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으로 시작된 첫 번째 결혼
두 꼭두각시의 만남
" 선 많이 보셨어요?"
" 네 좀 봤는데 엄마가 처음이라고 하래요"
그런 날 그는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웃었다. 그 눈빛을 보며 난
' 이 사람은 날 사랑해 주겠구나..'그렇게 믿어버렸다.
24살 봄 아빠가 아시는 분의 아들과 선을 봤다.
햇볕이 따사로운 5월, 내 마음도 희망으로 넘실거렸다.
그동안 선을 볼 때마다 아빠는 따라 나와서 신랑감을 평가했고 매번 어떤 이유를 대서 안된다고 하셨다. 그날도 기어이 그 자리에 함께 나오셨다.
어차피 내 의견으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이 살았으니까 너무나 익숙했다.
대학을 진학할 때도 여대를 가야 했고 서클활동이나 하물며 기타 연주회도 하지 못하게 하셨다.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집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결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니 부잣집 외아들에 전문직이고 아빠의 젊은 시절 모습과 닮은 외모를 가진 그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 다른 넘 더 볼 것 없다"
'드디어 난 이 집에서 탈출할 수 있겠구나...'
아빠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의 부모님과 호텔 뷔페에서 만났다. 너무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날 보며 그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 그래 날은 언제로 잡을까?"
" 네?" 난 너무 당황해서 웃음이 터졌다. 나의 웃음을 그의 부모님들은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남편은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으나 부모님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어차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할 수 없으니 부모가 좋다는 여자랑 결혼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나랑 결혼한 이유를 물어보니 " 내 말을 잘 들을 것 같아서.."였다.
전남편과 나 두 사람 다 자신의 자율성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자녀들이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순종적으로 살아왔다.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이 전혀 되지 않은 나이만 성인인 두 사람.
결혼 또한 아버지들의 결정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만난 지 1 달반만에...
축하객들이 줄이 안보일정도로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날 도우미로 오셨던 이모님이 이렇게 하객이 많은 결혼식은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난 결혼만 하면 사랑받는 아내로 살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그 환상이 깨지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따뜻하게 날 바라보던 전남편의 눈빛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결혼생활이 시작되자 차갑게 바뀌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난 결혼만 하면 남편에게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애정결핍이 있는 사람들은 남자친구나 배우자로부터 그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리고 아빠가 엄마를 사랑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남편은 다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는 거라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전 남편은 말끝마다 "어디 여자가"라는 말을 하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여자 형제가 셋이나 있었지만 그는 아들이라는 이유로 편애를 받았고 그런 특권의식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본인만 위해 살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주고 배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 아내란 그저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시녀였다.
'이 결혼은 잘못되었다'라고 막연히 느끼기 시작했으나 자존감이 낮고 남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난 그 상황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더 착하게 그 남자에게 맞추는 것밖에는...
그러나 그렇게 맞추면 맞출수록 더 무시했고 비난과 지적질이 심해졌다.
자기가 하는 행동과 생각은 무조건 옳았고 내 생각은 다 틀렸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내가 틀리다고 말하면 말주변도 없는 난 반박할 수도 없었다.
하물며 새벽에 자고 있는 날 흔들어 깨워서 물을 떠 오라고 한 적도 있다.
"네가 예쁜 데가 어디 있어?"
"네가 잘하는 게 뭐가 있어?"
이런 말을 수시로 들으니 자존감이 낮았던 난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나의 자존감은 더 바닥으로 내려갔다. 어릴 때부터 부당함을 당해도 어떠한 반박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상황이 너무 익숙했다.
' 역시 내가 그렇지 모.. 예쁘지 않고 잘하는 게 없으니 사랑받지 못하는 게 당연해'
나의 첫 번째 결혼은 좀 더 강한 창살이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는 거었음을 그땐 몰랐었다.
보웬의 가족치료 이론 중 자아분화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정서적 분리를 성취하는 정도로 이성과 감정을 분리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하며, 자아분화가 잘 이루어진 개인은 감정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이성적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자아분화의 수준이 낮은 사람은 감정에 치우쳐 외부세계를 지각하는데 객관성이 결여되고 본능적인 충동에 따라 반응하며 타인에 의해 움직이는 삶을 살기 때문에 불안과 우울등 심리적인 증상을 경험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자아분화의 수준이 비슷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전남편과 난 자아분화가 낮은 사람들이었고 그런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