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같았던 나를 기억하다

아빠에게 통제당한 순종적인 딸

by 정민유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는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다.

며칠 전에 이창훈 씨가 출연했다. 이창훈 씨 딸이 아빠가 너무 통제를 해서 힘들다는 말을 했다. 중학생인데도 하교 후 친구들과 떡볶이도 먹으러 갈 수가 없다고.. 그 모습을 보며 나의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난 중, 고등학교 때까지 집과 학교, 학원 말고는 간 곳이 없을 정도로 말 잘 듣는 순종적인 딸이었다. 하물며 미술에 소질이 있었으나 혼자서 화실을 다니는 걸 무서워해서 미술을 전공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러니 엄한 아빠 입장에서는 아주 마음에 드셨을 거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빠가 남녀공학은 가지 못하게 하셔서 여대를 갔다. 통금시간은 해지기 전이었다




1학년때 YWCA 란 서클을 가입했는데 두 번째 모임에서 함석헌 씨가 강의를 하는 집회를 갔던 것 같은데 그날 어두워져서 집에 도착했다. 그랬더니 아빠는 그날로 서클을 그만두라고 하셨고 난 서클을 그만두었다.


여름방학 때 기타 학원에 등록을 해서 클래식 기타를 배웠다. 방학이 끝날 때쯤 발표회를 한다고 해서 아빠한테 말씀을 드렸더니 여자는 얼굴이 팔리면 안 된다며 승낙을 해주시지 않았다.


그리고 미팅을 했는데 내 파트너였던 2학년 오빠가 나더러 온실 속 화초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어두워진 이후(아마 8시 반이었다고 기억한다) 집에 도착했고 불같이 화를 내시는 아빠한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빠 저한테도 자유를 주세요.."라고 말했다가 엄청 맞았었다.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 이후 나의 대학생활은 해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기 위해 불안에 떨며 지내는 기억이 제일 많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자유롭고 낭만과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해야 할 20대를 난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보냈다.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삶이 숨이 막혔고 암흑 같았다. 내면에 분노가 있었으나 겉으로는 여전히 착한 딸이었다.

그래서 아빠가 있는 감옥 같은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24살에 섣부르게 선을 보고 급하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억울한 감정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자율성을 억압당한 삶!!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부모의 불안 때문에 자녀를 과보호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 힘없는 자녀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다른 친구들은 당연하게 누리고 사는 사소한 일상들을 하지 못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그게 사랑이라고?


상담을 하면서 부모의 과도한 통제로 생명력을 잃어버린 내담자들을 종종 만난다. 그들이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나의 온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그런 내담자들은 자신을 속박했지만 그래도 헌신해 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율적인 삶은 사는 건 인간의 당연한 권리다.


스스로 넘어지고 실수해 봐야 일어서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그래야 나중에 힘든 일을 겪어낼 수 있는 자생력이 생긴다. 부모가 과보호하면 자녀는 무능력해진다.

제발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녀의 자유를 빼앗지 말아 주세요...


어젯밤에 이 글을 쓰고 나서 한참 동안 먹먹해진 감정에 빠져들었다. 이미 다 치유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글로 쓰고 나니 뭔가 다른 느낌이다.

이제는 아직까지 남아 있던 감정의 찌꺼기까지 다 날려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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