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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Jan 13. 2023

음식 칼럼니스트라고 하기엔...

입맛의 기준이 높아졌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진 난 나름 음식도 잘하는 편이고 내 입맛에 대한 자부심도 꽤 있는 편이었다.

그게 얼마나 어이없는 생각이었는지 남편과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깨닫게 되었다.


남편과 3번째 만났던 날 난 우리 집 근처에 맛있는 양곰탕 집이 있다며 남편을 호기롭게 데려갔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남편이 한 숟가락을 먹고 난 표정이 내 예상을 뒤엎고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 뭐지? 이 양곰탕이 맛이 없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게

" 아... 요 정도?" 남편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그 순간 너무 혼란스러웠고 자존심도 상했고 까칠한 남편의 태도에 마음도 상했다.


" 앞으로 내가 많이 데리고 다녀야겠네"

남편은 내 수준을 알았으니 맛있는 곳을 데려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유명한 노포들로 날 데려가기 시작했다.

맛린이인 내가 새로운 음식들을 처음 먹으며 맛있다고 좋아하면 그는 자식 입에 맛난 거 들어가는 걸 보는 아버지 같은 미소로 날 보며 행복해했다.



조선옥, 청진옥, 우래옥부터 시작해서 속초, 부산, 통영, 여수, 목포... 전국의 맛집까지...

3년 반동안 소위 '먹고 다니는 사람들'이 간다는 음식점들은 다 가본 것 같다.

맛난 음식의 폭풍을 만난 듯 엄청 먹고 다녔고 그와 동시에 토실토실 살도 올랐었다.


사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에 대해 내가 아는 정보는 음식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정도였다.

그의 블로그엔 그의 글의 매력에 빠진 마니아층이 엄청 많았고 그 방면에선 꽤 유명했다.

나도 그의 블로그의 글들을 찾아 읽으며 그 따뜻함과 독특한 글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어갔다. 

특히 어머님께서 만들어주신 음식에 대한 글은 너무나 정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의 지인이 남편에 대해 표현한 글이다.

' 영화와 일상, 노포점들을 엮어 요리와 음식, 삶을 풀어내는 사람.  맛 칼럼니스트라고 한정하기엔 그의 글 품이 너무 넓고 깊다'

어쩜 이렇게 적절하게 잘 표현했는지...




하지만 문제는 스스로 음식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존감은 완전히 낮아져 버렸다는 거.

남편의 입맛을 맞추기엔 내 요리 실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외식을 할 때 음식점을 고르기가 너무너무 힘들다는 거.

그래서 음식 때문에 다투는 일이 제일 많았다.

그만큼 남편은 음식맛에 진심이었고 삶의 중요한 영역이었다.


하루는 그런 남편이 좀 안타까워서

"당신은 맛의 기준이 높아서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이 상대적으로 적겠다. 한편으론 불행한 걸 수도 있겠다. 난 기준이 낮아서 웬만하면 다 맛있고 그래서 행복한데..."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머리를 한 대 탁 맞은 것처럼 놀라면서 "그럴 수도 있겠네"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남편과 3년 반을 함께 먹고 다녔더니 내 입맛의 기준도 높아져서 이젠 웬만해선 맛있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렸으니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ㅋ


#글루틴 10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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