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ckout Punch
잘도 피해 갔던 코로나였다.
하지만 올여름, Omicron [오미크론]이라는 놈에게 한방 맞고 온 가족이 나가떨어졌다. 애석하게도 전염병의 시작은 나와 엄마로부터 인 것 같다. 가족들이 오미크론에게 차례로 당하던 중 가장 나이 많고 연약한 노인인 아버지에게 악귀처럼 들러붙더니 기어코 사선을 넘나들게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Urgent Care [얼젼 케어; 예약 없이 긴급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센더]를 거쳐 엠블란스를 타고 구급대에 실려 ER [Emergency Room;응급실]로, ER에서 일반 병실로 이동해야만 했다. 아버지를 엠블란스에 태우며 혹시나 하여 하얗게 먼지가 앉은 오래전 사드린 Saks 가죽 구두를 발에 껴 드리다 언니가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이 신을 이제 마지막으로 신겨드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하였다고 토로했다.
입원 후 2~3일이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적합한 항생제를 찾는 AST(Antibiotic Susceptiblity Testing)에 오류가 생겨 예상했던 기간의 두 배가 넘게 입원하셨다. 그 사이 코로나에서 폐렴으로 번져 퇴원하시기까지 곱이곱이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또한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며 간병 초반에 언니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다독였다.
나중에야 입버릇처럼 긴병에 효자 없네 하는 말도 반복했지만 강한 약기운에 딸들도 못 알아보며 섬망 증상이 심해지신 아버지가 가여워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점점 악화되는 치매 증상에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시는 신생아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두고 병실을 나설 수가 없었다. 연약한 노인의 입원이 이처럼 무섭구나 아버지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의 준비도 해야만 했다.
아침 면회시간에 맞춰 찾아가면 밤 사이 얼굴이나 팔에 상처나 멍 자국이 있었다. 대변을 속옷에 품고도 눈만 껌뻑이며 새우처럼 모로 누워 계시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두 딸들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차라리 매일 아버지를 씻기고 식사 준비 화장실 도우미로 함께 병실을 지키겠다 병원 측에 허락을 구하기로 했다.
청력이 좋지 않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남자 환자. 그것도 대변 실수가 잦은 노인, 더욱이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를 위해 병원 측에서도 가족이 직접 간병을 하고자 하는 딸들의 의지를 짐짓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수일이 흘렀고 이 또한 지나갔구나 한시름 놓았었다. 퇴원 과정에서 틀니를 분실한 사건을 집 파킹랏에 도착해서 알아 채기 전 까지는 말이다.
당초 다음 날 인 월요일 오전으로 퇴원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생각 보다 퇴원이 늦어지네' 별 수 없이 주말 하루 더 병원신세를 저야 하겠네 하며 넋을 놓고 있던 일요일 늦은 오후 갑자기 간호사가 들이닥쳐 지금 의사 승인이 있었으니 바로 퇴원하라는 급한 명령을 전했다. 두 딸은 부랴부랴 처음 다뤄보는 산소통이며 처방받은 워커, 집에서 싸가지고 온 짐 등을 챙기며 퇴원 수순을 밟았다. 점심 식사 후 세척 해 놓은 틀니를 세척액에 담가 화장실 카운터탑에 둔 것을 챙기지 못하고 쫓기듯 서류에 사인을 하고는 등 떠밀려 퇴원하고 만 것이다. 집에 막 도착 해서야 놓고 온 물건이 있음을 알아챘고 서둘러 입원했던 층의 Nursing station에 직통전화를 걸어 틀니 분실과 두고 온 위치를 알리고 당장 픽업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리셉션에서는 담당 간호사에게 보고 후 병실을 확인하고 전화드리겠노라며 내 전화번호를 받아갔지만 나는 아버지와 언니만 우선 집에 내려 드리고 그 즉시 병원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는 외부인 출입 시간이 지났다고 했으나 이미 얼굴이 팔려버린 동양 여자들 중 한 명인 나는 특별한 사정도 받아들여져 visitor 스티커 없이 잠깐만 6층 방문이 허락되었다.
마침 간호사 교대 시간 전이라 아버지 담당 간호사를 만날 수 있었지만 기분이 싸했다. 고작 30분 남짓한 시간인데 그 사이 벌써 청소팀이 도착해 병실을 치웠고 청소 담당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절차 중이라는 변명을 들어야 했다. 아시다시피 내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시고 충분한 영양공급을 못하면 회복이 더뎌질까 두렵다. 죽먹기를 거부하시니 얼른 찾는 대로 연락 주기 바란다며 연락처를 다시 남기고 돌아왔다.
왜 그렇게 등 떠밀리듯 호닥거리며 퇴원을 해야만 했는지 울화가 났다. 환자 입원 시 소지품과 퇴원 시 소지품을 간호사와 함께 확인하는 것이 퇴원 절차 중 하나라고 간호프로그램 재학 중 배운 기억이 나는데 배운 대로 하지 않는 의료인의 직무유기도 고발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점검하지 않고 서둘러 나와버린 스스로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아무래도 책임자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아 플로어의 Charge Nurse 연락처와 이름을 받았지만 온몸에 힘이 죽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발걸음이 무겁다. 무엇보다도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주변을 탓하는 내 연약함의 속내를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간병 후 지칠 대로 지친 심신에 처음 겪는 이 일이 큰 산처럼 가로막아 이젠 더 이상 그 무엇도 못하게 나를 주저앉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슬픈 예감이 틀리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