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아~~~!
"나봐. 나 봐봐. 아빠~ 틀리이~~~~ 어. 디. 서. 틀니. 이빨! 이빨! 어디서 했어?"
언니가 아버지를 앉혀놓고 마지막 신문에 들어갔다.
"뭐? 뭐? 털리?"
"틀니. 이빨! 이빨." 언니가 자신의 이를 탁탁 치는 수화를 보탠다.
"(콧웃음을 치시며) 쳇! 내가아 틀니가 어딨쪄? 업. 쪄!"
이제는 본인이 틀니가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이제 카드 잔액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나 한 번만 더 한국에 전화해 볼게. 안되면 언니가 삼촌 한데 전화해 줘. 그 담엔 나도 더 이상 못하겠다."
중앙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 고객 상담 센터는 여러 민원처리를 해야 하는 곳이니 정해 진 매뉴얼에 따라 보다 엄격할 것을 예상했지만 이제 와서 이렇게 되고 보니 다른 방법도 없고 다시 여기에 또 전화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쩐지 내 번호가 진상 리스트에 올라가 있을 것만 같았다. 본의 아닌 상황에 진상을 떨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자기 연민에서 오는 설움을 일단 삭히기로 했다.
안타까움에 몸부림 칠 무렵 2019년 가을 서울 방문 시 몹시 친절하게 상담해 주시던 살던 동네의 건강관리공단 직원분들이 생각났다.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이 부모님의 인지증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역 이민을 신중히 고려했던 시기였다. 그마저도 자녀 중 누군가는 함께 한국행을 택해야 하는데 누가 되었던 홀로 짊어질 무게가 너무 클 것이니 내가 하지 못하면 누구도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역 이민을 접었었다. 하지만 물어나 보자 하고 방문 한 동네 공단 사무실이었다.
2019년 가을, 어머니 아버지 사연을 들으시며 함께 눈물을 흘리시던 직원 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딸들이 이렇게 다니면서 고생한다고 나도 엄마 생각난다면서 공감해 주셨던 친절하던 직원분들이 계셨던 그곳. 우리 가족 한 동네 주민이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잘 알아봐 주실 것 같았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이 거주하던 지역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연락을 해 보기로 했다.
나 또한 모든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가을, 고향의 따뜻했던 기억만큼은 선명하여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궁극의 여정을 매듭 지을 수 있는 희망의 울림 같은 것이 차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