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내겐 너무 익숙한 감정
슬픈 눈의 아이
내 안엔 눈물이 가득 차서 찰랑찰랑.. 조금만 더 슬프면 넘쳐버릴 것처럼...
아침에 눈을 떠 슬픔을 생각하니 끝도 없이 슬픈 경험들이 앞다투어 머릿속을 채웠다.
"민유씨는 눈이 참 슬퍼요"
내가 아무리 애써 밝은 척을 하며 살았어도 내 안에 가득한 슬픔이 눈을 통해 나타났었나 보다.
초등학교 때 지방에 사는 사촌언니가 놀러 와서 며칠밤을 함께 지내고 떠난다고 하면 난 부리나케 언니 신발과 가방을 숨기고 대문을 자물쇠로 잠갔다.
" 언니 가지 마... 제발 한밤만 더 자고 가면 안돼?"
너무 간절하게 부탁했으나 언니는 미안해하면서도 기어이 가고야 말았다.
난 차마 떠나는 언니의 뒷모습을 볼 수가 없어 방으로 들어가 통곡을 하고 울었다.
그 가슴 절절한 슬픔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학교 때 영화단체관람을 간 적이 있다. 아마 <엄마가 없는 하늘 아래>란 엄청 슬픈 영화였다고 기억나는데 당연히 난 전교생 중에서 제일 오래, 많이 우는 아이였다. 우는 거에서만큼은 누구한테 지기 싫은 마음까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중3 때 체육선생님을 짝사랑했었다.
180이 넘는 키에 외국사람처럼 높은 코, 갸름한 얼굴..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나온듯한 외모의 선생님이니 학생들에게 지금의 아이돌만큼 인기가 있었다. 선생님이 퇴근하실 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르르 선생님의 뒤를 따라갔다. 물론 나도..
규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우리 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어느 날 교장수녀님이 방송으로 선생님이 전근을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사춘기 소녀에게 그 충격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교실 창으로 떠나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바로 책상으로 엎어져 울기 시작했다.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책상에 엎어져서 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다.
생물선생님은 총각이고 참 선하신 분이셨는데 내가 울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신다는 듯 빙그레 웃으시며 " 인생이란..." 하며 말문을 여셨다.
그 말에 내 울음소리는 더 커졌었다.
눈물 많고 정에 약하고 슬픔이 가득했던 나.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혼 후 뼛속깊이 외로움이 느껴질 때는 슬픈 발라드를 틀어놓고 아예 수건을 가져와서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엉엉 울었다. 그리곤 개운해진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아마 평생 슬펐던 난 슬픔을 다루는 방법에 능숙해진 모양이다.
내면에 눈물이 가득 찬 느낌이 들면 일부러 이 '눈물빼내기 작업'을 하곤 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3년 반전에 남편을 만나고 나서 내 눈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자기 연민이 있었던 내가 더 이상 내가 불쌍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남편과 난 둘이 있으며 초등학생 같아진다. 수시로 서로 놀려먹을 게 없나? 하며 장난칠 궁리를 한다. 별 거 아닌 일로 빵 터진다. 박당대소를 안 하고 넘어가는 날이 별로 없을 정도니까...
하도 웃어서 눈가에 주름이 현저히 늘어난 건 좀 별로이긴 하다.
평생 찾아 헤매었던 소울메이트 같은 존재, 항상 내편을 들어주는 우리 편, 날 웃게 해주는 사람,
자기 여자를 최고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남자.
단지 너무 늦게 만났다는 게 억울할 뿐...
오랜 시간 슬프고 외롭게 살았던 만큼 남은 시간 더 기쁘고 행복하고 많이 웃을 거다.
지금 이 순간 난 빈틈없이 행복하다..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제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찔끔 나오려다 말았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