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명칭은 대한민국 대법원
몇 해 전인가 한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이다. 관공서에서 수산시장을 배경으로 주최하는 데이트 이벤트 프로그램에 당첨된 참가자는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주최 측에 탈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탈퇴 절차를 위한 공인 인증서 발부 및 거쳐야 할 과정과 제출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아 결국 이벤트를 끝까지 참여하기로 했다는 웃픈 이야기였다. 아버지의 틀니를 두고도 그 웃품이 현실이 되었다.
"네, 네 고객님!"
낯선 듣는 음성이다.
"아, 네, 제가 사정 설명을 다시 드려야 할까요?"
다른 부서에 연결이 된 것 같다.
"네, 고객님 상황은 전달받았습니다. 위임장을 신청하 셔서요, 한국 친척분께 위임장 가지고 오라고 하시면 되는데 친척은 없으시고요....."
"......"
"이 의료 기록은 본인이 신분증 가지고 오셔야 하는데 아버님 보고 신분증 가지고 오시라면 됩니다."
아버님이 신분증 가지고 오실 수 있으시면 애당초 높은 분 에게 까지 전화를 돌리지 않았을 텐데. 마음에 돌덩이가 턱 내려앉았다.
"아버님이 치매가 심하시고 지금은 아버지 포함 가족 모두 미국에 있습니다. 몸도 지금 많이 편찮으시고요. 얼마 전 코로나와 폐렴으로 입원하셔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셨어요. 부탁을 드릴만한 친지분도 모두 연로하셔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열람을 할 수 있나요?"
"그니까 고객님 요양급여내역 말씀이시죠?"
"요양...... 그게 뭔가요? 저는 아버지 다니셨던 치과 이름을 알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
"그니까요, 그게 요양급여 내역입니다."
"아......"
"서울 대법원 아시죠?"
"네... 네? 서울 대법원이요?"
"거기 가정 법원 가셔서요 후견인 신청하시고 후견 등기 사항 증명서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깊은 한숨을 속으로 삼킨다.
깊은 한숨이다.
나는 지금 그냥 한숨을 삼킨다.
"가. 정. 법. 원. 후견인. 후... 후견, 네?"
"후견등기사항증명서요 고객님."
"후. 견. 등. 기. 사. 항. 증. 명. 서"
한 올 한 올 정성껏 받아놓는다. 꼬여진 기억의 타래가 풀리기를 염원하며.
어렵게 부서부서를 이동해 또 어렵게 말씀해 주신 방법은 가정법원엘 가야 하고 후견 등기사항증명서를 떼어야 열람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셨다.
불가능하고 방법이 없다는 대답을 No라는 말 대신 해 주신 것 같다. 순간 이번에는 역할을 바꾸어 내가 보이스피싱 회사와 연결된 것인가 귀를 의심했지만 절차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나 같은 고객에게 시달려야 할 상담원분들의 고충을 생각하니 그만 괴롭혀 드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전화를 끊는 수밖에 없구나.
나는 다시 한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