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란 별명을 가졌던 아이
사회 불안증이었던 나
내 국민학교 저학년 때 별명은 '벙어리'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난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첫 등교 때부터 출석을 부를 때 대답을 하지 않아서 1주일 정도 결석을 한 걸로 되어 있었단다.
담임선생님이 이상해서 집에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서 엄마도 알게 되신 거다.
얼마나 놀라셨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대답을 하는 게 부끄러워서 '네'란 대답을 못했던 거겠지.
또 국어시간에 일어나서 책을 읽는 시간이 있었는데 난 절대 읽지 않았다.
1학년 동안 한 번도 읽지 않았더니 2학년이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날 시켰을 때 어떤 아이가 친절하게도
"쟨 벙어리여서 책 안 읽어요"라고 말해주었다.
국민학교 3년 동안 내 별명은 '벙어리'였다.
그래서 4학년 때 전학을 가기 전까지 난 국어시간에 책을 안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속으론 '나도 읽을 수 있는데..'란 마음이 있었나 보다.
엄마가 이런 날 고치기 위해 웅변학원에 가자고 했으나 난 한사코 안 가겠다고 우겼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억지로라도 데려가 주지..'란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난다.
전학을 갔을 때 '이젠 날 아는 아이가 없으니 여기서는 읽어도 되겠다' 생각하고 그 이후엔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6학년 음악시간에 가창 시험이 있었고 난 도저히 너무 떨리고 부끄러워서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고 아무리 담임선생님이 나오라고 해도 앞에 나가지 않아서 그때 음악 성적이 0점을 맞았었다.
그리고 과자를 사러 구멍가게에 가는 것도 두려워서 안 갔고 집에 손님들이 오시면 부끄러워서
고개만 쑥 내밀고 인사를 했었다.
나중에 나의 이런 증상들이 '사회 불안증'이란 걸 알게 되었다.
사회 불안증은 당혹감을 줄 수 있는 특정 사회적 상황이나 활동을 피하려고 하고 피할 수 없을 경우 즉각적인 불안 반응을 보이는 질병이다.
이러한 증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과거 어린 시절 중요한 인물(보통은 부모)이 모욕이나 창피를 주어서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게 되었을 때, 이 인물의 이미지를 내면화하여 주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모욕하고 비판할 거라고 인식하며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아마도 무섭고 엄했던 아버지의 양육방식 때문에 심리적 위축감을 느끼고 세상은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 인식했을 것 같다.
아버지 앞에서도 "네, 아니오, 몰라요"라는 대답만 했을 뿐이었다.
요즘 같았으면 상담센터나 정신의학과에 가서 도움을 받으면 초기에 나아졌을 텐데 그땐 그런 것에 대해 무지한 시대여서 그냥 방치했던 것 같다.
스스로 겪는 심리적 고통감은 엄청났었다.
고등학교 때는 아이들이 반장선거에서 순하게 생겼던 나를 뽑아줬는데 죽어도 안 하겠다고 3~4일을 버텼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이 꼭 해야 한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하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수업 시작 전에
"차렷, 경례" 구령을 반장이 했었는데 난 항상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마지못해 해서 선생님들이 놀렸었다.
그리고 자습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야 하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시끄럽게 떠든다고 지나가던 학년주임 선생님이
"반장 나와" 해서 나가서 손바닥을 엄청 맞았었다.
'그래서 내가 못하겠다고 했던 건데...'
학급회의가 있는 날은 아침부터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정말 앞에 나서는 게 죽을 만큼 힘들었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내 자존감은 더 낮아졌던 것 같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난 말을 잘하는 친구가 제일 부러웠다.
성인이 되어서도 3~4명 정도 있을 땐 말을 잘하는데 7~8명만 모여도 말을 하려다가 입을 떼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얼음처럼 얼어붙어서 얼버무렸던 기억이 있다.
사회 불안증은 너무 잘하려는 욕구가 있어서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미리 겁을 먹고 불안한 마음에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대학원 시절에 첫 발표시간에 떨릴까 봐 우왕 청심원을 먹고 했었는데 겉으론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고는 하나 목 주위가 빨개졌었다.
지금은 말을 잘하는 심리상담사가 되었지만 대중 앞에 나가서 하는 강의는 굳이 하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며 어린 시절의 내가 너무 안쓰럽다.
불안하고 두려웠던 아이가 마음 둘 곳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버텨냈을지...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넌 벙어리도 아니고 이상한 아이도 아니었어. 많이 힘들었지? 쓰담쓰담..."
오늘도 치유의 글쓰기를 하며 오래된 상처를 치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