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을 말한 밤

내가 황혼이혼을 하다니..

by 정민유


"우리 얘기 좀 해"


이혼을 결심하고 언제 그 말을 해야 할지 수도 없이 고민했다. 그가 어떤 반응을 할지 불안했고 합의를 안 해줄 때는 소송으로까지 가야 하니..

이혼 생각을 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거대한 파도가 나를 덮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날은 끝도 없는 블랙홀로 빠져드는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이 결혼하고 남보다도 못한 전남편과 둘이 살아간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서로 무늬만 부부로 산지 10년 정도 되었다. 10년 전 그땐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무시하는 전남편에게 쌓였던 분노가 폭발되었고 이혼을 결심했었다.

시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이혼하겠다고 하니 곧바로 달려오셨다.

"내가 너를 딸처럼 생각하는데 이혼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 유독 나를 예뻐하셨던 시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하셨다.


막내가 4살밖에 안된 어린 나이라 시부모님의 만류에 못 이기는 척 다시 살기로 했다. 사실 이혼을 할 수 있는 자아의 힘도 없었다. 물론 경제적 능력도 없었다. 지극히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각자 서로의 삶에 터치하지 않고 큰 갈등 없이 지냈다.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그냥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밖에서 보면 아무 문제없는 가정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나에겐 남편의 자리에 남편이란 존재는 없었다. 힘들 때 마음을 위로받을 존재도, 아플 때 옆에서 챙겨주는 존재도 어려운 결정을 할 때 상의할 사람도 내겐 없었다.




51살 봄날 저녁.

안방 문 앞에서 난 떨고 있었다. 손잡이에 힘을 주어 열기까지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림을 느꼈다.

더이상 머뭇거릴 수는 없다. 손에 힘을 주어 손잡이를 돌렸다.

그는 언제나처럼 혼자 TV를 보다가 갑자기 들어간 날 보며 놀란 토끼 같은 눈으로 날 쳐다보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에게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내 말에 그는 마치 잘못한 아이가 엄마한테 혼나는 것 같은 긴장된 표정으로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 어 얘기해" 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랄까? 아무튼 오랜 시간 살면서 그의 그렇게 긴장된 표정은 처음이었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표정의 그.


" 나 심각한 얘기 하려고 하는데 TV는 끄면 안 될까?"

그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순순히 TV를 껐다.

" 뭔데? 말해봐"

" 우리 안 맞는 사람끼리 정말 오래 살았잖아. 이제 그만하자"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수없이 머릿속에서 되풀이하여 연습하고 연습했던 말.

그러자 그는 " 원하는 게 그거였어? 그래 그러자"

바라던 대답이었지만 뭔가 허탈했다.

이렇게 쉬운 거였나? 30년 가까운 인연을 끝내는 게...

오히려 내가 그 말을 꺼내기를 기다린 사람 같았다.

용기가 없는 사람이니 용기 있는 내가 결정해 주길 바랐었나 보다.


약간은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 그 대신 이혼 성립될 때까진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자"

결국 또 부모님이구나... 아직도 그에게 부모님은 거대한 성 같은가 보구나.

시부모님이 아시면 절대 이혼을 시키시지 않으실 게 뻔한 노릇이었고 그는 평생 부모님의 의견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

" 당연히 말 안 하지. 그리고 이 집이랑 내 차만 줘"

그는 오히려 기뻐하며 " 내가 줄 수 있는 만큼만 달라고 해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어쩌면 부모님의 꼭두각시로 살았던 아들과 딸이 50이 넘은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 자발적인 결정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중대사를 처음 결정한 게 황혼이었다니.

부모님의 결정에 의해서 하게 된 결혼이었고 이미 시작부터 잘못된 결혼이라는 걸 둘 다 알았다.

둘의 성향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계획형인 남자와 섬세하고 감성덩어리고 마음이 잘 오르락내리락하는 여자. 그런 사람끼리 부부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고통이었는지..

대화를 하면 10분 안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를 내게 되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같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평행선이었다.


난 사랑만 없는 하지만 모든 게 안정되어 있는 삶을 깨고 나가려는 결심을 했다. 노후가 보장되어 있는 삶이었지만 난 행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

이만큼 했으면 됐다.

하지만 이혼하고 그 집을 나가는 순간 자유를 얻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나를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모호함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 한 번도 독립적인 삶을 살아보지 못했던 내가 그 두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스캇 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았던 내가 혼자서 살아가는 게 너무나 두려웠지만 그 삶을 선택했다.

스캇 펙 박사님이 가장 절망하고 있을 때 무의식에서 들려온 목소리.

" 인생에 있어서 유일하게 진정한 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생의 불안정을 맛보는 데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 나왔고 난 그 목소리에 따랐다.


그날밤 둘째 딸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오랜 시간 잠들지 못했다.

'내가 이혼을 하는구나...'

나의 황혼이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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