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야지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자랐던 아이가 결혼을 했다. 원가족에서는 나름 착한 것이 극성맞은 동생들 사이에서 먹히는 강점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뜻에 따라 자기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여자와 결혼한 전남편은 내가 아무리 착하다고 해도 사랑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과 술 마시며 놀고 싶은 욕구가 나로 인해 방해가 된다고 느껴서인지 나를 성가신 존재로 생각했다. 결혼한 이후 차가운 눈빛으로 변한 남편을 보며 불안감이 올라왔다.
‘이건 내가 상상했던 부부관계가 아니다. 선 볼 때 봤던 모든 걸 포용해 주고 감싸줄 것 같은 눈빛은 어디로 가버린 거지?’
난 점점 더 불안해졌고 나를 밀어내는 전남편에게 더 매달렸다.
이북에서 혼자 월남하신 시아버지의 3대 독자로 태어난 전남편은 자기가 뭘 갖고 싶어 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다 사주셨다고 했다. 값비싼 장난감. 자전거, 가구 하물며 자동차까지..
시댁에서 전남편의 존재는 그야말로 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아버지의 남편 사랑은 무조건적이었다.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으니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키워지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자신이 무조건 옳고 최고라고 느끼는 나르시시스트가 된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도 없다. 나와 결혼한 이유가 ‘자기 말 잘 들을 것 같아서’인 걸 보면 아내는 사랑을 해줄 대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따르고 맞춰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거다.
반면 난 아빠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고 나의 의견대로 내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딸이었다. 순종의 대상이 아빠에서 자연스럽게 남편으로 바뀌었던 것.
전남편은 내가 자기 의견이 다를 때면 “남편 말에 순종해야지”라고 했고 뭔가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일장연설을 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 당신이 성경을 안 읽어서 그래, 기도를 안 해서 그래'라며 모든 걸 나의 믿음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그럴 때면 난 그 말이 맞는 것처럼 느껴져 두 손을 싹싹 빌며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고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그 당시의 난 그 정도의 자존감을 가진 여자였다. 내가 전남편의 말을 잘 들은 이유는 단 하나 ‘이러면 날 사랑해 주겠지..’란 기대 때문이다.
바로 전형적인 에코이스트였다. 에코이스트는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고 문제가 생기면 자기 탓을 하고 타인에게는 너그럽지만 자신에게 엄격하다.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고 타인과의 갈등을 회피한다. 그러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성격 유형이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아주 딱 맞는 짝이었던 거다. MBTI로는 전남편은 ESTJ, 난 INFP였다.
한 번은 전남편 친구들 모임을 한 친구 집에서 한 적이 있다. 5 커플정도 모여서 식사를 하고 나서 남편들은 거실에 앉아 있고 아내들은 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었다. “민유야”하며 남편이 날 부르는 소리가 났다. 달려가 보니 “이쑤시개 좀 갖다 줘” 하는 것이다.
이미 그 말을 할 때 친구들은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방으로 가서 이쑤시개를 갖다 줬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부르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이거 쓰레기통에 버려줘”라는 것이다.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거의 할 말을 잃었지만 전남편과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남편은 아내가 자기 말을 이 정도로 잘 듣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한 듯 으쓱댔다.
그 정도로 난 병들어 있었다. 그게 착하고 좋은 아내라고 믿고 있었기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겠지..
그러면 그렇게 말을 잘 듣는 아내를 사랑해 줬을까?
대답은 ‘아니요’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에겐 절대로 사랑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시하는 말로 언어적인 학대를 하고 지적질과 비난은 심해졌다.
그리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자신을 의심하는 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몰고 갔다. 그런 말을 계속 들은 난 내가 의처증이라고 믿게 되었다. 본인의 잘못을 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책임전가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을 당하니 그나마 낮았던 자존감은 더 바닥을 치게 되었다.
'예쁜 데가 하나도 없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전남편의 말이 진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결혼생활 10년 정도 되었을 땐 스스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하찮은 벌레가 된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애정결핍은 더 심해졌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이건 나쁜 게 아닌데...’
그 당시 마음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마다 썼던 일기장에 쓰여있는 말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이 한 구절의 문구에 절절히 배어있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며 마음 한 구석이 찌르르하다.
이런 마음을 하소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뻥 뚫린 구멍은 점점 더 커져갔다. 신앙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새벽예배를 다니고...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이 병들어 있는 것을 치유하기엔 불가능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서 느끼기 위해선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경험이 있어야 했었던 것 같다. 나에겐 그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내가 그토록 바랬던 건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