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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어린 나의 베프

by 정민유


상담대학원에 들어가고 인턴수련을 받던 시절 그녀를 처음 만났다.

7명의 수련생들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고 그녀는 제일 어렸다. 그녀는 자그마한 키에 조금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였고 목소리는 어린애 같았다.


난 46살의 딸이 셋인 전업주부였고 그녀는 25살, 난 그녀의 엄마 연령대, 그녀는 내 큰딸과 비슷한 나이. 서로 공감대가 있을 리 만무했다.


1학기 동안은 그야말로 소 닭 보듯이 하며 지낸 것 같다. 그러다가 수련생끼리 짝상담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랑 그녀가 짝이 되었다.

둘 다 짝이 된 걸 그리 좋아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난 그때 40대의 중반을 지나던 시기여서 한참 발산하던 때였다. 그런 내가 그녀는 부담스러웠을 거다.


하지만 첫 회기 내가 상담사, 그녀가 내담자 역할로 상담을 하고 났을 때 뭔지 모를 유대감이 둘 사이에 생겨났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속 깊은 이야기를 둘만이 나눈 느낌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 서로 상담사, 내담자를 번갈아 가면서 20회기의 상담을 진행했다. 우린 진짜 둘만의 짝상담에 빠져들어갔다.

난 그 당시 ENFP 그녀는 ENTJ였다. 비슷한 성향은 아니었지만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나보다 세상물정을 잘 아는 그녀가 내가 모르는 것들을 많이 알려줬다.

또 감정형인 나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정을 사고형인 그녀가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친한 친구사이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 둘이 영화를 보러 가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고 전시회도 가고..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걸 제일 좋아했다.

대화코드가 딱 맞았다.

비록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는 그녀가 뼈 때리는 조언도 서슴없이 해줬지만 하나도 상처가 되지 않았다.

날 마음속 깊이 좋아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런 우리 둘을 보며 상담센터 소장님도 다른 수련생들도 신기해했다.

나조차도 신기한 건 마찬가지였다.

" 엄마는 미지언니랑 어떻게 그렇게 친해? 대화가 잘 통해?"

큰딸은 믿어지지 않아 했다.

힘든 일이 있거나 축하할 일이 생겨도 그녀에게 먼저 얘기한 것 같다.

그러면 그녀는 진심으로 위로해 줬고 마음을 다해 기뻐해줬다.


상담심리사 자격시험도 함께 공부해서 함께 합격했다. 그녀는 바로 청소년상담센터에 취직을 했다. 난 한참이 지난 후에 정신과에 취직이 되었지만.. 취직이 안 돼서 힘들어하던 시절에도 그녀는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베프가 된 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그녀는 청소년상담센터에서 7~8년 근무를 하고 1년을 쉬다가 작년에 법원에 취직이 되었다.

그때도 함께 뛸 듯이 기뻐해주었다.


친구가 되는데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 준 나의 21살 어린 베프.

요즘은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항상 마음속에 나의 든든한 지원군처럼 자리 잡고 있다.


마음이 통하는 사이

코드가 맞는 사이

언제나 내편인 사이...


그녀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난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고 저만치에서 날 발견하고는 "선생님"하면서 활짝 웃으며 달려오는 그녀의 표정.

따사로운 봄햇살처럼 내 가슴에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글루틴 14 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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