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센 아이, 사실은 두려웠던 거야
고집불통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
지금은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난 겁쟁이었다.
그걸 증명해주는 최초의 증인은 할머니였다.
" 쟤는 애기 때 등에 업혀서 소아과를 가는데 병원 문 앞만 가도 안 들어가겠다고 울고불고했었어"
사실 2~3살 때의 일이라 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루어짐작해 보건대 아마도 소독약 냄새를 맡고 뭔가 아프게 하는 곳이란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2남 2녀 중 장녀였던 나를 부모님은 그 당시 제일 좋은 Y000유치원을 보내셨다.
그곳은 수영장이 딸린 곳이어서 수영 수업이 있었다.
첫 수영 수업 시간에 수영장으로 들어선 순간 소독약 냄새가 내 코로 확 들어왔다.
차가운 타일의 느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수영장의 물도 나의 불안을 자극했다.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수영장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1년 내내 난 한 번도 수영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다음은 6~7살 때 소아과에 주사를 맞으러 갔을 때다.
안 그래도 떨며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면 난 냅다 도망을 쳤고 간호사 2명이 날 잡으려고 테이블을 빙빙 돌았던 기억도 있다.
결국 어린아이는 잡힐 수밖에 없었고 그러고도 주사를 안 맞으려고 반항을 하며 몸부림을 치며 울었던 기억도 있다.
또 아빠는 치아를 가는 시기가 되었을 때 (그 당시엔 집에서 주로 이빨을 뺐었다)
"그냥 흔들리는지만 보는 거야" 하고는 기습적으로 이빨을 뺐다. 그건 심히 충격적이었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 내게 그런 방식으로 이를 빼는 건 가히 최고조의 공포를 일으켰다.
그래서 아빠가 혹시라도 이빨이 흔들리는지 보자고 할까 봐 항상 조마조마했었다.
한 번은 안 빼겠다고 도망을 다니다 화가 난 아빠에게 매를 맞기도 했다.
그러니 이빨 빼는 두려움과 공포는 더 커질 수밖에..
그 이후 한동안은 이빨 빼자고 하실까 봐 치과라는 간판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기억도 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치과검진을 했었는데
우리 반 차례가 되어 반 아이들 모두 검진을 하러 갔다.
하지만 난 치과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에 가지 않고 혼자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앉아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보내서 날 들고 오라고 하셨고 네 명의 아이들이 내 팔, 다리를 들고 가다가 내가 반항하자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아앙~~~"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씩씩 대며 교실로 와서 앉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면서 서있었다.
나중에 담임선생님이 "이제 안 해도 되니까 그냥 앉아라"라고 하셨지만 난 그대로 서 있었다.
"너 때문에 너무 힘들다. 그냥 앉아"
그제서야 못 이기는 척 앉았던 기억이 난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내가 고집이 셌다라고만 생각했다. 그 어린아이가 느꼈을 두려움에 대해 나 자신조차도 공감해주지 못했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고집이 세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유난히 겁이 많고 소심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아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예전엔 그냥 '난 참 고집불통이었네. 아무도 내 고집을 못 꺾어' 그러면서도 내가 이상한 아이였다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도 나 같은 딸 키우기 힘들었겠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아이가 주사를 맞는 게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는지..
수영장에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무서웠고
이빨을 뺀다는 게, 치과검진을 받는다는 게 그 아이가 견디기에는 엄청난 공포였다는 걸 아무도 몰랐고 그 누구도 안심시켜주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많이 무섭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나중에 조금 용기가 생기면 다시 시도해보자"라든지
" 잘 못해도 괜찮아. 조금씩 하다 보면 나아질 거야"
이렇게 말해주면서 안아주었다면 그렇게까지 고집불통의 아이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넌 고집불통의 이상한 아이가 아니라 겁이 많고 두려웠던 거야"라고..
오늘은 그 겁 많고 두려웠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많이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