 쓸 수 있고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몸을 내 쪽으로 굽혀 내 눈을  바라보는 이숙 선생님, Jannet선생님의 두 얼굴이 마치 아이패드의 화면이 두 개의 손가락으로 Zooming 되어 화면 가득 꽉 차게 들어오듯이 내 시야에 크게 클로즈업되었다. "네, 선생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더 진심으로 답 해 주시는 두 분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준비되지 않은 마음의 계획을 고해 버렸다. 어차피 이 모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발설할 수 없다는 비밀누설 금지 조항이 있었으므로 나는 안심하고 품었던 내 이야기를 고백했고 우리는 모두 함께 서로를 응원했다. 다른 분 들은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 순간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할 수 있다는 메아리가 들려온 내 인생의 첫 번째 날 이었다. 메아리가 환청처럼 계속 들려왔다. 나도 무엇인가 글을 다시 써 볼 수 있겠다는 설렘이 느껴졌다. 일단 마음에 품었던 꿈을 말이나 해 두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03 다시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