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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날 울린 그녀

나에게 귀인 같은 존재

by 정민유


그녀는 내가 4년 반 일했던 정신의학과의 부원장님이셨다.

새하얀 피부에 풍덩 빠질듯한 커다란 눈, 까맣고 긴 머리카락,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

무엇보다 따뜻하고 사랑을 가득 담은 눈빛.


코드가 맞는 사람끼린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그냥 통하는 법.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스치듯 지날 때 보이는 웃음에서 서로 좋아한다는 걸 수 있었다.

같은 크리스천이었고 성향도 비슷했다.


정신의학과 부설 상담센터에 6명의 상담선생님이 있으셨지만 자신의 지인 상담은 다 나에게 맡기셨다. 그녀가 나를 부르는 별명은 '믿맡샘'(믿고 맡길 수 있는 샘)이었다.

사실 나를 믿고 가족의 상담을 맡겨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상담사로서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일이었다. 병원 상담실에서 제일 나이는 많았지만 경력이 제일 적었기 때문에 상담사로서 유능감에 자신이 없을 때였다.


4년 반 병원상담을 하고 나의 꿈이었던 심리상담카페를 오픈하게 되었다.

그 말을 그녀에게 하자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지. 제가 병원 오픈하면 선생님 제일 먼저 함께 일하자고 하려고 했는데요.."

그런데 이미 다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나의 독립에 자극을 받아서인지 그로부터 얼마 후 그녀도 자신의 병원을 오픈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조심스레 병원에 와서 상담을 해줄 수 없냐고 제안을 하셨다.

난 이틀을 나가기로 했고 2년을 함께 일했다.


환자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도 치료 마인드가 같으니 환자들의 상담의 효과도 빨리 나타났다.

상담의 마인드를 가진 정신과 의사는 흔치 않다. 진심으로 환자를 사랑하는 원장님이 참 귀하다.

게다가 상담샘들의 간식이나 가운 세탁등 아주 세심한 것까지 하나하나 챙겨주시는 존경스러운 리더셨다. 비록 나보다 한참 어리시지만...


건강상 너무 힘들어서 그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서운해하던 그녀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서로 참 많이 의지하고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사이였기에...

지금도 약이 필요한 내담자들에게 그녀의 병원을 자신 있게 소개해준다. 그러면 역시 내담자들은 좋은 정신과 선생님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한다.


오늘 동기샘 중 한 분을 소개해서 나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나도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원장님의 카톡을 보고 결국 울고야 말았다.


'선생님의 빈자리를 아직 제가 인정하기 싫었는지 공고도 안 내고 있었는데 선생님을 통해 귀한 신앙을 가진 샘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네요.

하지만 가끔은 샘이 너무 그리워요'


나에겐 귀인 같은 분, 상담사로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던 날 나보다 더 믿어주신 분...

오늘 나도 그녀가 많이 그립습니다...


#글루틴 13 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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